[화통토크] 배병우 "사진, 잔머리 아닌 몸으로 부딪쳐야"

'소나무 사진작가' 배병우
새벽 한순간 포착 위해 매번 산 올라도
날씨 안 좋아 허탕치는 일 다반사
돈 없어 이사만 수십차례…쉰살 넘어 인정받아
10년 전 엘턴 존 구매로 '입소문'
최근 벨기에 국왕도 작품 사가
  • 등록 2015-02-24 오전 6:40:00

    수정 2015-02-24 오전 6:40:00

‘소나무 사진작가’로 유명한 배병우 작가가 경기 파주시 헤이리예술마을 내 자신의 작업실에 걸린 대형 소나무 사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사진=한대욱 기자 doorim@).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소나무는 ‘애국가’에서도 언급될 만큼 우리 민족이 사랑하는 나무이자 상징이다. 궁궐이나 사찰, 한옥을 지을 때 목재로서도 으뜸이었다. 삼국시대 신라는 소나무로 왕릉 주변을 감쌌다. 조선시대에는 왕명으로 소나무숲을 보호했다. 당대의 예술가들은 소나무를 즐겨 그리며 예찬했다. 그러나 현대로 올수록 소나무에 대한 관심은 멀어져 갔다. 산과 계곡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상록수 중 하나로 치부돼서다. 특히 늘 새로운 대상에 목마른 예술가들이 보기에 소나무는 별다른 매력이 없어 진부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을 고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작가 배병우(65) 앞에는 ‘소나무 사진작가’란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남들이 주목하지 않던 소나무를 반평생 가까이 카메라 필름에 담아온 덕이다. 최근 경기 파주시 헤이리의 작업실에서 만난 배 작가는 “한국적인 것을 고민하다가 소나무를 택했다”고 말했다. “20~30대 젊은 시절 혈기 하나로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내린 결론은 가장 한국적인 대상에 빠져들어야 이 땅에 태어난 예술가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겠더라”는 것이었다. 이후 소나무 찍는 것만 생각했다. 전국에 소나무가 무성하다는 곳은 다 돌아다녔다.

배 작가의 필름 카메라에 담긴 소나무 풍경은 몽환적이면서도 신비롭다. 소나무의 정령들이 어둠에 묻혀 있다가 아침 햇살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분위기다. 흔하게 봤던 소나무지만 우리가 알던 그 소나무가 아니었다. 그것을 알아본 이들 중 한 명은 팝스타 엘턴 존. 2005년 배 작가의 소나무 사진 작품을 구매하자 세계의 미술품 수집가들 사이에서 ‘소나무 사진작가 배병우’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배 작가는 “엘턴 존 이야기는 오래됐다. 최근에는 ‘트랜스포머’의 감독 마이클 베이와 벨기에 국왕이 내 사진을 사갔다”고 말한 뒤 “소나무 사진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말자”고 손사래를 쳤다. 예술가가 하나의 이미지로 고착된다는 것이 반갑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소나무를 계속 찍는 이유는 소장가들이 여전히 소나무만 찾기 때문이다. 제주도 오름 작업도 했지만 소나무가 훨씬 인기다. 팔리는 작품을 외면하기도 어렵다. 그런 부분이 답답하다.”

배병우 작가는 “가장 한국적인 대상에 빠져들어야 이 땅에 타고난 예술가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겠더라”며 소나무를 자신의 평생 작업대상으로 선택한 이유를 말했다(사진=한대욱 기자).


◇사진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하는 일

배 작가는 화제를 돌렸다. 40여년 동안 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쳐 온 그는 요즘 젊은이들과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는 여수고교 재학 시절 유도선수로 활동했다. 3수 끝에 미대에 진학해 결국 교수까지 됐지만 “학창시절에는 놀고 운동하고 그림 그리는 게 일이었다”고 했다. 그런 배 작가가 요즘 현실에서 가장 안타까운 건 자신의 학창시절과 달리 학교의 교과과정에서 예체능의 비중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지난해 모교에서 강연을 했는데 미술부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체육시간도 줄었더라. 몸 움직이는 것을 등한시하면 머리만 커진다. 사람은 몸과 머리가 같이 성장해야 하는 것 아닌가.”

배 작가가 이처럼 ‘열’을 낸 데는 이유가 있다. 사진작업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하는 거라서다. 배 작가는 “같은 장소의 소나무라 할지라도 어느 시점에 촬영을 하는지에 따라 작품이 되거나 평범한 풍경사진이 된다”고 강조했다. 배 작가는 주로 새벽에 안개가 걷히고 여명이 드는 순간 소나무숲 찍기를 즐겨 한다. 그의 작가적 명성을 높여 준 경주 남산의 소나무들은 홀로 숱한 밤을 새운 끝에 잡아낸 ‘예술적 순간’이다. 제주도의 오름을 찍을 때도 10㎏이 넘는 장비들을 들고 수없이 언덕을 올랐단다. 현장에 갔다고 늘 작품을 찍는 것도 아니다.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허탕을 치는 게 다반사. 좋은 사진을 찍을 때까지 다시 갔다. 기약 없는 반복은 훈련과 같았다. 몸으로 익숙했기에 버틸 수 있었다. “대대로 농사를 짓던 집안이라 잔머리를 굴리는 것보다 몸으로 먼저 부딪쳤다. 우리 때와는 세상이 너무 달라져서 젊은이에게 뭐라 충고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희망을 가지려는 태도 자체가 약해지는 게 안타깝다.”

◇외국어 익히라 할 때 사진 한 장 더 찍었다

모든 것을 다 잘하길 요구하는 사회의 분위기에 대해서도 배 작가는 비판적이었다. “분식점으로 돈 벌었다는 얘기 들어 봤나? 유명한 음식점은 한 가지만 잘해서 성공한 곳이 대부분이다. 이것저것 다하다 보면 이도 저도 안 된다. 다재다능하기보다 한 가지만이라도 제대로 하면 그것이 가지를 쳐 자기 세계를 갖게 되고 실력이 된다.”

배 작가는 “남들이 외국어를 배우라고 할 때 사진을 더 찍었다”며 “사진작가를 평가하는 기준은 그 사람의 어학 실력이 아니라 그 사진 자체”라고도 말했다. 외국 출장 등에서 의사소통은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과 짧은 영어로도 충분했다.

소나무 사진이 각광을 받기 전 돈이 없어 이사만 수십차례 다녔단다. 쉰살이 넘어 소나무 사진이 인정받으며 경제적 여유가 생겼다.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가 됐지만 배 작가는 멋쩍어했다. “처음 소나무 찍을 때 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았다. 그런 면에서 운이 참 좋다. 내가 좋아한 일을 찾아 꾸준히 했을 뿐이다.”

슬쩍 수입을 물어봤다. 배 작가는 “제일 비싸게 팔린 게 1억원 정도”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1억원이라 해도 갤러리 수수료, 각종 세금 떼고 나면 실질적으론 3500만원쯤 되는데 이 중에서도 3분의 2가 제작비로 날아간다. 남는 건 결국 1000만원 정도다. 게다가 모든 작품을 다 1억원에 파는 것도 아니다.”

배병우 작가는 40여년간 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배 작가는 요즘 젊은이들을 향해 “다재다능하려기보다 한 가지만 열심히 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사진=한대욱 기자).


◇“국민이 나무를 알고 싶어 할 때 비로소 ‘문화국가’”

다시 소나무로 이야기를 돌렸다. 한국전쟁으로 온 국토가 폐허가 된 한국은 1960년대 초 본격적인 조림사업을 시작해 반세기 만에 비로소 녹음을 찾았다. 배 작가는 “소나무 수령은 200여년이기 때문에 갈수록 소나무숲이 우거질 것”이라며 “국민이 나무를 알고 싶어 해야만 비로소 문화국가가 되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이제 한국은 문화국가의 초입에 서 있는 셈이다. ‘소나무’ 사진이 인기를 끌고 있어서다.

배 작가는 그간 한국의 소나무 외에도 스페인의 알람브라 궁전, 프랑스에서 가장 넓다는 루아르강 남쪽의 샹보르성 등 세계의 명승지를 독점 촬영하며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왔다.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든 요즘 배 작가가 가장 찍고 싶은 곳은 어디일까 궁금했다. 답은 바로 나왔다. “아무 조건을 달지 않는다면 북한의 자연과 소나무를 찍고 싶다. 백두대간 곳곳에 뿌리내린 우리 소나무를 찍고 싶다.”

사진의 대가를 만난 만큼 염치 불구하고 하나 더 물었다. 좋은 풍경을 찍는 법이 따로 있을 듯했다. 질문을 예상했다는 듯 배 작가는 웃으며 말했다. “영업비밀이다. 한 가지만 밝히자면 태풍이 불어오기 전 찍는 풍경은 그 자체가 작품이다. 물론 안전은 보장 못 한다. 일기예보도 믿기 어렵고.”

배병우 작가가 경기 파주시 헤이리예술마을 내 자신의 작업실에 걸린 대형 소나무 사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배 작가는 가장 하고 싶은 일로 북한의 자연과 소나무를 카메라에 담는 걸 꼽았다(사진=한대욱 기자).


▶배병우 사진작가는…

1950년 전라남도 여수에서 태어났다. 사진기와 처음 만난 건 여수고등학교 재학 시절이었다. 졸업 후 3수 끝에 홍익대 응용미술학과에 입학했고 동대학원에서 공예도안학 석사를 마쳤다. 1982년 관훈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며 사진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소나무, 바다, 산과 같은 한국의 정서를 사진에 담아오며 평범한 소재를 탁월한 심도로 표현해내는 작가로 명성을 쌓았다. 2009년 정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을 받았고 2011년까지 서울예술대 사진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요즘은 서울 종로구 삼청동 공근혜갤러리에서 영국의 사진작가인 마이클 케나와 ‘흔해빠진 풍경’ 전을 열고 있다. 전시는 3월 8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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