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만18세 유권자들에게 거는 기대

  • 등록 2020-04-15 오전 6:03:00

    수정 2020-04-15 오전 6:03:00

[이데일리 이정훈 사회부장] “여성은 침착하지도, 조화롭지도 못해서 정치적 판단이 어렵습니다.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면 사회구조가 무너집니다. 투표권을 주면 그 때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1910년대 영국 여성들의 참정권 운동을 그린 영화 <서프러제트>는 이같은 한 남성 정치인의 연설로 시작한다. 지금으로선 선동적으로 들리지만, 당시 대개 시민들의 인식은 이 정도 수준이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동성고등학교 인근에 18세 이상 선거권 확대를 위해 걸린 홍보 현수막 앞으로 학생들이 지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따지고 보면 세계 최초로 뉴질랜드에서 여성 참정권이 인정된 건 120여년 정도 됐다. 미국에서 흑인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건 50여년 전이다. 심지어 영국에서 처음으로 평민 남성들에게 보통선거권이 주어진 것도 불과 140년 전 일이다. 참정권은 헌법 상 부여된 신성한 권리이지만, 역사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에게 참정권을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처절한 투쟁으로 쟁취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만18세 청소년들의 참정권이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지난 1992년 대선 당시 백기완 민중후보 측 고교생 활동가들이 처음 선거연령 하향을 의제로 던진 이후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기 까지 무려 20여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아직 어려서 올바른 정치적 판단을 내릴 능력이 없어`라거나 `학생이 무슨 정치냐`는 폄훼와 `젊은 친구들이 표를 던지면 우리에게 유리할까, 불리할까` 하는 계산속이 저 1910년대 영국에서처럼 청소년들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깔아 뭉개왔던 셈이다.

약 55만명에 이르는 만 18세 청소년들이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지만, 이번 4.15 총선에서도 청소년들의 자리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전체 유권자 중 1.2%뿐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일부 소수야당이 내세운 그루밍 성폭력 방지법이나 학생 인권법 제정 공약을 빼고 나면 학교와 지역사회에서의 청소년을 타깃으로 한 차별화된 공약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는 건 의외다. 집권여당과 제1야당은 대학입시에서의 정시 모집 확대라는 약속 하나 던지는 것만으로 청소년들의 환심을 살 수 있다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아울러 생애 첫 투표인데도 청소년에 대한 사전 선거교육도 사실상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여러 설문조사에서 우리 청소년들은 정당이나 이념을 떠나 청렴함과 신뢰성, 정직함 등 후보들이 지닌 인물됨과 그들이 내건 공약에 높은 점수를 주겠다고 일관되게 답하고 있는데도, 학교를 이념 선전의 장으로 악용하려는 어른들의 욕심이 되레 학교 내 정치와 선거교육 부재를 초래하고 말았다는 건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번 총선에서 만 18세 청소년들의 한 표 한 표는 더 의미가 있다. 청소년들이 어떻게 투표권을 행사하느냐가 앞으로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과 다음 번 선거에서 청소년들이 가질 비중을 결정할 것이라는 얘기다. 여성과 흑인들의 투표행위가 그들의 권익 신장이나 정치적 지위 강화로 이어지기 까지는 참정권이라는 당연한 권리를 얻어내는 만큼이나 오랜 시간과 부단한 노력이 필요했음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정치이념과 지역감정과 같은 낡은 정치를 벗어버릴 수 있는 첫 세대인 청소년들이 만들어낼 선거혁명을 기대해 본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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