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규·권오상·양아치…예술의 산전수전 시작한 여기 '인미공'

인사미술공간 '인미공 공공이공'
20주년 기념하는 '아카아브 프로젝트'로 꾸려
신진예술인 지원, 대안공간들의 플랫폼 역사
아카이브자료·전시기록 등 망라…영상모음도
중견 박주연·양혜규·임민욱 등 신인시절 엿봐
  • 등록 2020-10-12 오전 3:30:01

    수정 2020-10-12 오전 7:58:45

인사미술공간이 20주년을 기념한 ‘인미공 공공이공’에서 다시 내보이는 비디오작품 모음. 이젠 유명 중견작가가 된 이들의 풋풋하던 시절 초기작이 신선하다. 왼쪽부터 박주연의 ‘물망초’(2000)는 영국 런던에서 수십년간 낡은 차를 집 삼아 살아온 앤 네이스미스를 작가가 찾아가는 과정을 다뤘고, 양혜규의 ‘펼쳐지는 장소’(2004)는 이주문제와 타자와의 관계성 등 이후 보다 명확해진 작가의 관심사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임민욱의 ‘뉴타운 고스트’(2005)는 작가의 일터이자 거주지인 영등포가 뉴타운으로 지정된 뒤 변화하는 공동체의 소멸·욕망 등에 접근한 작품이다(사진=인사미술공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2000년 봄. 서울 종로구 관훈동 가나아트센터 3층에 특별하지만 생소한 공간이 문을 열었다. 아직 ‘작가’란 타이틀이 영 어색하기만 한 젊은 예술가를 지원하는 곳이라고 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쪼그라든 국가경제에 창작활동마저 위축된 신진작가에게 기운을 북돋워주는 곳이라고 했다. 꿈틀거리는 아이디어가 있고, 남들에게는 없는 열정도 있고, 며칠 밤을 새워도 끄떡없는 체력까지 있는 ‘예술하는 그대’를 위한 곳이라고 했다. 너무 앞서나가서 혹은 너무 특이해서 제도권에선 수용하기가 ‘대략난감’한 미술작품은 물론, 관련한 담론·의견까지 제한 없이 꺼내놓을 수 있는 곳이라고도 했다.

그렇게 발을 뗐고, 5월에 첫 전시를 열었다. 현재 수원시미술관사업소의 김찬동 소장과 서울시립미술관의 백지숙 관장, 두 사람이 기획자로 총대를 맸고, 작가 강영민·고승욱·김지원 등 6명이 사수로 나섰다. 개관기념전으로 마련한 그 전시의 테마 자체가 아예 ‘또다른 공간’이었다. 지금이야 익숙해진 ‘대안공간’으로서의 역할을 그런 식으로 ‘선포’한 거다. ‘인사미술공간’의 시작이 그랬다.

‘또다른 공간’ 전을 맛보기로 그해 인사미술공간에서 열었던 신진작가 전은 16건에 이른다. 당시에 30대 초반이던 사진작가 레이몬드 한(53), 회화작가 홍경택(53), 설치미술가 임민욱(52) 등이 첫해 그곳에서 개인전과 2인전을 했다. 이듬해인 2001년에는 더욱 촘촘하게 나섰다. 총 24회의 전시를 숨가쁘게 진행했는데. 그중 영화감독 박찬욱의 동생인 설치미술가 박찬경(55)이 웹아티스트그룹 장영혜중공업의 작가 장영혜 등과 준비한 ‘선샤인: 남북을 비추는 세 가지 시선’은 탈분단시대를 조망하는 젊은 세대의 신선한 시각을 제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또 디지털 영상기법을 최대치로 끌어내는 사진작가이자 행위예술가인 고상우(41), 사진조각을 하는 권오상(46)이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이젠 중견으로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들의 이름은 이후에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박주연(‘돌림노래’ 2002, ‘여름빛’ 2008), 양아치(‘전자정부’ 2003, ‘미들코리아’ 2008), 유근택(‘여기, 있음’ 2002), 양혜규(‘2006 오후 다섯시’ 2006) 등등.

작가 양아치가 2003년 연 기획초대전 ‘전자정부’ 전 관련 자료. 당시 작가는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할 만큼 일상생활에 들어와 있는 감시시스템의 문제를 파놉티콘과 파놉티시즘의 메커니즘으로 검토한 뒤 역감시적 시스템을 모색하고자 했다”고 밝혔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 과정에서 인사미술공간이 지향하는 방향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나갔는데, ‘시각예술’이다. 사진·영상 등을 기반으로 한 파격적인 설치작품이 자주 소개됐다. 더욱 독특한 것은 ‘미술은 전시로 시작해 전시로 끝난다’는 고정관념을 깨버린 거다. 특화한 아카이브를 하나씩 갖춰나가고, 작가·기획자가 주도하는 워크숍·토론회를 ‘끊임없이’ 열었다. 2006∼2008년에는 전시보다 행사가 2∼3배 더 많았을 정도다.

2003년 관훈동 학고재갤러리 3·4층으로 한 차례 둥지를 옮겼던 인사미술공간은 2006년부터 지금의 지하∼2층 건물에 제대로 자리를 잡게 된다. 창덕궁 담벼락을 품고 있는 원서동이다. 이미 인사동을 떠난 지 오래지만 여전히 ‘인사’미술공간이란 간판을 달고서 말이다.

서울 종로구 원서동 인사미술공간의 외부 전경. 2000년 관훈동에서 문을 연 뒤 2006년 지금의 지하∼2층 건물로 이전한 인사미술공간은 이후 전시는 물론, 워크숍·퍼포먼스 등을 숨가쁘게 진행하며 국내 대안공간들의 플랫폼 역할을 본격화했다(사진=인사미술공간).


△작가·기획자·평론가 600여명 거쳐간 신진작가 산실

인사미술공간이 그 20주년을 기념한다. ‘인미공 공공이공 IAS 2000’이라 이름 붙였다. ‘인미공’은 인사미술공간을 줄여 부르는 말. 역시 가장 자신있는 분야라 할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겸한 전시로 꾸렸다. 200여점의 아카이브를 내놓고 20년사를 다룬 자료집을 출판했다. 그간 대중에 내보인 적이 없는 내용이 상당수다. 2005년 창간해 시각예술비평지로 의미있게 읽혔던 ‘볼’의 특별호도 발간했다. 퍼포먼스·릴레이토크·심포지엄 등 행사도 10여회 예고한다.

무엇보다 이번 공간에서 당장 눈에 띄는 건 주로 책자로 묶인 아카이브 틈에 놓인 비디오작품 모음이다. 1시간 남짓한 분량으로 편집한 이 영상에는 유명 중견작가들의 풋풋하던 시절 초기작을 다시 보는 비디오작품들이 들었는데. 박주연의 ‘물망초’(11분 2000), 양혜규의 ‘펼쳐지는 장소’(18분 15초 2004), 이주요의 ‘한강에 누워’(10분 2003∼2006), 임민욱의 ‘뉴타운 고스트’(9분 16초 2005) 등 7편이 그것.

인사미술공간의 ‘인미공 공공이공’의 아카이브전 전경. 뒤쪽으로 연도별로 모으고 배치한 도록과 자료집이, 그 앞으론 2005년 창간한 시각예술비평지 ‘볼’이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사실 이 모두는 지난 발자취를 정리하며 국내의 대안공간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서의 입지를 다시 다지자는 의지와 무관치 않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아르코미술관이 운영해온 미술공간이라지만, 20여년간 200여회의 전시와 100여회의 워크숍·프로젝트 등을 거친 작가·기획자·평론가 등은 600여명. 이들이 제시해온 키워드 ‘실험성·다양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임근혜 아르코미술관장은 “2000년대 초반 대안공간을 제도 안에서 제도 밖으로 살피면서 이들을 연결하고 네트워킹하며 플랫폼을 구축한다는 취지는 변한 게 없다”고 말했다. 20년 전 사회이슈를 외환위기가 만들었다면 20년 뒤인 지금은 코로나19라는 게 달라진 점이라고 할까. 한마디로 사회적 위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신진작가의 창작활동을 보듬는 역할에는 변함이 없다는 소리다. 주로 공모로 진행하던 초반과 비교해 바뀐 게 있다면 “레지던시 개념으로 협업하는 작가(팀)를 뽑아 인큐베이팅한다는 점”이라고 임 관장은 귀띔한다. 예술환경이 진화하며 그 새로운 환경에서는 또 무엇을 제공할 건가를 고민한다는 행간이 읽힌다.

임근혜 아르코미술관장이 지난 8일 인사미술공간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20주년 아카이브 프로젝트 ‘인미공 공공이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간담회 이후 인터뷰에서 임 관장은 “다양한 전시방식이 요구되는 시대에 차별화한 새로운 예술환경에 대한 고민, 또 그 과정에서 작가들이 인적인 교류나 소통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려는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사진=인사미술공간).


△20년 뚫고 온 시각예술 분야 ‘숨은 보물찾기’…대중 교감은 아쉬워


다만 이번 20주년의 얼굴이라 할 아카이브전의 아쉬움이 없진 않다. 20년을 망라했다는 그 규모가 대단히 ‘소소’하다. 지난 전시도록과 자료집을 꺼내고, 전시전경과 활동을 모은 컴퓨터 몇 대로 ‘전부를 보여준다’고 하기엔, 이제껏 해왔던 성과가 상당히 섭섭해 할듯해서 말이다. 아카이브전에 나온 자료가 출판한 책자에, 자체 네트워크 안에 다 들어있다고 한다면 굳이 장소가 왜 필요할까 싶기도 하다. 그저 아이디와 비번만 부여하면 될 텐데.

게다가 20주년을 축하하는 전시에, 빛났던 그때 그 작가든 빛이 날 내일의 작가든 누구도 ‘실물’로 초청받지 못한 건,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일 터. 코로나시국에 부득이 오픈한 사정을 감안한다고 해도 말이다. 자칫 주최 측만의 잔치처럼 보이는 까닭이다. 어찌 보면 다시 20년을 이어갈 인사미술공간의 미래 위상과 연결되는 문제기도 하고. 이 모두를 정리하자면 이젠 ‘아는 사람만 아는’이 아닌, 일반 대중에게 좀더 다가서기 위한 ‘다른 노력’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그렇다고 ‘아는 사람만 알던’ 그 공간, 그 정보를 들추고 찾아내는 재미까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20년을 뚫고 온 한국미술, 특히 영상·시각미술의 흐름과 현대미술가들의 맹렬한 흔적은 인사미술공간 곳곳에 배어 있으니. ‘숨은 보물찾기’라고 할까. 물론 보물을 찾는 데는 인내가 필요한 법이다. 전시·행사는 11월 28일까지.

인사미술공간의 ‘인미공 공공이공’의 아카이브전 전경. 뒤로 지난 20년간의 흔적을 담은 아카이브 자료, 시각예술작품의 전시물과 전시과정 등을 담아둔 컴퓨터모니터·태블릿PC 등이 보인다(사진=인사미술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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