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밸류에이션은 누가 다 먹었을까

[위클리M&A]
대형 스타트업 기업가치 80~90% 뚝
'시장이 이런데 어쩌란 말이냐' 항변
넘치는 유동성 빚어낸 '밸류의 허상'
본질적 가치 지금부터 재평가 받아야
  • 등록 2023-01-14 오전 11:00:00

    수정 2023-01-14 오전 11:00:00

[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내로라하는 기업들의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이 쭉쭉 빠지고 있다. 길게는 1년, 짧게는 6개월 새 이뤄진 일이다. 상장을 앞두던 조 단위 기업들이 요즘엔 5분의 1 사수도 어려워졌다. ‘신기루’ 내지는 ‘거품’이라는 평가가 늘어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내로라하는 기업들의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이 쭉쭉 빠지고 있다. 길게는 1년, 짧게는 6개월 새 이뤄진 일이다. 지난달 27일 다수 기업이 입주한 서울 여의도 일대 모습. (사진=연합뉴스)
IPO 기대주 기업가치 폭락…왜?

1년 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 많던 밸류에이션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시장에서는 여러 분석을 쏟아낸다. 원자재 가격 상승을 필두로 한 인플레이션 국면에 글로벌 경제 악화, 가파르게 뛴 기준금리 등을 주된 요인으로 꼽는다. 복합적인 요소가 한데 어우러져 모두가 어려운 시장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게 골자다.

실제로 삼성전자(005930) 현대차(005380) 네이버(035420) 카카오(035720) 등 국내 손꼽히는 대장주는 물론 글로벌 기업인 애플, 아마존, 메타, 테슬라 주가가 모두 30~60% 넘게 빠졌다. 그래도 이들은 사정이 났다. 이미 증시에 입성한 상장사인데다 견조한 실적을 해마다 내고 있어서다. 실적이 늘고, 시장 분위기가 반등한다면 또 다른 기회를 도모할 수 있다.

사실 진짜 위기는 상장 또는 그 직전 단계를 밟던 스타트업이다.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기업)을 넘어 내친김에 테카콘(기업가치 10조원 이상 비상장 기업)까지 가겠다던 그들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기 일보 직전이다.

상장만 하면 기업가치 6~7조원일 것이라던 컬리는 최근 IPO(기업공개)를 무기한 연기했다. 자본시장에서 점치는 기업가치가 1조원 밑으로 내려간 상황에서 지금 상장에 나서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작용했다는 평가다.

한때 5000억원 몸값이라던 토종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왓챠는 최근 500억원도 힘들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마저도 매각 작업이 여의치 않아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

배달·퀵커머스 사업 붐과 함께 최고 8000억~1조원 밸류에이션이 거론되는 메쉬코리아는 700억~800억원 안팎의 몸값을 평가받고 있다. 최근에는 법정관리 실행 여부를 놓고 투자자와 창업주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거론한 기업 외에도 순항하던 수많은 스타트업의 기업가치가 50~80% 급락한 곳은 시장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본질적인 기업가치 재평가 시간 왔다

상황이 이렇자 일각에서는 ‘너무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시장 침체라서 이들 기업 가치가 크게 빠진 걸 두고 ‘그럴 줄 알았다’며 몰고 가는 시장을 지적하기도 한다. 기업이나 투자자 입장에서는 양측 다 잘 될 기회가 사라질 처지에 놓이니 그런 말이 나오는 게 이상하진 않다. 그런데 이러한 의견도 냉철하게 보면 ‘비겁한 변명’으로 보이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먼저 이들 기업의 본질적인 기업가치는 얼마였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영업이익이 나지 않는 비즈니스 구조임에도 ‘비전이 있다’는 이유로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 받았다. 사모펀드나 벤처캐피털 등 재무적투자자(FI) 등이 투자를 집행하면서 기업과 투자자 사이에서 인정한 가치다. 투자자가 얼마의 기업가치를 인정해주겠다 하면 그 가치가 되는 셈이다. 거금이 오가서 그렇지, 다분히 원시적인 논리다.

이 원시적인 논리는 얼마 전까지 넘쳐나던 유동성과 만났다. 차고 넘치는 자금에 ‘괜찮아 보이는’ 기업들에 대한 투자가 붐을 이루던 시기 쌓아올린 밸류에이션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본질적 기업가치에 대한 잣대를 들이댈 겨를도 없이 그들끼리 굴려서 만든 눈사람이라는 얘기다.

자금을 유치한 기업이나 투자자들은 IPO로 모두가 행복하게 마무리하는 시나리오를 그렸을 것이다. 우리가 끌어올린 기업가치보다 높게 상장하면 그만이라는 전제를 깔고 말이다. 선례도 있으니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최근 1년새 거품이 싹 빠지는,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상황이 펼쳐졌다. 기업가치가 흔들리자 적잖은 투자자들은 돈을 잃을 처지에 놓였다. 선택에 대한 결과를 보며 ‘국내 자본시장은 유니콘이 나오기 어려운 시장’이라거나 ‘모두 힘든 상황인데 스타트업에 가혹한 평가를 내린다’고 말한다. 무탈하게 조단위 기업가치로 상장까지 했다면 이런 말을 했을까 싶다.

시장 건전성 측면에서 보면 현재 상황은 투자자나 시장 모두가 ‘새로고침’을 눌렀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시장 침체를 딛고 본질적 밸류에이션을 찾아갈 수 있느냐는 시험대에 올랐다고 봐야 한다. 기업과 투자자가 회의실에서 인정한 기업가치 말고 모두가 수긍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때가 왔다. 정수리를 덮칠 것 같았던 바닷물과 거품이 이제는 다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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