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무총리가 오늘 퇴임한다. 2020년 1월 취임 이후 1년 3개월만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와 국민통합에 적임자라고 했다. 정 총리는 실물경제를 경험했고 정책능력이 뛰어나다. 또 여야를 떠나 너른 품과 통합능력을 인정받는 몇 안 되는 정치인이다. 그러나 코로나19 복병을 만나 재임 기간 내내 노란색 민방위복을 벗을 틈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정치철학인 ‘선공후사’를 말없이 실행에 옮겼다.
한데 이란 정부가 서둘러 석방한 이면에는 정 총리 의지가 작용했다. 정 총리는 “더 기다릴 이유가 없다”며 즉시 조치하라고 지시했다. 이틀 동안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미국과 이란 관계가 살얼음판인 상황에서 하루가 시급했다. 결국 이란 정부는 이틀 앞서 석방했다. 정 총리가 귀국한 13일, 이란 정부는 우라늄 농축액을 60%까지 올려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란 정부는 한국 정부에 서운할 수밖에 없다. 원유를 팔고도 돈은 받지 못하니 감정이 곱지 않다. 그렇다고 우리 정부 홀로 국제 제재 기조를 거스를 수도 없다. 한국 선박을 억류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자칫 장기화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란 정부를 설득했으니 내세울 만한 외교 성과임은 분명하다. ‘선공후사’가 아니었다면 아찔했다. 퇴임 후 다시 민주당원으로 돌아가는 정 총리는 이제 ‘선당후사’를 앞세운다.
이렇게 정 총리는 개인적인 이익보다 공적 가치를 우선했다. 정 총리라고 정치적 유?불리를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의회주의자 정 총리에겐 개인적 이해보다 공(公)이 우선이었다. 그는 <정치에너지 2.0>에서 “정치란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어 합의에 도달하고 그것에 따르도록 만드는 기술이자 예술이다”며 우리 정치가 지향해야할 방향을 제시했다. 19대 총선을 앞두고도 ‘선당후사’를 실행에 옮겼다. 4선 안방을 뒤로한 채 황무지나 다름없는 종로로 옮겼다.
정 총리는 당이 어려울 때마다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 당의장과 대표 때마다 상황은 좋지 않았다. 마지막 열린우리당 의장을 맡아서는 민주당과 통합 전당대회를 성사시켰다. 그때 신분은 평당원이었다. 정 총리는 퇴임과 함께 다시 민주당원으로 돌아간다. 두 차례 백의종군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은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고 했다. ‘선당후사’를 앞세우며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가는 담박한 정치인, 정세균. 그 또한 모든 준비를 마쳤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