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TMI]'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회계 띄어쓰기 않는 이유

  • 등록 2020-05-26 오전 5:30:00

    수정 2020-05-26 오전 5:30:00

여의도 증권가는 돈 벌기 위한 정보 싸움이 치열한 곳입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쪽지와 지라시가 도는 그야말로 정보의 홍수인 곳입니다. 너무 정보가 많아서 굳이 알고 싶지 않거나 달갑지 않은 내용까지 알게 되는 TMI(Too Much Information)라는 신조어도 있는데요. TMI일 수도 있지만 돈이 될 수도 있는 정보, [여의도 TMI]로 풀어봅니다.

[이데일리 유현욱 기자]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는 띄어쓰기의 중요성을 잘 일깨워주는 사례입니다. 보기에 따라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시는지 아버지(가) ‘가방’에 들어가시는지 아리송합니다. 물론 조사 ‘가’의 부재로 가방에 들어가시지 않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고, 다 큰 성인이 일반적으로 가방에 들어가시지 않는다는 상식을 동원하면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는 것을 알 수 있죠.

하지만 띄어쓰기를 적절히 활용했다면 불필요한 오해를 줄일 수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막 회계에 입문한 사람들은 가뜩이나 친숙하지 않은 재무제표를 보다가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를 떠올립니다.

본문에 해당하는 재무상태표, 손익계산서, 자본변동표, 현금흐름표을 보면 ‘판매비와관리비’ ‘법인세비용차감전순이익’ 등 숨이 차도록 긴 계정과목들이 나열돼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후속적으로 당기손익으로 재분류되지 않는 포괄손익’ ‘포괄손익의 귀속’ 등과 같이 띄어쓰기를 이용한 흔적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처음 재무제표를 본다면 띄어쓰기에 인색하다고 느낄 만합니다. 행여나 아버지가 방이 아니라 가방에 들어가시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의문이 드는데요. 이유가 뭘까요.

국내에서 회계처리기준 제정하는 법정기관인 한국회계기준원에 물었더니 회계계정을 사실상 고유명사로 보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기업명이나 상품명을 하나로 인식해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얘기입니다. 예컨대, ‘한글과컴퓨터’라는 기업을 띄어 쓴다면 어떨까요. 온라인에서 한글과컴퓨터에 대해 검색을 해도 원하는 정보를 찾기 어려워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기업명임을 한번에 알아차리기 힘들 수도 있죠.

그래서 재무제표를 작성할 때 사전처럼 참조하는 회계기준서, 이 기준서에 각 계정과목을 붙여 쓰고 있습니다. 사전에 적힌 대로 기업들이 재무제표를 작성하다 보니 회계 이용자들도 붙여 쓴 계정과목을 보는 것입니다. 재무제표 본문만 봐서는 체감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석을 보면 바로 이해가 갑니다. 당장 계정과목을 검색하는 데 한결 효과적입니다.

경제적 이유도 있습니다. 붙여 쓰는 게 띄어 쓸 때보다 분량이 줄어듭니다. 가뜩이나 양이 많은 기준서를 띄어 썼다면 어떨지 상상이 가시죠. 이런 효율성은 재무제표 작성 시에도 고스란히 적용할 수 있습니다.

같은 한자문화권인 중국과 일본은 붙여쓰기가 원칙입니다. 우리도 모든 글을 붙여 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특히 법령을 표현할 때 최근까지도 띄어쓰기 원칙을 지키지 않아 일본어 문법 잔재가 여전하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혹시 같은 상황은 아닌지도 물었습니다.

기준원은 손사래를 칩니다. 국제회계기준(IFRS)을 국내에 적용하면서 2012~2013년 대대적으로 회계용어 정비에 나선 바 있는데, 당시 자문을 준 국립국어원도 계정과목을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끔 고유명사처럼 취급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고 합니다. 국어원이 비공식적으로나마 기준원 손을 들어줬다는 것이죠.

붙여쓰기로 사달이 난 적은 없었을까요. 기준원은 아직 계정과목을 띄어 쓰지 않아 오해를 불러일으킨 사례는 없다고 전했습니다. 붙여쓰기가 강제는 아니나,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필요하다면 융통성을 발휘할 여지도 있습니다.

조금은 어색할 수 있는 회계 계정과목. 자꾸 보다 보면 한눈에 쏙 들어오는 날이 올 겁니다. 그때면 이미 재무제표에 친숙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겠죠.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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