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연준의 입장은 시장과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올릴 필요가 없어서 동결했을 뿐, 하반기 추가적인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과거에는 연준의 으름장에 시장이 순응하는 흐름을 보였다면, 최근에는 당황한 기색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점이다. 하반기 금리 향방을 둘러싼 연준과 시장의 줄다리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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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은 지난 14일(현지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직후 성명을 통해 기준 금리를 5.00~5.25%로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지난 5월까지 이어진 10회 연속 금리 인상 랠리가 멈춘 것이다.
연준의 금리 인상은 거침이 없었다. 최악의 물가 상승세를 잡겠다며 4차례 연속 자이언트 스텝(한꺼번에 금리를 0.75%포인트 올리는 것)을 밟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기준금리가 200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차오른 이유다.
금리 인상도 중요했지만, 이후 나온 연준의 메시지가 시장 분위기 단속에 한몫 단단히 했다. ‘추가적인 금리 인상 기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단호한 논평에 미 증시는 물론 국내 증시까지도 휘청 휘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금리 인상이 멈춰 선 것은 5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등의 지표가 2년여 만에 최소폭(4.04%)을 기록하는 등 물가가 안정세로 접어들지 않았냐는 평가가 짙어진 이후다. ‘아직 멀었다’는 강경한 입장에 명분이 희미해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지표가 잠잠해지는데 언제까지 올릴 거냐’는 얘기가 나온 것도 같은 시기다.
흥미로운 점은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이후 미 연준의 행보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계속 높은 상태”라며 “거의 모든 (연방공개시장위원회) 위원들이 올해 중 추가 금리 인상이 적절할 것 같다는 견해를 보였다”고 말했다. 향후 금리 인상을 재개할 여지를 열어둔 것이다.
연준이 공개한 새 점도표(FOMC 위원들의 금리 전망을 보여주는 도표)에도 연내 두 차례 정도의 추가 인상이 예상된다는 언급도 나왔다. 기준 금리 동결 부작용에 대한 ‘문단속’이라는 게 시장의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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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를 둘러싼 연준과 시장의 줄다리기는 지금부터라고 봐도 무방하다. 현재로서는 연준의 추가 인상, 시장의 금리 하락 전망 모두 믿을 수 없다. 연준이 추가 인상을 거듭 강조하더라도 여러 물가 지표가 지금과 같은 안정세를 이어간다면 금리 인상을 강행하기 쉽지 않다. 마음 가는 대로 금리를 정하는 게 아니라 여러 데이터를 토대로 금리 인상을 결정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반대로 시장 일각의 전망대로 기준 금리가 하반기에 하락할 가능성이 아주 크지도 않다. 지표가 회복세라는 것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게 골자다. 끝 모르고 치솟던 물가가 예상 수준으로 돌아오고 있는 게 금리 하락의 요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하반기 기준금리를 둘러싼 여러 지표나 경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느냐가 중요해졌다. 실리콘밸리은행(SVB)이나 크레디트스위스(CS)와 같은 굵직한 금융기관들의 연쇄 파산, 석유 등의 원자재 공급 부족과 같은 일이 또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 밖에 미국과 중국이 경제 패권을 차지하겠다며 하루 단위로 쏟아내는 경제 제재나 정책들도 중요하다. 앞으로 금리가 안정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 또 출렁일만한 이벤트가 있을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보는 게 맞다.
글로벌 자본시장을 쥐락펴락하던 제롬 파월 의장의 언행이 앞으로 어떻게 변모할지도 관심사다. 금리 인상 동결 직후 나온 그의 발언은 “지금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고 힘주는 모습이다. 인플레이션 문단속에 대한 강한 의지도 읽힌다.
그런데 냉정하게 보면 제아무리 미 연준 의장이라고 해도 금리를 마음대로 올리고, 내릴 수도 없다. 그도 결국 돌아가는 상황에 따라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고 그것에 맞게 처신할 뿐이다. 기준 금리를 향방을 결정하는 건 개인(또는 단체)이 아니라 시장 상황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