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회사의 이사회를 특정 성(性)의 이사로만 구성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를 통과하면서 금융권에 비상이 걸렸다. 보수적인 분위기의 금융회사들은 여전히 남성이사로만 구성된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이들 금융회사는 이사진의 임기가 끝나는 시점과 맞춰 여성이사를 선임해야 하는 데 당장 마땅한 인력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다.
신한금융·우리금융·삼성생명 등 17개사 ‘男이사회’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 금융회사 22개사 중에서 여성이사가 1명도 없는 곳은 신한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IBK기업은행, 삼성생명, 한화생명, 삼성화재, DB손해보험 등 17개사에 달한다. 신한금융은 이사회 13명 전원이 남성이고, 우리금융·삼성생명·삼성화재도 7명의 이사가 모두 남성으로 채워져 있다. 기업은행은 이사회 6명 모두 남성이다. 금융사 가운데 여성이사를 1명이라도 선임한 곳은 KB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현대해상, 동양생명, 삼성카드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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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사 등기임원 여성은 3~4%뿐
금융회사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여성가족부가 CEO스코어에 의뢰해 실시한 ‘상장법인 성별 임원 현황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9년 1분기 기준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상장법인 2072곳의 임원 2만9794명 가운데 여성 임원은 1199명뿐이었다. 전체 임원의 4.0%에 불과하다. 이사회 의결권을 갖는 등기임원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등기임원 1만2370명(사내이사 8389명, 사외이사 3981명) 중에서 여성은 사내이사 373명(4.4%), 사외이사 125명(3.1%)에 그쳤다.
실제 지난해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유리천장지수에서 한국은 OECD 국가 중 7년 연속 꼴찌를 기록했으며, 세부항목 중 여성 이사 및 임원 비율에서도 최하위를 기록했다. 그만큼 여성들에게 한국의 회사는 척박한 환경이다.
해외선 처벌 조항도…“인력풀 부족” 볼멘 소리도
해외에서도 여성 임원 할당제 등을 도입한 국가들이 적지 않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49개국 중 30개국에선 할당제나 자발적인 목표를 설정해 여성이사 비율을 확대하고 있다. 여성이사 할당제를 실시하는 국가 중 덴마크·프랑스·아이슬란드·노르웨이·스페인 등은 여성이사 비율을 40%로 설정하고 있다. 벨기에·독일·이태리·포르투갈 등은 20~35% 사이로 설정하고 있다.
특히 노르웨이의 경우 여성이사 할당제를 위반하면 조직개편 의무가 주어지고, 상장폐지까지 가능하다. 스페인도 여성이사 할당제를 준수한 기업은 정부와 계약시 우선권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연방법 차원에서는 규제가 이뤄지고 있지 않지만,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캘리포니아에 주된 사무실을 둔 상장사의 경우 올해 말까지 여성이사를 최소 1명 이상 뽑도록 했다. 내년 말까지는 이사회 규모가 6명 이상인 경우 3명의 여성 이사를 둬야 한다. 위반 시 벌금 등 처벌조항도 있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법안 취지는 이해한다”면서도 “다만, 여성 인력 풀 자체가 부족해 학계 등으로 쏠림현상이 나올 수 있는 데다 역량 검증을 충분히 하지 못한 채 선임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