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나가자 노인이 돌변했다"…'공포의 문턱' 넘는 노동자들

[오늘도 남의 집 간다, '문턱 노동자' 보고서]①
폭언·성추행 위협 시달리는 가구방문 '문턱 노동자'
고객 클레임으로 불이익·업무해지 걱정에 항의 어렵고
부당지시, 인격권 침해에도 안전장치 미비
  • 등록 2021-05-01 오전 9:35:00

    수정 2021-05-05 오전 9:29:40

전기제품 설치·수리기사에서부터 가스안전점검원, 렌탈제품 방문점검원, 요양보호사까지. 고객의 집에 방문에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숫자는 약 141만명에 달합니다. 이들 노동자는 고객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 그 곳이 ‘공포의 문턱’으로 변한다고 호소합니다. 폭언과 폭행과 성범죄에 노출된 것은 물론 목숨을 잃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법·제도적 보호장치는 사실상 없는 형편입니다. 131주년 노동절을 맞아 소외된 ‘문턱 노동자’를 조명해보고 해결책을 모색해봅니다. [편집자주]

■싣는 순서

①“보호자 나가자 노인이 돌변했다”…‘공포의 문턱’ 넘는 노동자들

②살인에 극단 선택까지…‘문턱 노동자’ 참극, 그래도 바뀌지 않았다

③“코로나19에 무방비, 고객들은 세균취급”…구멍 뚫린 보호법

④선진국도 예외 아닌 ‘문턱 노동자’ 폭력…美·日, 보호대책 마련 분주

⑤“반복되는 ‘문턱 노동자’ 관련 사건, 고용주 책임 강화해야”<끝>

[이데일리 공지유 박기주 박순엽 기자] “우리는 하루살이예요. 오늘 출근해도 하루아침에 ‘이제 나오지 마라’고 할까 봐 항상 두려움에 떨죠.”

“효도하는 마음으로 모시는데 ‘내가 돈 주는데 왜 말을 안 듣냐’고 파출부 취급을 해요.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일한다는 게 사무치게 슬퍼요.”


매일 다른 사람들의 집 문턱을 넘어 출근하지만, ‘문턱 노동자’(가구방문노동자)들에게 고객의 집 앞 초인종을 누르는 일은 항상 두렵다. 어떤 고객들은 ‘왜 일을 제대로 안 하냐’며 이들을 다그치고,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이유로 성희롱적 언사와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안전장치도 미비해 자기 자신 말고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이다. 이데일리가 현장에서 만난 ‘문턱 노동자’들은 오늘도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사소한 바람을 입에 담는다.

(그래픽= 이미나 기자, 사진= 연합뉴스)
성추행 겪어도 같은 곳으로 출근…“센터에선 ‘어쩔 수 없다’고만”

경기도 부천에서 만난 재가요양보호사 60대 윤영희씨는 지난 2007년 요양보호사가 된 후 14년째 한결같이 어르신들을 케어하고 있다. 윤씨는 요양보호사 일을 하며 수없는 폭언과 성추행 위험에 놓였었다고 토로했다. 특히 4년 전 서울에서 일할 때의 기억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했다.

고령의 환자를 케어하러 집을 방문했을 때, 환자의 아내는 여행을 간다며 그녀에게 환자를 맡기고 집을 나섰다. 그 순간 환자가 “그럼 우리 둘만 남은 거냐”고 돌변하며 순식간에 윤씨에게 다가왔다.

윤씨는 “거동이 불편한 환자인데 어디서 힘이 났는지 모르겠다”며 “잡히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무작정 베란다로 도망쳤는데, ‘5층 아파트인데 여기서 뛰어내려야 하나’ 고민했다”고 말했다. 윤씨가 휴대폰으로 녹음을 하겠다고 경고해 위험한 일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그날 일은 윤씨에게 여전히 아찔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2년 전 또 다른 환자도 윤씨가 케어를 위해 방문하자 “주말에 못 봤으니 끌어안고 뽀뽀를 해 달라”며 신체적 접촉을 종용했다.

이런 일은 비단 윤씨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지난달 요양서비스노조가 전국 요양보호사 54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근무 중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들은 적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43.3%에 달했다. 윤씨는 “요양보호사들에게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털어놨을 때 보호자가 ‘이제부터 오지 마라’고 할까 봐 두려워서 말을 안 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환자로부터의 폭언과 업무 외 지시도 일상이다. 윤씨는 “다른 보호사들이 꺼려서 어쩔 수 없이 한 환자를 케어하게 됐는데 들어가자마자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하고, 전지가위로 정원을 다듬으라는 등 업무 외 지시를 했다”고 말했다. 다른 요양보호사 A씨도 “출근을 하면 음식과 청소만 하다 끝나는 경우가 많다”며 “마치 요양보호사를 가정부처럼 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상황에도 노동자들은 고객에게 ‘갑질’을 당했을 때 대처방법이 없다. 김종진 노무사는 “요양보호사의 노동실태를 보면 수급자로부터의 성희롱과 폭행 등 범죄에 노출돼 있는데, 이에 대한 제도적 보호가 없다”며 “이에 대응하기 위한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정수기 렌탈업체 방문점검원 업무를 하고 있는 손소희(28)씨가 26일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공지유 기자)
“폭언에도 클레임 걸까 미소만”…악성고객에도 회사는 ‘뒷짐’

1년 반 전부터 경기도 오산에서 정수기 렌탈업체 방문점검원 일을 시작한 손소희(28)씨는 근무를 시작한 후로 밥을 한 끼 이상 먹은 적이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신입이라는 이유로 많은 양의 계정을 할당받은 손씨는 점심도 먹지 않고 밤낮으로 고객의 가정에 방문해 점검을 하느라 20개월 된 딸을 어린이집에 밤 9시 30분까지 맡겨야 했다.

건강에 적신호까지 올 정도였지만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계속해온 손씨는 고객들의 몰상식한 언행을 겪을 때마다 허탈함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손씨는 “작년 봄 고객이 나이를 물어 28살이라고 하니 ‘이 일 하면서 얼마 버냐’, ‘대학교는 나왔냐’고 비하하듯 말했다”며 “하대하는 발언을 계속하니 모욕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손씨와 같은 점검원들은 쉽게 고객에게 항의할 수 없다. 서비스 이용 후 고객에게 만족도를 묻는 ‘해피콜’로 인해 지국장과 팀장에게 불이익이 올 수 있기 때문. 손씨는 “고객 중 ‘물맛이 이상하다’, ‘기계를 왜 이따위로 만들었냐’는 등 심한 말을 하는 분이 있다”며 “다음 점검 때 그 집에 또 가야 하는데 대꾸라도 해서 해피콜에서 안 좋은 말을 할까 봐 눈치 보여 아무 말도 못 한다”고 했다.

점검 시 다가와 불필요한 접촉을 하는 고객, 속옷만 입은 채로 서 있는 고객은 ‘양반’이라고 한다. 항상 성추행 위협에 놓인 방문점검원 중에는 나체 상태인 고객과 마주쳐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동료들도 적지 않다.

폭언과 부당한 지시를 당해도 회사의 적절한 대처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회사와 방문점검원이 업무대행계약 관계이다보니 업무는 고객과 직접 연락해 일정을 정하고 가정을 방문하는 방식이다. 회사가 악성 고객을 막아주는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손씨는 “개인사업자라 모든 걸 알아서 해야 하니 회사에서는 ‘보호해줄 의무가 없다’고 여긴다”며 “고객에게 욕설을 들었을 때 다른 직원들은 보호를 받는데 우린 그런 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고객이 아무리 ‘갑질’을 해도 우리는 블랙리스트 작성을 하지 않고 무조건 고객으로 모셔야 한다”며 “회사가 우리를 노동자, 근로자로 생각했다면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줬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래픽= 이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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