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파티가 끝나고 투자시장이 위축되기 시작한 이 시점. 투자했던 금융상품에서 줄손실이 발생하기 시작하자 파티장소는 전쟁터로 변했다. 손실 책임을 둘러싸고 금융사와 법적 대응에 뛰어들거나, 소송전을 검토하기 위해 로펌을 찾는 기관투자자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투자은행(IB) 업계 및 법조계에 따르면 투자상품을 중개했던 금융사의 실사의무를 둘러싼 소송전이 잇따르고 있다. 기관투자자들이 금융사의 고의 또는 부주의로 인한 실사미비, 핵심사안 미고지 등을 뒤늦게 인지했다며 부당한 손실을 보전하기 위한 법정공방에 뛰어드는 모양새다.
최근 공론화된 소송전 중 대표적 사례는 롯데손해보험(000400)이 판매사인 메리츠증권과 운용사인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을 상대로 부당 이득금을 청구를 제기한 소송이다. 롯데손보는 지난 2019년 2월 메리츠증권의 투자 권유를 받고 ‘하나대체투자 미국 발전소 전문투자형 사모투자신탁 2호’ 펀드에 5000만달러(650억원)을 투자했다. 문제는 해당 펀드와 관련된 미국 기업들이 채무불이행을 선언했고, 이로 인해 롯데손보는 투자금 전액을 날렸다.
롯데손보 소송전 외에도 미국 더 드루 라스베이거스 리조트 개발사업과 관련된 1심 소송도 진행 중이다. 미래에셋증권과 NH투자증권을 통해 해당 개발사업에 투자한 기관투자자 및 상장사들이 핵심 위험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며 제기한 소송이다. 미국 법에 있는 생소한 개념인 ‘부동산 소유권 양도제도(DIL)’가 손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핵심 사안임에도 제대로 사전고지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투자설명서 상에는 ‘담보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만 기재돼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사에 책임을 묻는 소송은 시일 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증거 자료를 모아 로펌 문을 두드리는 기관투자자들이 슬슬 늘어나고 있다는 전언이다.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은 소송전이 조용히 늘어나고 있다는 것.
늘어나는 소송전에 금융사 골머리...실사 책임↑
투자자와 잇따라 분쟁을 겪으며 금융사들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기존 투자건에서 언제 소송 문제가 불거질지 모를 뿐더러, 향후 판매할 상품 설계에서도 책임소재를 고려해 기존 대비 더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가 되어서다.
최근 금융사들의 자산에 대한 실사 책임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판례가 잇따르고 있다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중국 공기업 중국국제에너지화공집단(CERCG) 사채 관련 부도 사태에서도 한화투자증권과 이베스트투자증권이 실사미비 책임에 걸려 2심에서 패소하는 사례가 나왔다. 이밖에 지난달 29일에도 투자자와 금융사간 민사소송에서 서울고등법원 제 18 민사부가 상고 기각을 통해 구조화금융 중 자산유동화대출 사안을 두고 기초자산에 대한 금융사의 실사 의무를 인정한 사례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