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 시인 김이듬, 전미번역상으로 알려 기쁘죠"

전미번역상 수상 공동 번역가 제이크 레빈
  • 등록 2020-10-28 오전 6:00:00

    수정 2020-10-28 오전 6:00:00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번역자의 역할은 큐레이터 같다고 생각해요. 김이듬 시인 같은 소수문학가의 작품으로 전미번역상을 수상해 기뻤죠.”

지난 16일 김이듬 시인 시집 ‘히스테리아’로 세계적 권위의 전미번역상을 공동 수상한 미국의 시인 겸 번역가 제이크 레빈은 이 같이 소감을 밝혔다. 레빈은 ‘히스테리아’를 한국인 서소은·최혜지와 공동 번역했다. 2012년에 한국에 온 미국인 레빈은 현재 계명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일하며 다양한 한국 시 번역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이데일리와 만난 그는 제법 능숙한 한국어로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 그 나라말로 시를 번역하는 게 시인의 역할이다”고 말했다.

레빈은 3년 전 김 시인의 요청으로 ‘히스테리아’의 시 20편을 서소은 번역가와 함께 번역했다. 레빈은 “처음 김 시인의 시를 접하고 흥미로운 시인이라고 생각했지만 당시는 그냥 작업만 했다”고 떠올렸다. 이후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연 ‘서울국제작가축제’에서 그는 미국 한 출판사 대표를 만났다. ‘히스테리아’에 관심을 가진 대표가 레빈에게 먼저 출판을 제안했다. 김 시인의 작품이 워낙 인상 깊었기에 그는 흔쾌히 수락을 했다.

외국인 남자 번역가가 혼자 페미니즘 시집 ‘히스테리아’를 전부 번역하기는 힘들었다. 그는 연세대 언더우드 컬리지에서 시 창작 강의를 할 당시 학생으로 만났던 서소은과 최혜지에게 공동번역을 제안했다. 첫 20편을 함께 번역하기도 했던 서소은은 당시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어 온라인으로 함께했다. 그는 “‘히스테리아’가 페미니즘 시집이라는 점에서도 이들의 역할은 컸다”며 “남자여서 시의 상황을 100% 이해할 수는 없었는데 (서)소은과 (최)혜지가 비슷한 경험이 있다며 설명을 많이 해줬다”고 설명했다.

이미 2년 전 미국에서 출간 된 김 시인의 시집은 현지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한국에서 ‘히스테리아’가 “너무 음란하다”는 혹평을 받은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과 한국에서 극명한 반응 차이를 보이는 이유에 대해 레빈은 “다른 전통, 문화, 언어를 가진 독자들은 작품에 대한 기준이 완전히 다르다”며 “비교를 하긴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김이듬 작가의 주체성을 이해하고 싶으면 ‘시골 창녀’를 읽어야 한다”며 ‘히스테리아’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시골 창녀’를 꼽았다. ‘시골 창녀’는 임진왜란 당시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서 투신한 경남 진주의 기생 논개의 시점에서 쓴 시다. 외국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이 시는 충격 그 자체였다. 지금껏 어디서도 접할 수 없었던 한국만이 쓸 수 있는 독특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특히 한국에서 영웅처럼 여겨지는 논개를 ‘창녀’라고 얘기하는 김 시인의 용기가 대단하면서도 흥미로웠다. 그는 “미국 독자들이 좋아할 거라고 직감적으로 알았다”고 했다.

시 번역과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지만 8년전 처음 한국에 올 때까지만 해도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고 한다. 시인이었던 레빈은 당시 세종대에 취업해 한국에 오게 됐다. 한국 문학도 김혜순, 이상의 일부 작품 정도만 알았다. 막상 한국에 오니 다양한 시인의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한국 문학을 공부하고 번역을 하기 시작했다.

외국인이 다른 나라의 문학을 번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함축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 시는 소설보다 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번역하기 까다로웠던 시인으로 김혜숙을 꼽았다. 그는 “김혜숙 시는 언어 선택이 아주 중요하다”며 “아주 조용히 수술하는 의사처럼 조심스럽게 번역을 했다”며 웃었다.

한국문학의 특징으로는 다양성을 높이 샀다. 그는 “김이듬 시인과 같은 시대에 살아가는 페미니즘 시인으로 김민정, 김행숙 등이 있지만 서로 같은 점이 하나도 없다”며 흥미로워했다. 그는 “이런 한국의 다양한 시가 해외에 더 알려질 수 있도록 번역자 역할을 하고 싶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제이크 레빈 계명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사진=김은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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