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킹맘]육아휴직=퇴사…고용보험 사각지대 '700만명'

고용보험 미가입 임금 노동자 700만6839명 달해
소규모 사업장 대체인력 없어 퇴사·재취업 반복
동네 미용실 원장 등 1인 자영업자 180만명 혜택 제외
소득 낮고 고용불안 할수록 정부 육아지원서 배제
"법률상 노동자 국한한 복지제도, 전체로 확대해야"
  • 등록 2018-06-08 오전 6:30:00

    수정 2018-06-08 오전 6:30:00

일러스트=심재원(그림에다) 작가
[이데일리 김보경 김보영 기자] 8세, 3세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전업주부 이영미(가명·37). 이씨는 중소기업 사무직을 시작으로 텔레마케터, 휴대폰 대리점, 백화점 판매직까지 12년간 직장 4곳을 전전했다. 최근 직장생활을 마무리할 때까지 이씨가 회사를 옮기거나 그만 둔 시점은 출산·육아시기와 맞물려 있다.

첫번째 직장이자 첫 아이를 낳은 회사는 육아휴직을 신청했다가 퇴사 권고를 받고 사표를 냈다. 버텨볼까도 생각했지만 대체인력이 없어 같이 일하던 동료들만 힘들어질 것이란 생각에 손을 들었다.

이씨는 첫아이를 낳고 보험사 콜센터에 보험외판 텔레마케터로 재취업했다. 텔레마케터로 일하던 중 둘째를 낳았지만 개인사업자로 계약한 탓에 고용보험 대상자가 아니란 이유로 출산휴가 3개월조차 보장받지 못해 직장을 그만 뒀다. 이후 이씨는 휴대폰 판매점을 거쳐 백화점 판매직원으로 일하다 최근 첫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전업주부의 길을 선택했다.

이씨는 “백화점 판매직 같은 비정규직은 애초에 육아 부담이 없는 나이 든 경력단절여성 구직자들이 많다. 대체인력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육아를 이유로 쉬게 해달라고 하면 곧바로 퇴사하라는 통보가 온다”며 “교대 근무라 출퇴근 시간이 유동적이고 휴일도 고정돼 있지 않은 탓에 아이를 돌보기 어려워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출산휴가, 육아휴직,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배우자 출산휴가, 남성 육아휴직 보너스 등. 정부는 초저출산 극복을 위해 다양한 일가정양립지원 제도를 마련했다. 맞벌이 부부를 위한 출산·육아지원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일가정양립 지원제도는 고용보험 틀 안에서만 효력을 발휘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비정규직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전체 임금 노동자(1962만 7000명) 중 고용보험에 가입한 임금 노동자 수는 1262만 161명(64.3%).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나머지 700만 6839명(35.7%)과 고용보험 기압대상이 아닌 자영업자 180만명을 합치면 약 900만명의 노동자들이 일가정양립 지원 제도 밖에 서 있다.

근로상 지위별로 보면 더 심각하다. 정규직 노동자는 고용보험 가입률이 75.1%지만 비정규직은 42.4%에 그친다. 일일 근로는 5%, 특수형태 근로는 가입률이 4%에 불과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낮고 고용이 불안한 노동자들이 정부의 출산·육아지원 대상에서 벗어나 있다는 얘기다. 고용보험 가입률부터 끌어올리고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노동자들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출산·육아 어려움에 퇴사·재취업 반복 악순환

대체인력이 부족한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가정양립제도는 서류상의 ‘제도’일 뿐이다.

직원 규모가 30인 이하인 소규모 사업장도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제도가 있지만 직원 한 명만 빠져도 타격이 크기 때문에 다른 동료 직원들과 상사 눈치에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는경우가 많다. 출산휴가가 있긴 하지만 3개월을 꽉 채워 쓰기가 쉽지 않고 육아휴직 얘기를 꺼내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권고사직을 유도하는 회사도 적지 않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공동대표는 “일가정양립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자격요건을 갖췄음에도 인력 구조, 근로상 지위 등 근무환경의 열악함 때문에 제도를 활용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다”며 “특히 인력이 적은 영세사업장에 소속돼 근무하는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특히 저조하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상시적 현장 근로감독을 통해 의무를 위반하는 사업주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거나 고용보험 가입 및 일가정양립제도 준수에 따른 강력한 인센티브를 지급하지 않는 이상 지금과 같은 양극화는 극복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인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도 “고용보험 미가입 노동자들에게는 피보험자격 확인청구제도를 통해 육아휴직 급여 등의 수급이 가능함을 적극 홍보하고, 일가정양립제도 이용과 관련한 노무적 지원을 확대하는 등 제도적 노력을 통해 고용보험 가입률을 전반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보험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사업주는 고용보험 미가입 노동자에 대한 피보험자격 취득 사실을 근로복지공단에 신고해야 한다. 고용보험에 미가입한 노동자는 전국의 고용센터 또는 근로복지공단 지사에 피보험자격 확인청구서를 제출해 고용보험 자격 여부, 육아휴직 급여 등 수급 정보를 받아볼 수 있다.

◇‘생계냐 육아냐’ 자영업자 워킹맘의 딜레마

학원강사 등 사업자 형태 특수고용 노동자나 자영업자들도 정부의 출산·육아지원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미용실을 운영하며 7세 딸을 키우는 워킹맘 박윤서(가명·36)씨는 딸을 낳고 한달만에 가게 문을 열고 다시 가위를 들었다. 수입이 끊기자 공과금 내기도 버거워 어쩔 수 없었다.

박씨는 “형편이 여유로운 사업주도 있겠지만 주변 대부분은 나처럼 영세한 자영업자들이다. 지금 출산·육아지원제도는 우리같은 사람은 전혀 혜텍을 받을 수 없다”며 “고용보험이 없는 부모도 육아휴직이나 출산지원급여를 지원받을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일 것 같다”고 말했다.

학원강사, 유치원 보육교사같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현실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고등학교·재수생 입시학원 강사로 일하는 이소영(가명·39)씨는 아들을 출산한 뒤 일과 육아의 병행이 어려워 일주일에 이틀만 일하는 파트타임 강사로 전직했다.

이씨는 “학원강사와 같은 특수형태 고용직종은 고용보험 혜택 대상자가 되지 못해 출산휴가조차 쓸 수 없다. 임신과 동시에 일하는 학원을 그만둬야 할 형편”라며 “육아휴직을 다녀온 뒤 사내평가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이라는 대기업 워킹맘들을 보면 출산 휴가조차 몇일 쓰지 못하는 현실이 더 서글프다”고 한숨을 쉬었다.

5세 딸을 키우는 사립유치원 교사 정진숙(가명·37)씨. 정씨 역시 출산휴가 1개월만에 다시 일터로 돌아왔다. 출산휴가 기간 동안 대체교사를 고용하면 되지만 학부모들이 학기중에 교사가 교체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

정씨는 “어린이집, 유치원 교사들도 교사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엄마인데 수십명의 아이들을 돌보면서 정작 내 아이 하나 돌보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눈물이 날 때가 많다”고 했다. 잡무 탓에 저녁 늦게나 퇴근하는 일이 잦은 정씨의 딸은 친정어머니가 도맡아 키우고 있다.

박찬임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행 일가정양립제도는 4대보험이라는 사회적 안전장치 안에서만 효력을 발휘해 소상인이나 특수형태 고용 노동자들을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체인력이 전무한 1인 자영업자만 전국에 180만명이다. 성격만 다를 뿐, 똑같이 노동과 육아를 힘겹게 병행하는데 고용보험 가입 대상자가 아니란 이유만으로 출산, 육아 지원금 등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양극화된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 법률상 노동자에만 국한된 복지 제도를 전체 노동자로 확대할 장기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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