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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의 암호화폐 읽기]<2>`빅 브라더` 가라…혁신 넘어선 혁명

암호화폐, 1980년대 중반 사이퍼펑크 운동에 기원 찾아야
차움, 디지캐시로 암호화폐 첫 상업화…정부견제로 파산
재보, 비트골드 고안해 비트코인 탄생의 직접적 모태 역할
  • 등록 2018-01-10 오전 6:31:45

    수정 2018-01-10 오전 6:31:45

데이빗 차움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암호화폐(crptocurrency)를 대표하는 비트코인(Bitcoin)은 채굴(mining)이라는 방식으로 직접 캐낼 수 있고 이를 통해 은행이라는 매개체 없이 직접 거래가 가능한 획기적인 지급결제수단이라는 점은 앞서 언급했었습니다. 특히 법정화폐를 발행하고 그 유통량을 조절하는 정부와 중앙은행이라는 빅 브라더(Big brother·조지 오웰의 <1984>에 등장한 전지전능한 가공의 통치자)와 같은 존재를 부정하고 쌍방간 거래에 있어서도 은행이나 지급결제업체를 배제한다는 점에서 비트코인은 혁신적이다 못해 혁명적인 개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같은 암호화폐의 개념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등장한 사이퍼펑크(Cypher Punk) 운동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이퍼펑크는 컴퓨터 혁명과 포스트 모던 시대로의 전환이라는 사회적 상황 변화를 배경으로 등장한 것으로, 고도의 컴퓨터 활용능력을 갖고 있지만 주변부적 삶은 살고자 하는 경향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앞서 1960년대 등장한 미국 히피족(族)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 가능할텐데요, 대학생과 백인, 중산층을 중심으로 정부와 국가권력, 기존의 사회적 계급으로부터 벗어나 독립된 개체로서의 삶을 존중받고자 하는 세력들이었습니다. 특히 이들 가운데서도 소위 암호무정부주의자(cryptoanarchist)라고 불리는 일단의 세력들은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극도로 중요하게 여겼는데 암호화폐를 통해 국가가 개인 정보에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면 국가기능이 약화될 것이고 이를 통해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이끌어내려고 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은 비트코인을 처음 개발한 사토시 나카모토가 사이퍼펑크족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비트코인을 처음 만든 사토시라는 오해를 받았던 미국인 컴퓨터 과학자인 데이빗 차움(David L. Chaum) 전 뉴욕대 교수가 1990년 개발을 주도했던 디지캐시(Digicash)는 암호화폐가 상업적으로 결실을 맺은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그는 네덜란드 정부와 도이체방크, 크레디트스위스 등과 계약을 맺고 마이크로소프트(MS), 비자카드로부터 지원을 받아 1000만달러 이상 투자를 이끌어 내는 성과를 보였습니다. 디지캐시는 디지털 토큰(digital token)을 기반으로 한 전자결제시스템으로, 각 토큰은 소비자가 생성하고 은행이나 정부가 운영한다고 가정하는 디지캐시 화폐주조소에서 디지털 서명을 합니다. 이 시스템을 사용하는 사람들까지 서로 동전을 교환할 수 있고 주조소에서 현금으로 교환도 가능했습니다. 카지노에서 포커를 하기 위해 칩을 현금으로 바꾸는 것과 같은 식이죠. 특히 이 디지털 토큰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돈이 어디에서 흘러 들었는지 알 수 없도록 설계돼 익명성을 철저히 보장했습니다. 미국 미주리주(州) 지방은행이던 마크트웨인은행이 처음으로 이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결제의 익명성을 불편해 했던 미국 정부 눈치로 이 은행이 탈퇴하자 회사는 버티지 못하고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당시로서는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돼 있었던 셈이죠.

닉 재보


로스쿨을 나온 컴퓨터 과학자 닉 재보(Nick Szabo)는 사생활과 계약. 정부와 제3의 신뢰기관 등을 주로 연구했는데, 나중에 이더리움(Ethereum)이 주요 기능으로 내세우고 있는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 개념을 처음 고안한 사람입니다. 그는 1998년 금융위기 이후 탈(脫) 중앙화한 디지털 화폐인 비트골드(bit gold)를 고안했지만 실제 발행·사용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이 비트골드가 비트코인의 직접적인 모태였다고들 합니다. 이 때문에 재보 역시 사토시라는 의심을 받기도 했고 그 스스로 여러 차례 부인했습니다.

그러다 이 실험이 되살아나고 그 결실을 맺게 된 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고 이 시기에 사토시는 비트코인을 만들어 냈습니다. 결국 비트코인은 정부의 통제를 피하려는 반항아들이 수십년에 걸쳐 연구한 결과물로서 탄생한 것이며 그 자체로 기술적인 혁신을 넘어 이념적인 혁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이 때문에 중앙권력인 정부와 중앙은행들은 암호화폐를 규제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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