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낯익은 절집 덕에 이름 대신 깊이 더한 山 오르다

천년고찰 수덕사 품은 충남 예산 '덕숭산'
높이 495m 낮은 산, 현존유일 백제사찰 품어
김일엽, 나혜석, 이응노 인생 담긴 '수덕여관'
  • 등록 2020-08-14 오전 5:00:00

    수정 2020-08-14 오전 5:00:00

충남 예산 덕숭산 자락의 수덕사의 3층석탑과 대웅전. 이 대웅전은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로 명성이 자자하다.


[예산=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충남 예산의 덕숭산이다. 이 산의 이름은 몰라도 ‘수덕사’라면 누구나 안다. 덕숭산은 수덕사가 깃든 산이다. 높이 495.2m, 해발고도 500m에도 못 미치는 산이지만, 고찰을 끼고 있는 덕숭산은 높이 대신 깊이가 있다. 산 곳곳에 내로라하는 고승들의 자취와 그들의 불심이 깃들어 있어서다. 수덕사는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인 대웅전의 명성으로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절집의 고즈넉함이 워낙 이름난 곳이라 따로 설명이 필요가 없을 정도다. 여기에 우리 근대 역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두 여인(김일엽·나혜석)과 고암 이응로 화백의 자취가 진하게 베인 수덕여관, 우리나라 최초의 불교 미술관인 선미술관, 불교문화재 4000여점을 보관하고 있는 근이역성보관 등 이야깃거리와 볼거리까지 풍부하다.

수덕사 가는길에 자리한 수덕여관


◇시대를 풍미하던 세 예술가의 체취가 묻어있는 수덕여관


수덕사 일주문을 지나면 선미술관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불교미술관으로, 지난 2010년 개관했다. 미술관에는 수덕사 3대 방장스님의 법호를 딴 ‘원담전시실’과 고암 이응노 화백의 호를 딴 ‘고암전시실’ 등의 전시공간을 갖추고 있다. 이 외에도 수덕사 고승들의 선묵·선서화, 근·현대 예술인들의 다양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선미술관 왼편으로 단출한 초가집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을 정도로 초라한 ‘수덕여관’이다. 일주문 앞 오솔길을 지나 투박한 돌다리를 건너면 처마 밑에 덩그러니 매달린 수덕여관이란 간판 하나가 주인을 대신해 손님을 맞이한다.

이 여관은 본래 비구니 스님들의 거처였다.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이곳은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이곳을 거쳐간 김일엽·나혜석·이응노 등 예술가들의 삶처럼 말이다. 한국 근현대 예술계를 대표하는 이 세명의 인생 배경이 바로 수덕여관이었다.

수덕여관 곳곳에 새겨진 이응노의 암각화


김일엽과 나혜석은 공통점이 많았다. 1896년생 동갑내기로, 개화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둘 다 뛰어난 재능과 예술적 감각을 지녔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교유했고, 남녀평등과 자유연애의 기치를 내세우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신여성의 선두주자였다. 하지만 세상은 시대를 앞서 간 이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김일엽은 몇 차례의 사랑과 이별을 거듭하다 홀연 수덕사에 출가했다. 나혜석 역시 가부장제의 벽을 넘지 못하고 출가를 했지만, 수덕사의 만공 스님에게 “중이 될 재목이 아니다”며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미련이 남았던 나혜석은 수덕여관에 머물렀다.

김일엽, 나혜석, 이응노 등 한국 근현대 예술계를 대표하는 이 세명의 인생 배경인 ‘수덕여관’
이때 이응노가 나혜석을 찾아왔고, 나혜석으로부터 세상과 예술을 배우고 파리의 낭만을 동경했다. 이후 나혜석이 수덕여관을 떠나자 이응노는 1945년 이 여관을 매입했다. 이응노는 1967년 동백림 간첩단 사건으로 중앙정보부로 잡혀와 잠시 영어의 몸이 되었다가 풀려났다. 감옥에서 나온 이응노는 요양을 위해 본부인이 있는 수덕여관으로 와서 삼라만상의 영고성쇠를 문자적 추상화로 표현한 암각화 작업에 몰두했다.

수덕여관은 한 때 그 유명세로 문인들의 창작 터전으로 사랑받았지만, 세월이 지나 이젠 묵객들의 발길이 뚝 끊어지면서 쓸쓸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수덕사 대웅전의 웅장함과 대웅전 앞뜰에 있는 황금탑의 위용에 비춰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시대를 앞서 간 두 신여성의 삶의 빛깔은 너럭바위에 끼어있는 이끼의 짙은 녹음으로 남아 아스라이 옛 사연을 전하고 있다. 현재 충남 기념물 제103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수덕사 대웅전


대웅전을 지나 정혜사까지 덕숭산을 오르다

수덕여관을 뒤로하고 수덕사로 다시 오른다. 모두 3개의 문과 1개의 루(樓)를 지나야 수덕사에 닿을 수 있다. 이 문들은 모두 승속의 경계. 여행자의 작은 설렘조차 불문에 누가 될까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모든 잡귀를 물리친다는 ‘금강문’, 사방에서 불법을 외호(外護)한다는 사천왕문을 지나서야 절은 여행객의 발걸음을 들인다.

수덕사는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 사찰이다. 백제 법왕 599년에 창건했다. 1308년 고려 충렬왕 때 세워진 대웅전은 경북 안동의 봉정사 극락전, 경북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우리나라 대표적인 목조건축물로 꼽힌다.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구조를 하고 있으며 기둥의 가운데가 불룩한 ‘배흘림구조’를 하고 있다. 고려시대 건축이면서 백제의 미감이 잘 녹아든 작품으로 특히 공포(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기 위하여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나무쪽)와 결합한 상량 구조물의 곡선이 아름답다. 그중에서도 소꼬리 모양의 ‘우미량’(牛尾樑)은 백미로 꼽힌다. 국보(49호)로까지 지정된 ‘귀한 몸’이면서도 그 흔한 단청 한 겹 입지 않고 목재 본연의 결을 그대로 노출한 것이 특징이다.

연일 이어진 장마로 불어난 덕숭산계곡의 물줄기


수덕사를 찾는 이들은 대개 대웅전만 둘러보고 돌아서지만, 수덕사의 진면목은 오히려 절집 뒤편 덕숭산 어깨에 있는 정혜사를 비롯해 산내 암자에 있다. 대웅전의 날렵한 추녀선을 뒤로하고 본격적인 산행에 나선다. 등산로는 범종각을 끼고 뒤편으로 이어진다. 산길로 접어들자마자 시원한 물줄기가 더위를 걷어간다. 비구니들의 선방이자, 일엽스님이 수도한 ‘견성암’과 만공선사가 수도한 소림초당을 지나, 만공탑과 정혜사로 등산로는 이어진다. 정혜사 앞마당은 덕숭산 최고의 조망처로 꼽힌다. 비구니 도량인 탓에 일반인의 출입을 막고 있어 아쉽다.

고도를 높인 산길은 조금씩 조망을 열어 보인다. 건너편으로 홍성의 용봉산, 수암산이 초록 물결로 일렁이고, 서북쪽으로는 해미읍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정상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하산 길로 접어든다. 때마침 수덕사에서 저녁 예불을 알리는 범종 소리가 울려 퍼진다.

덕숭산 등산로에 있는 수덕사 사면석불


◇여행메모

△가는길=서울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1시간. 해미 IC를 빠져나와 또다시 남동쪽으로 30여분 자동차를 타고 가면 고색 찬연한 천년 사찰 ‘수덕사’에 닿는다.

△잠잘곳=예산에는 다양한 숙소가 제법 많다. 2007년 개장한 봉수산자연휴양림은 숲속의 집과 광장, 산책로, 숲체험장 등 각종 편의 휴식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백제 부흥군의 거점인 임존성이나 봉수산 등반을 겸할 수 있다. 온천단지인 덕산에도 숙박시설이 많다. 그중 스플라스 리솜이 대표적이다. 사계절 온천 워터파크 리조트로, 최근 객실을 전면 리뉴얼해 인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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