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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애련(27) 안다르 대표는 지난 3일 경기 파주 경의로에 있는 안다르 본사에서 이데일리에 이렇게 말했다. 안다르는 애슬레저(운동경기와 레저를 합친 스포츠웨어 업계 용어) 브랜드로 지난 2015년 설립됐다.
이날 신 대표는 본인을 ‘프로불편러’라고 소개했다. 요가 강사 당시 입었던 요가복에 대한 불편함을 자세하게 풀어놓았다.
불편한 요가복 벗고 새 옷 찾아 ‘삼만리’
신 대표는 “예민한 성격이어서 작은 옷을 입으면 몸이 부어오르는 느낌이 들었고 허리를 타이트하게 조이면 고무줄이 허리를 파고드는 기분이었다”며 “숨 쉬기도, 앉아 있기도 힘들 정도여서 피로감이 금세 밀려오더라”고 말했다. 2014년, 22살 나이에 요가 강사를 했던 신 대표는 당시 하루 반나절 이상을 요가 수업하면서 몸에 맞지 않는 요가복을 입고 일했다.
4년 전만 해도 요가복에 대한 국내 인식은 낮았다. 스포츠 의류 역시 ‘트레이닝복’ 중심이었다. 해외 직구를 해야 했는데 대부분 캐나다 밴쿠버에서 탄생한 요가복 전문 업체 ‘룰루레몬(lululemon)’에서 주문해 입었다. 문제는 비쌌다는 점. 한 벌에 20만원이 넘었다. 월 최고 수입이 150만원 정도였던 신 대표도 부담이었다.
프로불편러, 신 대표에겐 이 모든 게 ‘시련’이었다. 업(業)에 대한 회의를 느낄 무렵 작정했다. “요가복을 직접 만들어야 겠다.” 열정이 들끓었다. 가성비가 좋으면서 불편함이 개선된 요가복이라면 시장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두려움도 있었다. 그럴 때면 지금의 남편(2016년 결혼)이 조력자가 됐다. 신 대표는 “창업할 때 남편이 큰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그가 “요가복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자 당시 그의 남자친구(현재 남편)은 “왜 자꾸 말만 하느냐. 안 할 거면 말을 하지 마라”고 했다. 남편이 창업의 자극제였다.
발품을 팔아 찾은 곳이 있었다. 서울 면목동, 도시철도 역 앞 700미터 떨어진 한 봉제공장. ‘오드람프’(원단이 겹치지 않는 무시접 봉제법)라고 쓰인 곳을 찾아갔다. 이곳에서도 “래시가드만 한다. 요가복은 할 생각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신 대표는 설득했다. 삼고초려 끝에 신 대표만의 요가복이 나왔다.
신 대표는 “래시가드는 스트레칭성이 있으니 좀 더 탄력성 있는 요가복을 만들면 어떻겠느냐. ‘나는 망해도 당신은 손해 보지 않게 하겠다’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봉제공장 사장의 눈빛을 보고는 ‘이 곳에서만큼은 요가복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장의 눈빛이 마치 ‘어린 친구들이 무언가 해보려고 하는구나’하는 눈빛이었다고 회고했다.
제품라인별 공장 단독 수주, 가경경쟁력↑
우여곡절 끝에 ‘안다르’가 2015년6월, 세상에 나왔다. 안다르는 스페인어 걷다라는 뜻의 ‘ANDAR’와 이어짐, 결합을 의미하는 영어 ‘AND’에서 착안한 브랜드명이다.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나만의 당당함을 꾸준히 이어나가고자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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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르만의 가격 경쟁력은 제품 라인별 공장을 따로 뒀다. 한 공장에서 모든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제품라인을 한 공장에서 단독 수주하도록 했다. 신 대표는 “저희 제품을 단독으로 수주하는 공장만 5곳이 있다. 이들 공장은 1년 내내 물량이 떨어져 본 적이 없다. 공장 생산을 직접 컨트롤하다보니 중간 업체를 생략할 수 있었고 가격을 상대적으로 낮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안다르는 설립 첫해 8억9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주문량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사무실이 좁다 보니 택배상자 놓을 곳도 없었다. 신 대표의 자택에 임시공간을 마련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사무실을 이전해야 했다. 자금이 없었다. 초기 자금은 이미 다 쓴 상태였고 매출은 발생했지만 현금 흐름이 원활하지 않았다. 손을 벌린 곳은 ‘중소기업진흥공단’이었다. 창업 지원 자금으로 1억원을 대출받아 공간 문제를 해결했다.
이듬해에는 롯데백화점으로 판로를 넓힐 기회가 닿았다. 전국 11개 백화점에서 동시 팝업 스토어를 진행하고 8개 상설매장을 열었다. 창업 1년 만에 웬만해선 뚫기 어렵다는 백화점에 입점했다. 오픈 멤버가 없어 신 대표가 직접 매니저부터 상품기획(MD), 모델 일을 모두 도맡았다. 매출은 가파르게 올랐다. 협력사(봉제공장)와의 신뢰도가 쌓이면서 결제일도 30일에서 60일로 늘렸다.
그러나 사업자금 압박에 따른 고통은 여전했다. 대금지급일이 도래했지만 자금이 모자랐다. 신 대표는 당시 사정에 대해 “자금을 못 줄까봐 걱정돼 사흘을 굶어도 배가 안 고플 지경”이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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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4년만에 800억 매출, 100배 성장
안다르는 승승장구했다. 연도별 매출액 기준으로 보면 △2015년 8억9000만원 △2016년 68억원 △2017년 180억원 △2018년 400억원 △2019년 800억원(추정)을 기록했다. 출시 전 원단 모두를 신 대표가 직접 체크하고 사내 필라테스 강사 등이 입어보고 평가하는 꼼꼼함에 시장 반응은 ‘질 좋고 값싼’ 요가복으로 입소문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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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대표는 “어린 나이에 아무것도 모르고 달려들었다. 밤잠을 자지 않아도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행복했고 힘이 났다. 그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많은 도움을 줬다고 생각한다”며 “‘혁신’은 없는 무언 가를 만드는 게 아닌 기존 것을 더 좋게 하는 것, 그렇게 모든 일에 접근하고 소신껏 달려가다 보면 결국 답이 나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