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서가①] "음식 평가가 미식의 기준은 아니다"

'궁중음식' 인간문화재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 원장
'그랑세프' 피에르 가르니에 '감정의 법칙' 추천
"요리사의 마음과 감성이 스며있어야 좋은 음식"
"미식은 음식을 먹으며 서로 소통하는 것"
  • 등록 2017-09-13 오전 6:00:01

    수정 2017-09-13 오전 6:00:01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장이 서울 종로구 원서동 궁중음식연구원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신태현 기자)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대장금’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3월까지 MBC에서 방영한 드라마다. 그러나 ’대장금‘은 단순한 드라마에 그치지 않았다. 평균 시청률 40%를 넘으며 이른바 국민드라마 반열에 올랐고 일본과 중국, 중동, 남미 등지에서도 한류 드라마 열풍을 주도했다.

무엇보다 수랏간 궁녀로 궁궐에 들어가 왕의 어의가 된 주인공 장금이와 주변 인물을 통해 궁중음식과 한식이 조명 받았고 이를 통해 ‘한식 세계화’의 초석을 놓았다.

주인공 ‘장금이’ 역을 맡은 탤런트 이영애가 드라마 ‘대장금’의 주인공이었다면 국가무형문화재 제 38호‘궁중음식’의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장은 ‘대장금’의 보이지 않는 주인공이었다. 드라마 제작진이 촬영 중 중요하게 여겼던 일이 바로 궁중음식 고증과 재현이었다. ‘대장금’에서 선보였던 궁중음식 70여가지는 한 원장의 손끝에서 만들어지거나 한 원장의 지도로 재현됐다.

△ “음식은 우리의 삶과 철학을 반영하는 중요한 유산”

지난 8월 중순 서울 종로구 원서동 궁중음식연구원에서 만난 한 원장은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며 “요즘에는 눈이 좋지 않아서 책을 읽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먼저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한 원장의 서가에는 각종 요리서적을 비롯해 고서적과 식품관련 서적들이 빼곡했다. 한 원장이 말하는 책은 일반적인 교양서나 소설 같은 문학서적이었을 뿐 궁중음식과 요리에 관한 책에서만큼은 누구보다 다독가였다.

벌써 10년도 지난 일이지만 ‘대장금’에 대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원장은 “‘대장금’ 이후 실제로 궁중음식과 한식에 대한 관심이 엄청나게 높아졌다”며 “너무 바쁜 촬영일정과 드라마의 특성상 고증 등의 부문에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음식이란 건 결국 단순히 살기 위해 먹는 끼니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철학을 반영하는 중요한 유산인을 알렸다는 점에서 보람이 컸다”고 말했다.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장(사진=신태현 기자)
한 원장은 조선시대 궁중의 음식문화가 꽃피었던던 시기는 장금이가 활약하던 중종시절이 아니라 조선 후기 정조때라고 설명했다. “각종 의궤를 많이 남긴 정조는 음식에 대한 정보도 의궤를 통해 꼼꼼하게 기록해 놨다”며 “특히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와 함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소인 수원 화성까지 다녀오는 원행을묘정리의궤를 보면 아침 점심과 저녁 일자별로 상차림이 세세하게 나와있다”고 강조했다.

조선시대 궁중음식이 백성들의 삶과 달리 화려하게 차려졌다는 비판에 대해서 한 원장은 “당시에는 효가 국가의 근본이었고 효를 표현하기 위해 음식을 이용했다”며 “부모에게 많은 음식을 차려 올리는 것이 효라 생각했고 백성들의 어버이인 왕이 이를 솔선수범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궁중의 음식상에 찬수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감정의 법칙’ 프랑스 최고 요리사의 음식 철학

한 원장이 추천한 책은 프랑스 요리사 피에르 가니에르의 음식철학을 담은 ‘감정의 법칙’(2017·한길사)이었다. 피에르 가니에르는 셰프를 예술가처럼 여기는 프랑스에서 셰프 중에 셰프를 뜻하는 ‘그랑(Grand) 셰프로 불리는 세계적인 요리사다. 전세계 미식가들의 성전으로 인정받는 ‘미슐랭 가이드’에서 최고 등급인 3스타 등급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피에르 가니에르가 자신이 셰프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비롯해 요리와 레스토랑 운영에 대한 철학 등을 담담하게 풀어놓은 책이다. 피에르 가니에르가 자신의 이름을 따 한국에서 운영하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본점 레스토랑은 2016년 ‘미슐랭 가이드 서울편’에서 2스타 등급을 받아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한 원장은 “정부의 ‘한식 세계화’와 관련해 가니에르를 몇 번 만났다”며 “이른바 셰프가 되려면 가니에르 정도로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고 책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감정의 법칙’은 가니에르와 프랑스 아르골 출판사 대표 카트린 플로이크가 3년간에 걸쳐 나눈 대담을 엮은 책. 가니에르는 플로이크와의 대화 속에서 레스토랑에서 처음 일하기 시작했던 15세 청소년기의 일화, 해군에서 요리사로 일하던 시절, 레스토랑이 재정 문제로 파산하고 바로 다음 해 개업한 레스토랑이 미슐랭 3스타에 선정된 이야기, 두 번의 이혼 등 삶의 궤적을 시종일관 담담하게 말한다.

무엇보다 요리란 결국 감정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강조한다. 청소년이었던 가니에르는 친구들에게 우연치 않게 요리를 해 주었다. 친구들은 그의 요리에 칭찬을 쏟아냈다. 기대하지 않았던 칭찬을 들으면서 마음속에 무언가 꿈뜰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를 통해 아버지로부터의 소외를 극복할 수 있던 가니에르는 평생 주방을 책임지는 셰프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경영자로서의 원칙을 ‘감정’에 둔다. 좋은 감정이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원장은 “어렸을 적부터 주방에서 일한 가니에르는 결국 요리란 게 부드러운 마음과 감성이 스며있지 않으면 감동을 줄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일시적으로 배를 부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이 진정한 요리사가 할 일이라고 담담하게 털어놓은 내용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한 원장은 “가니에르는 몇 년 전 한국에서 궁중음식을 전시할 때 실제로 와서 맛본 뒤 그것을 실제 요리에도 적용을 하는 걸 봤다. 몇 번 만나는 과정에서 내면이 참 괜찮은 사람이다 싶었는데 책을 보니 그런 확신이 더 강해졌다”며 “음식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원칙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같았다”고 덧붙였다.

△“음식 평가가 미식은 아니다…같이 먹는 사람끼리 즐거운 게 미식”

한 원장은 ‘감정의 법칙’에 대한 소감을 최근 국내의 음식문화에 대한 이야기로 옮겼다. 한 원장은 “요즘 요리를 하는 사람들이 기술적으로 손의 테크닉만 가지고 흉내내는 경우가 많다”며 “게다가 TV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음식을 다룰 때 맛을 호들갑스럽게 표현하거나 재료를 많이 쓴 것만이 최고인양 보여주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장이 서울 종로구 궁중음식연구원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신태현 기자)
한 원장은 “우리 음식이라는 것이 특정 메뉴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 재료와 생산자, 요리하는 사람 모두를 아우르는 개념이다”며 “최근 미식이란 말이 유행인데 어느 식당에 가서 먹은 음식 자체가 미식일 수는 없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렇다면 한평생 궁중음식을 연구하고 우리 음식을 만들고 고민한 한 원장이 생각하는 미식의 기준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한 원장은 잠시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

“미식이란 음식을 가운데 놓고 좋은 사람들끼리 만나서 대화를 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주관적인 기준에 따라 음식 자체의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니다. 함께 모여 같이 먹은 사람들끼리 ‘참 괜찮아’. ‘좋아’,‘즐거워’, ‘다음에 또 만나서 또 먹어볼까’ 하는 마음을 서로 나누는 게 바로 아름답게 먹는 것이다.”

▶한복려 원장은

1947년 서울생. 국가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궁중음식’ 기능보유자이자 사단법인 궁중음식연구원 이사장이다. 조선 왕조 마지막 주방 상궁에게 궁중 음식을 전수받아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한국 음식 문화를 보존하고 전승하는 데 큰 공을 세운 고(故) 황혜성 교수의 장녀로 고려대학교 대학원 식품공학과와명지대학교 대학원 식품영양학과에서 각각 석사와 박사를 수료했다. 1960년대부터 국가 전수생으로 궁중 음식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50여 년간 궁중 음식 전수 교육과 재현, 관련 연구서 저술 등의 활동을 펼치며 한국 음식 문화의 원형을 보존하고 전승하는 데 힘썼다. 2000년부터 국가 주요 행사에서 메뉴를 자문했으며 2004년 MBC 드라마 ‘대장금’에서 궁중 음식 자문과 제작을 맡아 전 세계에 한식을 알리는 중추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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