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서 한창 연기 중이던 배우 박상원이 관객을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아무렇게 헝클어진 머리에 거뭇거뭇하게 난 수염이 TV에서 보던 도회적인 이미지와 완전 딴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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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무대에서 관객과 만나는 만큼 긴장될 법도 한데 표정만큼은 여유로 가득했다. 박상원은 관객과의 호흡이 중요한 1인극답게 가까이 앉은 관객과 눈을 마주치기도 하고 박수도 이끌어내며 100여 분의 공연 시간을 묵묵히 이끌었다. 소파에 쓰러져 밀맥주를 들이키고, 무대에 덩그러니 놓인 콘트라베이스를 애증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는 능청스러운 연기에 웃음도 새어나왔다.
작품 속 주인공은 독일 뮌헨의 국립 오케스트라에서 활동 중인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이자 공무원이다. 그는 오케스트라 맨 끝 줄, 아무도 봐주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악기를 연주하며 특별할 것 없이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관객 앞에서 자신이 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게 됐는지, 콘트라베이스는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인지를 찬찬히 이야기하는 동안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의 사연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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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의 애잔한 사연처럼 보이지만 ‘콘트라바쓰’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꿈과 열정을 잃어가는 현대인에 대한 이야기에 더 가깝다. “제겐 재능이 아니라, 음악이 없어요. 음악을 잃어버렸죠”라는 대사에선 뭉클함이 느껴졌다. 공연이 끝난 뒤 땀에 젖은 채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서 작게나마 위안이 느껴졌다.
박상원은 프로그램북에 실린 배우의 글에서 “만약 기회가 주어진다면 앞으로도 파트리크와 계속 싸워가며 소외된 한 예술가의 초상을 좀 더 선명하고 진정성 있게 그려낼 수 있는 다음 프로덕션을 준비하고 싶다”며 “음악적 상상이 더 개입된, 감히 ‘박상원의 콘트라바쓰’로 준비하고 싶다”고 썼다. 오는 29일까지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