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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모리슨 허드슨 연구소 연구원은 최근 한 학술지에 기고한 글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모리슨 연구원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유럽·러시아 고문을 맡았던 인물이다. 그는 “미국의 불확실한 디지털화폐 정책이 다른 나라의 혁신을 이끌 수 있다. 중국과 EU 외에 다른 강대국들도 ‘달러 이후의 세계’를 위해 디지털 통화를 연구하는 세상에서 미국 만이 뒤처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달러 패권’구도에 변화 가져 올 ‘CBDC’
CBDC가 도대체 뭐길래 1944년 브래튼우즈체제 이후 80년 가까이 기축통화 역할을 해온 달러 패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걸까. 디지털화폐라고 하면 흔히 ‘비트코인’으로 대변되는 민간 발행의 암호화폐를 떠올리지만, CBDC는 발행 주체가 중앙은행이라는 점에서 완전히 다르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CBDC는 기존 법정화폐와 동일한 화폐 단위를 사용할 뿐 아니라 교환비율이 1대 1로 고정된다. 암호화폐가 ‘탈중앙화’를 내걸고 기존 법정화폐와 다른 독자적인 화폐 단위를 사용해 가치가 급등락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안정적이다. 개인 입장에서는 굳이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전자 결제가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편의성이 높다.
중앙은행 차원에서 CBDC는 통화정책 여력을 확대시킨다. 중앙은행이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면 개인이 이를 인출해 개별 보관할 수 없고, 마이너스(-) 금리를 부과할 경우 기간이 길어질수록 가치가 떨어지므로 소비나 투자를 할 수 밖에 없다. 과거 일본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해 집에 보관했던 것 같은 일탈현상을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부터 미·중 무역분쟁까지 전세계 경제에 해악을 끼친 사건들이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오히려 달러 패권은 더 공고해자 영국, 중국 등 직접 피해를 입은 경제대국들 사이에서 반발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그 결과물중 하나가 CBDC인 셈이다.
중국·유럽 등 앞다퉈 연구 진행..한국 뒤처져
전세계 중앙은행 가운데 CBDC 발행에 가장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수준급 연구를 진행한 곳은 중국 인민은행이다. 인민은행은 지난 2014년 CBDC 연구팀을 신설한 데 이어 연구소를 설립하고 지난해 9월까지 관련 특허 84건을 출원했다. 올해 디지털 화폐를 전 세계 중앙은행 가운데 가장 먼저 선보일 전망이다.
지난달 21일 일본은행과 ECB, 영란은행, 릭스방크, 스위스중앙은행, 캐나다은행 등 6개 중앙은행과 국제결제은행(BIS)은 ‘CBDC 활용 가능성을 평가하기 위한 그룹’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해당 그룹은 일종의 씽크탱크로, CBDC 발행을 염두에 두고 공동연구를 진행하게 된다.
지난해 화제를 모았던 페이스북 주도 암호화폐 ‘리브라(Libra)’는 최근 다소 위축되는 모습이다. 리브라는 주요국 국채와 은행예금으로 구성된 자산 바스켓에 연동한 암호화폐로, IT·금융분야 28개 기업이 초기 멤버로 참여했다.
그러나 전세계 금융 규제당국이 리브라 발행 이후 세계 금융 안정성을 우려하고, 미 의회에서도 논란이 일자 발행시기는 잠정 보류됐으며 참여의사를 밝혔던 기업들이 하나 둘 탈퇴하고 있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속도가 늦은 편이지만 이제라도 대비에 나섰다는 점은고무적이다. 4일 출범할 한국은행의 디지털화폐연구팀은 궁극적으로 CDBC 발행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한국금융연구원 등 연구기관들에서는 한국도 CBDC 도입 여부 및 형태를 연구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