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내는 신호, 알아차렸나요?

논란 소재 다룬 연극 '비프: BEEP'
'美총기난사 범임' 조승희 희곡 다뤄
사람과 사람 간의 이해에 대한 질문 던져
  • 등록 2021-02-25 오전 6:00:00

    수정 2021-02-25 오전 6:00:00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도시 외곽에 위치한 한 국제고등학교. 연극반 학생들이 모여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이 올리려는 연극은 ‘리처드 맥비프’. 엄마와 재혼한 새 아빠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한 13세 소년이 주인공인 희곡이다.

연극 ‘비프: BEEP’의 한 장면(사진=주다컬쳐)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다. 연습 도중 엄마 역을 맡은 세희가 아빠 역의 지수를 진짜로 때리는 일이 벌어지면서 연습은 잠시 중단된다. 학생들은 희곡을 쓴 인물에 대한 고민을 반복한다. ‘리처드 맥비프’를 쓴 작가가 바로 2007년 미국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인 조승희이기 때문이다.

충격적일 수도 있는 이 이야기는 지난달 1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3관에서 공연을 재개한 연극 ‘비프: BEEP’(이하 ‘비프’)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14년 전 사건을 무대에 소환한 연극은 치열한 경쟁에 놓여 있는 국제고 학생 3명과 이들을 지도하는 2명의 교사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서 때로는 불가능한 이해에 대한 문제를 던진다.

신인 극작가 신승원의 첫 연극이다. 신 작가는 최근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2015년 프랑스에서 머물렀는데 그때 테러 사건이 있었다”며 “프랑스에서 다양한 차별을 경험하던 중 맞닥뜨린 테러에서 평소와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됐고, 그런 고민 속에서 과거의 여러 사건을 돌아보다 조승희 사건을 다시 보게 됐다”고 집필 과정을 설명했다.

조승희가 남긴 희곡 ‘리처드 맥비프’는 그가 대학 수업에 제출한 것으로 A4 용지 10쪽 분량의 짧은 글이다. 분노와 욕설로 가득 찬 이 희곡은 사건 이후 조승희의 심리 상태를 보여준다는 분석과 함께 뒤늦게 화제가 됐다. 신 작가가 주목한 것은 “조승희가 왜 이런 희곡을 썼을까”라는 질문이었다. 그는 “누군가에게 나의 감정을 이해 가능하도록 설명하고 싶어도 그게 쉽지 않고, 때로는 그렇게 이해를 시켜도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될지 생각이 드는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물론 연극은 조승희가 남긴 희곡은 물론 조승희가 저지른 사건을 옹호하지 않는다. “범죄자와 작품은 구별해서 봐야 한다”는 대사가 나오지만 인물들은 이 말이 과연 옳은 것인지 계속해서 고민한다. 대신 인물들이 주목하는 것은 조승희의 희곡에 담겨 있는 일종의 신호(비프)다. 누군가는 알게 모르게 신호를 보내지만, 이를 알아채는 것은 쉽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이처럼 작품은 서로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렇지 못한 인물들을 통해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신 작가는 “이해할 의지도 없고, 이해시킬 수도 없고, 이해를 받을 수도 없는 문제를 가진 사람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조승희처럼 잘못된 방향으로 감정을 발현시키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놓고 살아갈 수 있을지 작품을 보고 다 같이 고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극 ‘엘리펀트 송’ ‘미드나잇 앤틀러스’ 등의 연출가 김지호가 신 작가의 희곡을 무대화했다. 배우 서승원, 이준혁, 주석태, 김지휘, 양승리, 윤정혁, 김주연, 서혜원, 유유진, 이우종, 김아석 병헌, 임건혁 등이 출연한다. ‘비프’는 오는 3월 21일까지 공연한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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