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창조경제, '숫자'에 얽매이니 오락가락

  • 등록 2013-06-06 오후 12:11:01

    수정 2013-06-06 오후 12:18:21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정부가 정책을 발표할 때 관심사 중 하나는 ‘숫자’다. 배경이나 목표, 세부계획도 놓칠 수 없지만, 소요 재원이나 정책이 성공했을 때 일자리나 경제성장률 같은 데 민감하다. 언론이 숫자를 챙기는 것은 정부의 정책은 국민 혈세(血稅)로 집행되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경제불황을 극복하며 사회복지를 확대하려면 세금을 올리거나 정부 지출을 합리적으로 써야 하는데, 어려운 살림에 증세는 쉽지 않다. 국가 재정의 건전운영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5일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창조경제 실현계획’을 발표했다. 국민 대부분이 ‘창조경제’라는 단어에 피로감을 느낄 정도이지만, 더는 정부 주도, 수출대기업 위주의 경제가 아니라 국민의 스마트한 아이디어를 무기로 창업과 신산업, 신시장을 일으켜야 한다는 방향성에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글로벌 경제위기와 신흥국의 추격으로 고용 없는 성장이 심각해진 이유에서다.

하지만 창조경제가 쉬운 일인가. 창조경제의 바탕에는 창의적 인재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학벌 중심, 스펙 중심 사회다. 벤처 창업을 크게 늘려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려 해도, 안 써 본 정책이 거의 없을 정도로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최문기 장관은 기자들에게 ‘창조경제 실현계획’의 구체성이 모호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다급해진 장관은 일자리 창출목표를 말해 달라는 질문에 “64만 개의 일자리 창출을 예상하고 있다”고 답하고 말았다.

지난 4월 대통령 업무보고 때는 향후 5년동안 1인 창조기업 9만 개를 포함해 신규 일자리 약 40만 개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두 달 사이에 일자리가 20만 개 늘어난 걸까.

미래부 관계자는 “40만 개는 미래부 정책으로 만들어지는 신규 일자리이고, 64만 개는 타 부처를 포함한 것”이라 해명했지만, 여러 부처의 창조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미래부와 타 부처 창조경제 일자리를 무 자르듯 구분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전일 발표된 고용률 70% 목표를 역산해 64만 개라는 숫자를 끼어 맞춘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소요 예산에도 논란이 있었다. 이상목 미래부 1차관은 재원을 묻자 “금년도가 6조 9000억 원쯤 되고, 5년간 사십몇조를 추계했다”고 말했다.

이후 언론은 정부가 5년 동안 40조 원을 투입해 창조경제를 만든다고 기사를 썼고, 미래부는 곧 자료를 내 “향후 5년간의 소요예산은 발표한 바 없다”고 한 발 뺐다. 이 차관 역시 40조를 언급하며 “예비타당성 조사가 확정안 되거나 하면 총액은 의미 없다”고 덧붙였지만, ‘40조’라는 숫자를 언급해 결과적으로 혼란을 부추긴 셈이다.

64만 개 일자리와 예산 40조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닐지 모른다. 지난 정부에서 발표된 와이브로 등의 사례에서 보면, 정부 목표와 정책의 결과가 전혀 다른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래부는 무슨 강박관념을 가진 것처럼 또다시 숫자에 얽매어 있다. 충분한 토론과 연구를 거쳐 만들어진 숫자라면 의미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약속정부, 국민과의 신뢰를 중시한다는 박근혜 정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최 장관과 이 차관이 장기적인 일자리와 재원은 창조경제의 역동성 때문에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어렵다고 당당하게 말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제 정부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기존 방식을 뒤쫓는 ‘권위 플랫폼’에서 벗어나 국민과 호흡하며 만들어가는 ‘오픈플랫폼’ 정책이 절실해 보인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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