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훈 "연극은 하늘에 있는 아내가 준 선물"

연극 '나생문'서 산적 역 맡아
배우·교수·연출하는 '멀티플레이어'
2008년 부인과 사별하며 큰 실의
"연극은 세상과 다시 연결하게 해준 은인
죽을 때까지 무대서 최선 다하고파"
  • 등록 2015-04-20 오전 8:09:00

    수정 2015-04-20 오전 9:11:12

‘교수이자 배우’인 김태훈은 산적으로 변신하기 위해 머리정돈도 하지 않았다며 멋쩍게 웃었다. 김태훈은 “가정과 직장에서 모두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살아간다”며 “비록 연기지만 사회가 준 가면을 벗어던지고 오롯이 나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연기에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사진=한대욱 기자 doorim@).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교수이자 배우’인 김태훈(49)이 또 한 번의 변신을 시도했다. 이번엔 ‘산적’이다. 김태훈은 내달 16일까지 서울 중구 필동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나생문’에서 순박하고 야생적인 캐릭터를 연기한다. 김태훈은 “아무래도 교수라는 타이틀이 있다 보니 그간 지적인 역할을 많이 했다”며 “이번엔 마초적이면서도 날것 그대로의 산적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나생문’은 일본작가 아쿠다카와 류노스케의 단편소설 ‘라쇼몽’(羅生門)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 ‘라쇼몽’은 1951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나생문은 일본 교토 근처의 도시로 통하는 작은 문이었으나 폐허가 돼 사체를 버리는 곳이 된 문. 작품은 대나무숲에서 산적이 무사를 살해하고 그의 아내를 성폭행한 사건을 바탕으로 산적, 무사의 아내, 죽은 무사의 혼령, 목격자인 나무꾼이 각자 자신의 처지에서 엇갈린 진술을 하는 모습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파헤친다. 극단 수가 2003년 창단극으로 선보인 이후 2009년까지 꾸준히 공연했다. 김태훈은 “‘나생문’은 몇차례의 공연을 통해 훌륭한 작품으로 검증됐다”며 “젊었을 때 불러줬으면 몸을 더 잘 썼을 텐데 나이 들어 하려니 체력이 달린다”고 말하며 웃었다.

김태훈은 ‘1인 3역’을 소화하는 멀티플레이어다. 세종대 공연학부 교수와 융합예술대학원장을 맡고 있을 뿐 아니라 배우와 연극연출가로도 활동했다.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무엇하나 포기할 수 없을 정도로 그에게 기쁨을 주는 소중한 일들이다. 사실 10여년 전만 해도 교수가 무대에 선다는 건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태훈은 연출과 배우, 교육자를 오가며 얻는 이득이 더 많다고 했다. “세 가지를 같이 하니 시너지 효과가 크다. 자기 역할만 소화하는 배우는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데 연출을 해보니 제3자의 시각에서 보는 눈이 생겼다. 항상 ‘현장은 강의실처럼 강의실은 현장처럼’ 대하려고 노력한다.”

인생의 큰 시련도 겪었다. 2008년 아내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사별하게 된 것. 준비 없이 찾아온 이별에 그는 큰 실의에 빠졌다. 술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계속됐고 학교도 휴직한 채 두 달간 히말라야를 떠돌았다. 폐인 같던 그를 세상과 다시 연결해준 것이 연극이다. 2009년 ‘진흙’의 자폐아 역으로 무대에 돌아왔다. 연기를 위해서라지만 대학교수가 머리를 빡빡 미는 건 당시로선 파격이었다. “이한승 극단 실험극장 대표가 ‘술 그만 마시고 나와서 작품하자’고 하더라. 지금까지도 이 대표에게 너무 고맙다. 감정을 무대에서 다 쏟아내니 살아있음이 느껴지더라. 다시 강단에 서게 해 준 신구 세종대 총장께도 감사하다.”

이후로는 꾸준히 연극을 해왔다. 지난해만 해도 ‘에쿠우스’ ‘고곤의 선물’ ‘우리는 영원한 챔피언’ ‘바냐와 소냐와 미샤와 스파이크’ 등에 연달아 출연했다. 노력에 대한 보상이었을까. 올해는 상복이 터졌다. ‘김동훈연극상’에 이어 ‘영희연극상’을 수상했다. 김태훈은 “연극은 하늘에 있는 아내가 준 선물”이라며 “아내에게 이 상을 바치고 싶다”고 했다.

꿈이자 목표는 ‘김태훈 액팅 클리닉 스튜디오’를 만드는 것. 세계 연기교육의 요람으로서 한국, 현대 연기메소드의 메카로서 대학로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고 싶어서다. 언어에 구애받지 않고 표현하는 훈련법과 연기트레이닝시스템을 개발할 계획이다. 김태훈은 “우리 문화콘텐츠가 세계서 인정받는 시대”라며 “해외 많은 배우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공부하는 터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무대에 서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을 생각이다. “연기를 하는 동안 온전히 나를 만난다. 그래서 행복하고 힐링이 된다. 처음 강단에 서고 연극을 했던 그때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

△김태훈은…

유학 1세대 연극배우. 러시아에서 7년간 연극을 공부했다. 모스크바 국립셰프킨고등연극학교를 졸업하고 러시아국립공연예술아카데미에서 연극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데뷔작은 1986년 어린이극 ‘오즈의 마법사’. 깡통 로봇으로 무대에 섰다. 이후 ‘어두워질 때까지’(1987), ‘인형의 집’(2000), ‘바냐 아저씨’(2002), ‘오델로’(2003), ‘진흙’(2005), ‘갈매기’(2008), ‘코펜하겐’ ‘휘가로의 결혼’(2010), ‘죄와 벌’ ‘벚꽃동산’(2012), ‘미운남자’ ‘14인 체홉’(2013) 등 다수의 연극에 출연했다. 이데일리 문화대상 연극부문 심사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

연극 ‘나생문’에서 산적을 연기하는 배우 김태훈(왼쪽)(사진=코르코르디움).
연극 ‘나생문’에서 산적을 연기하는 배우 김태훈(사진=코르코르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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