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축 기조에 유동성 악화…대형 은행도 ‘휘청’
국내 3대 신용평가사인 NICE신용평가는 이날 보고서를 통해 “가파른 금리 상승에 따라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SVB 사태의 전개와 사후 처리 과정은 금융시장, 경제 상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서도 이와 유사한 맥락의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은행업계 1, 2위를 다투는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의 지난해 3분기 기준 기업대출 중 중소기업의 비중은 각각 84.6%, 87.7%에 달한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 또한 안심할 수 없다. SVB는 자산을 채권에 주로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입었는데 국내 은행들도 금융성 자산 비중이 적지 않다.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총자산에서 유가증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2021년말 기준 17.2%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말(16.4%)보다 소폭 상승했다. 신한은행의 유가증권 비중은 지난해 9월말 현재 19.1%다.
손실흡수여력도 충분하다. 국내 5대 금융그룹(KB·신한·하나·우리·NH)이 지난해 쌓은 대손준비금 등 충당금은 5조8900억원으로 6조원에 육박한다. 건전성 지표도 양호하다. 지난해말 기준 국내 은행의 연체율(1개월 이상 연체 기준)은 0.25%에 그친다. 고정이하여신(NPL) 비율은 국민은행 0.34%, 신한은행 0.25%, 하나은행 0.21%, 우리은행 0.19%로 대체로 개선세를 나타냈다.
특히 국내 은행들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것은 정부다. 국내에선 4대 은행을 비롯해 농협·대구·수협·부산·씨티·SC 등 대다수 신용등급이 가장 높은 ‘AAA’를 받고 있는데 ‘유사 시 정부 지원 가능성’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구제금융 투입 여부를 고민하는 미국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
SVB에 이어 시그니처은행까지라 파산하면서 국내 은행의 과점체제 해소 방안으로 떠오른 ‘특화은행’ 도입 목소리에 힘이 빠질 전망이다. 논의 과정에서 소비자 편익 증진보다 금융 안정성 강화에 방점이 찍힐 가능성이 커지면서다. 특히 ‘기능’이 아닌 ‘영업 대상’에 특화한 은행 도입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위원회가 민·관으로 꾸린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는 국내 은행의 경쟁 촉진 방안으로 업무범위를 세분화한 특화은행 설립을 논의해왔다. 금융위가 지난 3일 발표한 1차 실무작업반 논의 자료엔 ‘벤처기업대출 전문은행’도 특화은행 예시로 포함돼 있다. 또 이번에 파산한 SVB를 해외사례로 들면서 “별도 인가단위에 따른 특화은행은 아니지만 사실상 고위험 벤처기업만을 고객으로 상대하는 특화은행처럼 기능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SVB 파산으로 특화은행 도입 논의엔 동력이 떨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SVB는 스타트업에, 시그니처은행은 상업용 부동산과 디지털자산에 특화한 은행이었다. 포트폴리오를 다원화하지 못할 경우 발생 리스크를 더 크게 떠안아야 한다는 점이 이번 사례에서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SVB와 시그니처은행 파산은 금리 인상기에 금리 리스크 대비를 못한 점이 여실히 드러난 사례”라며 “국내 은행 경쟁 촉진 TF가 지금까지 소비자 편익 중심에서 논의가 진행됐다면 앞으론 리스크 관리가 중요한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