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읽는증시]`애국 마케팅` 흥해야 애국인가

반일감정까지 맞물려 광복절 애국 마케팅 봇물
경쟁력 없으면 반짝에 그치고 지속 가능 어려워
  • 등록 2019-08-17 오전 11:00:00

    수정 2019-08-19 오후 1:28:11

이봉주 선수가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마라톤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신었던 코오롱 액티브 런닝화를 벗어든 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이봉주 선수 언론 제공)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1998년 4월20일, 코오롱(002020) 런닝화 ‘액티브’ 판매량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마라토너 이봉주 선수가 로테르담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7분44초로 한국 신기록을 새로 쓴 다음 날부터였다. 경기에서 이 선수는 액티브를 신고 달렸다. 그달 액티브 매출은 전년보다 3배 이상 늘었다. 그해 12월 방콕 아시안게임 이후로 액티브 매출은 다시 급증했다. 이 선수가 대회 1위를 차지하면서 신었던 액티브 런닝화를 벗어들고 기념 촬영한 게 계기였다.

이른바 `애국 마케팅`은 검증된 상술이다. 이로써 소비자는 국민이 되고, 소비는 애국이 된다. 소비와 애국은 항상 양립하기 어려워 딜레마다. 소비가 합리적인 행위이고 애국은 절대적인 행위인 편이다. 잇속을 따지며 애국하는 게 불가능한 것처럼, 절대적인 행위가 늘 합리적일 수는 없다. 1998년 액티브 매출이 급증한 것은 제품 질이 좋아서만은 아니었다. ‘방송과 신문에 대서특필된 이 선수의 골인 장면에 태극기와 함께 코오롱 액티브 마크가 선명하게 실린’(경향신문) 영향도 컸다.

매해 광복절 전후로도 이런 마케팅이 대세다. 올해는 반일감정도 세진 터라 기대치가 더했으리라. 이랜드월드의 스파오는 ‘로보트 태권브이’ 제품을, 신성통상의 탑텐은 ‘광복절 기념 티셔츠’를 각각 최근 출시했다. 두 회사는 일본 유니클로와 경쟁하는 SPA브랜드다. 편의점 업계에서 CU는 ‘독립 다시 새기다’ 캠페인을, GS25는 ‘독도 에코팩’ 증정 행사를, 세븐일레븐은 ‘중국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 행사를 각각 추진했다. 이마트24는 영화 ‘봉오동 전투’를 연상하는 ‘반합 도시락’을 출시했다.

보기 드물게 금융투자업계에서도 상품이 나왔다. NH아문디자산운용은 지난 14일 ‘NH-아문디 필승코리아 주식형 펀드’를 출시했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어려움을 겪는 부품·소재·장비 기업이 주요 투자 대상이다. 배영훈 대표는 상품 출시 간담회에서 “애국심에 호소하는 마케팅을 지양할 것”이라고 했는데, 상품 출시 첫날 정치인이 가입했다. 더불어민주당 일본경제침략대책특별위원으로 있는 김병욱 의원이 주인공이다.

1999년 6월28일치 동아일보 1면에 실린 815콜라 광고.(자료=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잘 팔리다 사라진 ‘815 콜라’가 사례다. 이 제품은 범양식품이 1998년 출시했다. 태극기가 떠오르는 외관과 광복절을 연상하게 하는 제품명은 ‘콜라 독립’이라는 소비자 정서를 건드렸다. 출시 1년 만인 1999년 콜라 시장점유율 11.7%로 3위를 기록해 2위 펩시를 0.2%포인트까지 추격`(한겨레신문)했다. 그러나 2004년 생산을 중단하고, 2005년 회사는 파산했다.

국내 1호 신발기업 화승도 거론된다. 앞서 1998년 `815 콜라`가 단기 성과를 낸 데에는 `1997년 IMF`라는 시대적 배경이 자리한다. 당시는 ‘외제보다 국산을 이용해 환란을 극복하자’는 국민 정서가 보편적이었다. 스포츠 브랜드 ‘르까프’를 보유한 화승은 1998년 여고생 모델이 태극 문양을 입힌 가방을 메고 있는 광고를 제작했다. 광고 문구는 ‘이제 국산품으로-르까프’. 회사관계자는 “IMF 이후 최대 30% 늘어난 매출 성장세를 이어가기 위해 국산을 강조한 광고”(경향신문)라고 설명했다.

화승은 지난 1월 회생을 신청했다. 이유야 여럿이겠지만 매출이 줄어든 탓이고 제품 경쟁력이 밀린 게 주된 원인이다. 앞서 범양식품 파산도 마찬가지였다. 콜라가 더는 팔리지 않은 까닭이고, 맛이 없었던 게 이유였다. 이들의 퇴장을 두고 한국인의 애국심 부족을 탓하는 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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