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독립전쟁)④유전투자는 로또만큼 어려워

  • 등록 2006-12-11 오후 2:00:00

    수정 2006-12-12 오후 12:11:06

[이데일리 이진우기자] 1983년 미국계 석유개발 기업 헌트오일 관계자들이 현대종합상사(011760)를 방문했다. 예멘이라는 나라에서 석유를 캐보려고 하는데 현대가 투자를 하라는 제안이었다. 갑작스런 제안을 받은 현대그룹 관계자들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예멘은 단 한방울의 석유도 나지 않는 나라였고 헌트오일도 그리 큰 석유회사가 아니었다. 사실 헌트오일은 일본의 종합상사 소고쇼샤에 같은 제안을 했다가 거절당한 뒤이기도 했다.

그러나 의외의 결론이 나왔다. 석유공사와 SK(003600)(당시 유공) 현대상사, 삼환기업 등 한국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전체 지분의 4분의 1 가량을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그때까지 단 한번도 시추해보지 않은, 업계 용어로 '와일드캣'이라고 불리는 처녀지였던 마리브 유전은 그렇게 개발이 시작됐다. 그리고 다음 해 석유가 발견되면서 시쳇말로 '대박'이 터졌다.

◇ 첫술에 배불렀던 예멘 마리브 유전

마리브 유전은 그 후로 20년동안 매일 10만배럴 가량의 원유를 뽑아내 그 중 4분의 1을 한국기업들에게 배당했다. 국제 원유시장에 내다 팔아 번 돈에서 채굴 비용을 빼고 예멘 정부 지급액을 제한 후 나머지를 투자비율대로 송금하는 방식이었는데 한국 기업들에게 돌아간 순이익만 20년간 10억달러가 넘었다.

                               < 석유 개발 과정>
 


당시 이 사업에 관여했던 현대상사 고위 관계자는 "지금 생각해도 성공확률이 그렇게 낮았던 곳을 어떻게 과감하게 투자를 하게 됐는지 모르겠다"며 "치밀한 검토가 있기도 했었지만 운도 매우 좋았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예멘 마리브 유전은 국내 최초로 성공한 유전개발 사업이면서 매장규모면에서도 최대, 벌어다 준 돈으로도 최대의 성과였다. 특히 마리브 유전의 성공 이후 한국기업들 사이에는 석유개발 붐이 불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마리브 유전의 성공은 한국 기업들에게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은 계기이기도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자만심을 심어준 사건이기도 했다"며 "이후에 추진했다가 실패한 상당수의 유전 사업들도 마리브 유전의 성과만을 바라보고 겁없이 뛰어든 결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 탐사광구는 산삼캐기, 생산광구는 나물캐기

석유개발사업은 '탐사광구'의 개발권리를 사들여 석유를 찾는 프로젝트와 이미 발견되어 생산되기 시작한 '생산광구'의 권리를 사들여 석유를 뽑아내는 두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탐사 광구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성공확률이 5~15%에 불과하다. 그래서 흔히 심마니가 산삼을 캐는 일에 비유된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성격을 가진 사업이지만 마리브 유전의 대박 스토리가 전해진 이후에 한국 기업들이 뛰어드는 광구는 열이면 아홉이 탐사광구다.

탐사광구는 산유국 정부가 후보지를 뽑아 공개입찰을 하기도 하고 과거에 석유개발을 했다가 당시 기술로는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되어 그냥 덮어버린 광구들이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기도 한다. 마치 부동산 투자와 흡사하다.

생산광구가 이미 개발이 진행된 도심의 아파트라면 탐사광구는 그린벨트에 묶인 토지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대부분 이런 광구의 지분을 사들이는 형식으로 투자한다. 아파트로 치면 분양계약을 하고 아파트가 지어져 가격이 오르길 기다리는 것과 같다. 아파트를 짓는 방법이나 토지를 찾는 노하우는 필요없고 다만 아파트를 보는 눈과 아파트 분양 정보만 잘 알면 된다.

그러나 메이저 석유사들은 산유국 정부나 기존 광구보유자들로부터 개발권을 낙찰받아 투자자들을 모으고 직접 석유탐사와 개발에 뛰어든다. 그만큼 이익이 많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의 시행사와 비슷한 역할이다. 실제로 광구의 대주주 지분을 갖는 운영사업자는 탐사와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을 면제받는 게 관행이다. 기술과 노하우만 있으면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도 가능한 구조다.




초기 탐사광구나 생산광구의 개발권 가격도 국제 유가에 따라 출렁인다. 석유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모든 업체들은 앞으로의 유가전망과 현재 광구지분 가격, 성공확률을 놓고 계산기를 두드리느라 여념이 없다.

석유공사의 한 관계자는 "요즘 시장에 나오는 광구들은 탐사와 개발이 어렵거나 그게 쉬우면 매장량이 적거나, 아니면 가격이 비싸다"며 "특히 중국이나 인도 등 석유수요가 많은 국가의 국영석유회사들이 세계를 휩쓸고 다니면서 광구 가격을 올려놓는 바람에 국제유가가 하락하면 오히려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큰 가격에도 팔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 광구도 부동산..프리미엄 오가고 '대박→쪽박' 한순간 

지난 6일 GS칼텍스가 탐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태국의 유전도 비슷한 케이스다. 원래 이 탐사광구는 석유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2년전 태국정부가 입찰을 통해 일본 회사에게 팔았다.

그 일본회사는 탐사를 시작하기 직전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지난 7월 그중 30%의 지분을 GS칼텍스에 넘겼다. 석유 탐사에 실패하면 총 투자비에서 각자의 지분비율을 곱한 금액만큼 손해를 보고 손을 털게 되는 것이다.

탐사시추를 통해 석유의 존재가 확인되면 평가시추를 통해 매장량을 추정한다. 그 매장량과 채굴비용을 계산해서 경제성이 있을 경우 채굴에 들어간다. 그때부터 그 유전은 '탐사광구'에서 '생산광구'로 간판이 바뀐다. 물론 지분 가격도 급등한다. 그린벨트의 개발계획이 확정되고 도로가 깔리기 시작하면 땅값이 급등하는 이치와 같다.

현재는 일본회사와 GS칼텍스가 7:3의 비율로 지분을 나눠갖고 있지만 개발이 진행되면서 이 지분의 전부나 일부를 다른 회사로 넘길 수도 있다. 아파트의 분양권 전매와 흡사한 방식이다.

그러나 이런 성공사례들만 있는 게 아니다. SK는 예멘 마리브 유전의 성공에 힘입어 1989년 미얀마 정부로부터 친두윈 지역에 위치한 C광구 개발권을 따내고 단독으로 석유탐사에 나섰다. 지분참여를 요구하는 해외 메이저업체의 숱한 제의가 있었지만 모두 물리쳤다.

그만큼 성공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라고 판단했지만 그 후 4년동안 석유는 발견되지 않았다. 93년 철수할 때까지 쏟아부은 자금은 5000만달러를 훨씬 넘겼다. 부동산은 오르지 않아도 그냥 보유하고 있으면 되지만 유전개발은 석유가 안나오면 시쳇말로 '꽝'이다. 부도난 회사의 주식같이 휴지가 된다.

업계 관계자는 "대체로 성공과 실패의 비율이 3:7정도만 되면, 즉 10개의 프로젝트 중에 3개만 석유가 나오면 된다고 본다"며 "시추공을 한 두 개 뚫어보면 결과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손절매가 가능한 반면 성공하기만 하면 유가가 비싸서 투자비의 3배 이상을 거둬들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석유생산에 필요한 시설들

그러나 석유개발 사업을 장기투자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탐사광구와 생산광구의 '포트폴리오'를 고려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생산광구도 대박이 아닐 뿐이지 잘 운영하기만 하면 충분히 수익성이 있는 사업이다. 심마니가 산을 돌아다니면서 산삼만 찾는 게 아니라 나물이나 약초도 캐다 팔면서 '심봤다'의 꿈을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최초로 투자한 해외 유전인 인도네시아 마두라 광구는 우리나라가 석유 탐사에 성공했지만 생산 개발기술의 부족으로 결국 석유를 뽑아내지 못하고 중국국영석유사에 넘겼다. 이 광구를 헐값에 사들인 중국국영석유사는 요즘도 이 유전에서 석유를 뽑아내며 고유가의 과실을 챙기고 있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갈수록 투자비용이 늘어나고 있어서 탐사광구 뿐 아니라 생산광구도 어느정도 매입해서 석유를 팔아가며 개발 비용을 충당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앞으로는 생산광구 매입도 적극적으로 고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사실은 인형?
  • 사람? 다가가니
  • "폐 끼쳐 죄송"
  • '아따, 고놈들 힘 좋네'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