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날을 만들자)<3부>⑪日금융빅뱅 "개인자산을 깨워라"

개인금융자산 활성화 통한 경제활성화 추진
역사상 첫 개인이 투자리스크 부담..금융 곳곳 변화
"아직도 직접금융 비중 낮아"..미완성 개혁
  • 등록 2006-11-20 오전 11:30:00

    수정 2006-11-21 오전 8:27:11

[도쿄 = 이데일리 박호식기자] 전 세계적으로 '저출산-고령화' 이슈가 크게 불거지고 있다. 이웃 일본에선 용어만 다를 뿐 '소자-고령화(少子-高齡化)' 문제로 한국 못지않게 걱정이 많다. '저출산-고령화' 이슈는 각국의 공적연금 토대를 흔들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저금리 시대'도 본격적으로 도래했다.
 
이에 세계 각국은 자국 국민들의 노후대비 자조(自助) 노력을 도모하기 위해 '투자환경' 조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테마기획 3부 '투자는 글로벌 코드'에선 저금리-고령화의 파편을 피하기 위한 각국의 진지한 노력을 살펴보고, 한국에 대한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1995년, 엔화가 약세로 갈 것으로 보고 아내한테  달러예금에 가입하라고 했어요. 그러나 은행에서는 '위험하다'며 두번이나 아내를 돌려 보내더군요. 결국 직접 가서 은행원을 설득해 가입했는데, 예상대로 큰 수익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은행들이 나서서 이런 상품을 앞다퉈 독려하고 있어요."

최근 일본 도쿄에서 만난 다이이치투자고문의 시모무라 미쓰오 사장은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개인이 자기판단으로 리스크(위험)를 짊어져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며 일본판 금융빅뱅의 정의를 이렇게 내렸다.

그는 "금융자유화 이전에는 투자에 따르는 위험을 국가와 은행이 부담했다"며 "이같은 구조가 더 이상 어렵게 되자 투자에 대한 위험을 국민(개인)들이 스스로 부담토록 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에게 넘겨진 투자리스크, 금융빅뱅은 일본 금융시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온 것일까.

◇간접금융시스템의 한계.."잠자는 개인금융자산을 깨워라"

1990년대 들어 일본은 부동산가격과 주가상승으로 형성된 버블경제가 붕괴되며 장기경기 침체에 접어든다. 흔히 말하는 '잃어버린 10년'이다.

1970년대 두차례 석유파동 와중에도 4% 이상 성장률을 기록했던 일본경제는 연평균 실질성장률이 1%대로 쪼그라들었다. 실업자는 많아지고 기업 도산으로 금융기관의 불량채권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정부 통제와 은행이 중심이 돼 경제성장을 주도했던 간접금융시스템은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막대한 부실채권을 떠안은 은행들은 대출을 줄였고, 기업들의 소극적인 설비투자로 산업은 침체됐다.

결국 1996년 하시모토 총리 자문기관인 경제심의회는 ▲정보통신 ▲물류 ▲금융 ▲토지·주택▲고용 ▲의료·복지 6개 분야를 주요한 개혁과제로 선정하면서 경제구조 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에 따라 그 해 11월 하시모토 총리는 2001년을 목표로 한 '금융개혁안'을 발표했고, 일본판 금융빅뱅이 시작된다.

"개인금융자산 1200조엔의 1%(12조엔)만 수익을 내면 모든 국민들의 1년 소비세에 해당하는 자금이 창출된다. 개인금융자산의 수익률을 높여 소비를 확대하고 세금을 늘려 경제활성화를 도모해야 한다". 고이즈미 정권에서 강력한 금융·기업개혁을 주도했던 다케나카 헤이조 전 경제재정 및 금융장관이 했다는 이 말은, 일본 금융빅뱅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잘 설명해준다.

시모무라 사장은 "일본 금융빅뱅의 궁극적인 목적은 당시 1200조엔에 달하는 개인금융자산을 어떻게 활용해 경제를 활성화 하느냐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절반 이상이 우체국이나 은행예금으로 묶여있는 개인금융자산을 산업이나 기업투자로 흘러 들어가도록 물꼬를 터줘야 했다는 것.

이에 따라 일본정부는 금융개혁에 대해 자유화(Free), 공정경쟁(Fair), 글로벌화(Global) 세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개혁의 초점은 증권시장(직접금융) 활성화였다.

개인의 주식시장 유인을 위해 주식매매 수수료를 자유화 했다. 은행에 예금으로 잠겨있는 자금을 증권시장으로 옮겨오기 위해 증권을 자회사로 둘 수 있는 지주회사 설립이 허용됐다. 금융기관간 장벽은 지속적으로 제거돼 왔고, 내년 금융상품거래법이 시행되면 남아있는 장벽마저 허물어진다.

다른 한편으론 기업 회계제도를 개선시켰다. 회계제도 개선은 세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과제였다.

우선 투자자들을 직접금융시장으로 유인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회계를 깨끗하게 만들어 기업을 공개하도록 해야 했다. 또 하나는 기업·산업구조 개편을 위해 인수합병(M&A)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를 위해선 기업의 가치(가격)산정을 정확히 할 수 있도록 회계를 표준화할 필요가 있었다. 이와 함께 외국자본 유치를 위해 국제적인 회계기준을 도입해야 했다.

일본 정부는 또 예금자 보호를 위해 도입됐던 페이 오프(Pay Off:금융기관 파산시 예금전액 보호)를 해제해왔다.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가속화하고, 예금보호를 위한 재정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이에 따라 개인들의 금융자산 리스크도 높아졌다.

이 외에도 안전자산으로 인식돼 300조엔에 달하는 자금이 집중되고 있는 우체국금융에 대한 민영화도 추진해왔다. 개인자산이 우체국금융을 통해 공적자금으로 집중돼 민간금융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 금융시장 곳곳에서 감지되는 변화들

이같은 개혁은 일본 금융시장 곳곳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일본의 가계 금융자산은 10년전 1200조엔에서 1500조엔으로 불어났다. 인구감소, 노령화 등에 부담을 느낀 일본 투자자들은 예금이나 금리 1%대 국채 매입에서 벗어나 국내 주식시장과 해외투자로 눈을 돌리고 있다.

올해 초 개인들의 외화자산은 30조엔을 넘어 40조엔에 가까워지고 있다. 특히 중국, 인도 등 신흥국가의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는 펀드 판매 규모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7월말 기준 인도시장 투자는 1년전에 비해 642배, 중국은 3.5배가 늘었다.

일본내 주식투자자도 크게 늘어, 지난 95년 이후 10년만에 1000만명 가량이 늘어나 4000만명에 가까워지고 있다.

금융기관들의 구도 또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우선 우체국금융의 경우 지난해부터 투자신탁 판매를 시작했는데, 1년여만에 3600억엔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는 주로 우체국예금이 투자신탁 상품으로 전환된 것으로, 가입자들이 안전한 우체국예금에서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높은 투자신탁상품으로 갈아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자산운용업체들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 10년간 투자신탁운용사는 3배가 늘었고, 투자자문은 1.5배가 증가했다.

또 6대 대형은행의 수익은 투자신탁상품과 보험상품 판매 수수료 수익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고 있으며, 증권중개나 투자신탁상품을 판매하는 독립적인 금융대리점도 700여개가 생겼다. 이들 금융대리점에는 자동차딜러들도 참여하고 있다. 이외에도 지난해에는 소프트뱅크와 스미토모신탁은행이 온라인은행을 설립하기도 했다.

다이와증권 투자신탁부 마쓰바라 히데토 차장은 "금융기관간 장벽허물기는 대부분 완성됐다"며 "부실채권으로 인해 공적자금이 투입됐던 은행들이 이 자금을 갚았기 때문에 향후 적극적인 경영에 나서면서 금융업계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료: 일본경제신문

◇ '미완성 개혁'..여전히 굼뜬 개인금융자산들

그러나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금융빅뱅은 '미완성' 또는 '현재진행형'이라는 평가가 많다.

일본은 아직까지 개인금융자산에서 직접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은 낮다. 지난해말 기준 개인금융자산 1500조엔중 현금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51.9%에 달한다. 투자신탁·채권·주식 등 투자형상품 비중은 17.6%, 보험과 연금 25.9% 가량이다. 미국의 투자형상품 비중이 53%대임을 감안하면 많이 부진하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마쓰바라 차장은 "1980년 후반 호황기에 직접금융 비중이 다소 높아졌으나, 버블붕괴 후 투자자들이 주식과 펀드투자에서 큰 손실을 본 뒤 심리적인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직까지 증권사나 투자신탁에 대한 불신감이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2003년까지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경제가 지속됐다"며 "따라서 현금성 자산을 갖고 있으면 되지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투자에 나설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팽배했다"고 덧붙였다.

시모무라 사장은 "개인저축의 70% 이상을 60세 이상 연령대가 보유하고 있어 리스크자산 투자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며 "이에 따라 증여세를 낮춰주는 등 상속이 빨리 이뤄지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개혁 성과에 대한 후지와라연구소 소노야마 히데아키 겸임연구원의 시각은 더 혹독하다.

대장성 관료출신으로 80대임에도 열정적인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이 노(老) 논객은 "표면적으로 보면 금융개혁으로 이런저런 변화가 있었다고 보이지만,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일본에서 투자는 사실상 죽은 단어"라고 주장했다.

그는 "금융개혁 결과 일본은 부의 공동화(富의 空洞化)가 발생하고 있다"며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이 커졌지만, 대부분의 우량주는 외국인 투자가들이 보유하고 있고 일본 기관이나 개인이 보유한 규모는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일본이 투자활성화를 유도해왔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

그는 "일본은 은행중심, 단기적인 관점에서 자금을 활용하는 구조를 가져왔다"며 "이 구조가 장기신용은행 부도 등으로 깨지면서 자본시대가 도래했지만 경쟁력이 없어 외국자본에 대응할 능력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비해 미국은 다양한 금융노하우를 축적, 일본시장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부를 가져가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밖에도 "금융자산 보유자들은 제로금리에도 불구하고 축적된 자산이 있어 어떻게든 먹고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경제가 허약하게 되고 이 문제는 다음세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 한국·일본, 오십보 백보

미완의 개혁으로 평가되고 있는 일본의 금융빅뱅, 그러나 우리나라 현실도 그리 다르지 않다.

지난해말 한국의 개인금융자산은 1408조원. 이중 현금자산 비중은 46.4%로 일본보다 다소 낮다. 투자형상품비중은 29.5%로 일본보다 약간 높고, 보험과 연금은 23.1%가량이다. 일본에 비해 현금자산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고, 특히 투자신탁에 대한 신뢰회복이 빠르고 투신비중도 상대적으로 높아 긍정적이다. 그러나 아직 미국 등에 비하면 투자형상품비중이 많이 낮은 등 개선의 여지가 많다. 

소노야마 연구원은 "한국도 일본처럼 유교적사상이 배경이 돼 잘못된 정책이나 상황에 대해 기록하고 면밀히 분석하는데 인색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미국에서 작성된 '1920년대 대공황과 주식시장 폭락사태'에 대한 1만200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가 일본에서 묵혀지다가 중국계 교수가 발견, 중국으로 가져가 연구에 나선 일화가 있다. 록펠러재단을 통해 일본에 기증된 이 보고서 복사본을 일본의 학자나 관료들은 무시하고 넘겼다는 것.

소노야마 연구원은 "여러 가지면에서 한국과 일본보다 중국이 세계적인 투자은행을 만들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있다"며 주의를 촉구했다.

 

* 협찬 : 대우증권,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현대증권, 증권선물거래소, 증권예탁결제원, 한국증권업협회, 자산운용협회
* 후원 :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
* 도움주신 분들 : 강창희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장, 김일선 자산운용협회 이사, 변진호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 임종록 한국증권업협회 상무, 최창환 대우증권 전문위원 (가다나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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