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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붉은 바탕을 가르는 기둥이 우뚝 섰다. 탑인 듯도 하고 빌딩인 듯도 하다. 칼로 저민듯한, 아니라면 도려낸 듯한 날렵한 형상. 때론 부드러운 곡선으로, 때론 예리한 직선으로 더할나위 없이 강렬한 원색 ‘빨강’의 중앙을 관통하고 있다. 가장 뜨겁고 가장 역동적인 색으로 대신한 저것은 다름 아닌 ‘시간’이다. 그것도 바로 지금의 ‘현재’. 높이 세운 기둥은 그 현재를 쪼갠 ‘시간의 틈’이고.
작가 이은미(삼육대 아트앤디자인학과 교수)가 신작 ‘시간의 틈’(Cracks in Time·2020)을 선보인 곳은 ‘2020 마니프-뉴시스온라인아트페어’. 연작 ‘시간의 틈’을 비롯해 작가의 작품세계를 대표하는 추상회화 10여점을 걸었다. 이 작가는 해마다 마니프아트페어에 나서는 130여명 초대작가의 일원으로 참가하고 있다. 지난해 여기서 이 작가는 ‘기억의 시간이 머무는 곳’이란 주제로 ‘카이로스’(Kairos) 연작 등 13점을 내걸었더랬다.
이 작가는 “현재에는 과거·미래와 통하는 시간의 틈이 존재하고 현재의 매 순간, 그 찰나에 과거·미래가 그 틈을 파고든다”며 “아름다운 추억이든 고통스러운 기억이든 과거는 그 시간의 틈에 아로새겨지고, 설레는 바람이든 불안한 염려든 미래는 그 시간의 틈을 비집고 나오지 않느냐”고 말한다. 결국 모든 시간은 현재를 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가올 현재, 지나가는 현재, 지나간 현재’, 바로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1913~2005)의 ‘정신이완의 개념’처럼 말이다. 이 작가는 리쾨르의 이 개념을 자신만의 시선과 붓질로 옮겨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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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2020 마니프-뉴시스온라인아트페어’는 지난해까지 매년 가을 열어온 ‘마니프서울국제아트페어’를 올해 온라인으로 옮겨온 전시다. ‘가족 나들이 미술장터’로 중산층의 미술품 구매 욕구를 쉽고 친근하게 이끌었던 행사가 올해는 코로나 여파로 현장 대신 온라인으로 장을 이동했다. 국내 대표 작가들이 각자의 부스에 개인전을 차린 ‘군집 개인전’ 형태로 운영한다. 11월 말까지 예정했던 기간을 연장해 이달 말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