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도치
"이거 툭툭 발로 차기만 하고 먹지도 않던 건데, 출세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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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속초 중앙시장 지하 수산시장 수조에서 야릇하게 생긴 '생명체'가 둥둥 떠다녔다. 야구공보단 크고 배구공보단 작은 크기. 회갈색에 옅은 무늬가 있다. 물에 둥둥 떠다니기도 하고 수조 유리벽에 붙어 있기도 한다.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아니라, 부표처럼 둥둥 떠있는 느낌. 손으로 대도 재빨리 피하지 않는데, 만지면 물컹하고 미끈하다.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묻고 싶다.
"도치라는 생선이에요. 이게 참 말(이름)이 많아. 오소리라고 부르기도 하고, 심통 난 사람 같다고 해서 '심퉁이'라고 하기도 하고." 속초에서 도치알탕으로 손꼽히는 '통천 청기와집' 주인 김용제(65)씨가 말했다. 잡히면 재수 없다고 바다에 던져버리거나, 너무 많이 잡혀서 지겨워 걷어찼을 정도라고 했다. 김용제씨의 아들은 "어릴 때 바닷가에서 놀다가 배고프면 바위에 붙은 도치를 삶아서 먹기도 하고 그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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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나 잡을 정도로 흔하고 인기 없던 생선 신분이 최근 격상했다. 동해에 고기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도치를 맛있게 요리하는 방법이 퍼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도치 인기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게 김용제씨 같은 사람들이다. "우리 고향 통천에서 먹었죠. 어릴 적 부모님이 해주시던 맛이 이 안에 들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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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칼한 묵은 김치와 씁쓸하면서 고소한 들기름 속에서 알이 오독오독 씹히는 맛이 독특하다. 흐물흐물한 도치 살은 젤라틴 덩어리다. 무미(無味)하지만 쫄깃쫄깃 씹는 맛은 기막히다. 시원하고 얼큰한 국물에 밥을 말아 먹는다. 순식간에 밥 한 공기가 사라진다.
도치 암컷 한 마리가 들어가는 한 냄비 3만원. 명태 한 토막을 넣은 명태칼국수(6000원), 메밀떡국(6000원), 모둠생선조림·장치조림·장치찜(2만5000·3만·4만원)도 훌륭하다. 속초 조양동 삼성디지털프라자 맞은편 (033)631-2888
◆ 인상은 험악해도 맛은 선하기 짝이 없네-물곰
물곰의 정식 명칭은 곰치. 인상이 보통 험악한 게 아니다. 길고 굵은 몸통이 구렁이 같기도 하다. 험상궂은 인상 덕분에 설움도 많이 당했다. 도치와 마찬가지로 '재수없다'며 잡혀도 바다로 되던져지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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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와 양양 등지에서는 고춧가루를 풀어 얼큰하다. 동해·삼척·울진 등지에서는 묵은 김치만으로 곰치국을 끓인다. 고춧가루와 묵은 김치를 함께 넣기도 한다. 회로 먹기도 하고, 말렸다가 쪄 먹기도 한다. 흐물거리는 부위가 적은 수놈이 낫다고들 한다. 국물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속초에선 사돈집(033-633-0915), 옥미식당(033-635-8052) 등이 물곰탕으로 이름났지만 맛 차이가 크지는 않다.
시세대로 받는데 요즘 1만3000~1만5000원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