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TMI]전직원 유급 연차휴가 쓰라는데…"강제해도 되나요"

딜로이트안진, 다음주 일주일간 연차휴가 지침
"코로나19 확산막자"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적극 동참
근로기준법 위반 가능성 제기돼 고용노동부 진정 예고
  • 등록 2020-03-28 오후 2:33:53

    수정 2020-03-28 오후 4:21:43

여의도 증권가는 돈 벌기 위한 정보 싸움이 치열한 곳입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쪽지와 지라시가 도는 그야말로 정보의 홍수인 곳입니다. 너무 정보가 많아서 굳이 알고 싶지 않거나 달갑지 않은 내용까지 알게 되는 TMI(Too Much Information)라는 신조어도 있는데요. TMI일 수도 있지만 돈이 될 수도 있는 정보, [여의도 TMI]로 풀어봅니다.

[이데일리 유현욱 기자] 4대 회계법인 중 하나인 딜로이트 안진이 전 임직원들에게 유급 연차휴가 사용을 사실상 강제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창립기념일인 4월 1일을 전후해 나흘을 ‘블록 홀리데이’ (Block Holiday) 휴무일로 명명하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일주일간 재택에서 휴식을 취하라고 했다죠. 정부가 오는 4월 5일까지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 기간’으로 지정한 데 적극적으로 동참한다는 차원에서 내려진 결정이라고 합니다.

언뜻 보면 임직원들이 환영할 일로 보입니다. 기말 감사로 축낸 몸을 회복할 시간이 생겼고, 한 주간 쉬는 동안에도 정상 급여를 준다니까요. 아시아나항공과 같은 기업이 무급휴직을 확대하는 것에 비하면 나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습니다. 근로기준법 제60조에 따라 근로자에게 주어진 연차 유급휴가를 소진하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셈이기 때문입니다. 다가오는 여름과 겨울 장기간 휴가계획을 세웠다면 예기치 않게 수정해야 할 판이니까요. 법상 가산휴가를 포함한 휴가 일수는 최장 25일입니다.

딜로이트 안진 측은 권고에 불과할 뿐 강제력이 없다고 해명하지만, 직원들은 ‘반강제적이다’ ‘심리적 압박이 크다’고 반박합니다. 딜로이트 안진에 딜로이트 컨설팅을 포함하면 한국 딜로이트 그룹 전체 임직원은 2500명가량입니다. 원칙적으로는 이들 전원이 블록 홀리데이 적용 대상자입니다. 딜로이트 안진은 예정된 업무가 있거나 긴급한 업무가 있는 경우 예외를 뒀다고 부연합니다. 이들에게도 차후 대체휴가를 쓰도록 안내했다는 설명과 함께이죠. 다만 그 규모에 대해서는 파악하기 어렵다는 말만 반복합니다.

통상 12월 말 결산법인은 3월 31일까지 법인세를 신고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 회계사들이 기업회계와 세무회계 간 차이를 조정하는 업무가 긴박하게 이뤄집니다. 이런 일을 주로 하는 세무자문본부 인력 일부는 예외를 인정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상장법인 재감사에 투입되는 회계감사본부 회계사들 역시 정상 업무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입니다.

창립기념일을 전후해 블록 홀리데이를 두는 것은 딜로이트 안진만의 전통으로, 지난해까지는 하루에 불과했습니다. 애초 올해에도 유사한 일정을 계획했었으나 막판에 기간이 확 늘어난 것인데, 이를 일방적으로 통보한 데 따른 절차상 하자 등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습니다. 삼일PwC·삼정KPMG·EY한영 등 나머지 빅4 회계법인들 역시 내심 강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에 발맞춰 필수 인력이 아니라면 유급 연차휴가를 활용했으면 바라지만, 종국에는 자율에 맡긴다고 합니다. 전례나 동종 업계에 비춰봐도 이례적이라는 거죠.

일부 딜로이트 안진 직원들은 코로나19를 빌미로 부당 노동행위가 끊이지 않는다고 판단,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할 계획으로 전해졌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양측 의견을 충분히 들어보고 판단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지난 9일 ‘코로나19 관련 노동관계법 주요 Q&A’를 배포하며 “연차 유급휴가는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줘야 하므로 근로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강제로 사용하도록 할 수 없다”고 못 박은 바 있죠. 이를 위반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

고용노동부가 진정을 접수해 특별근로감독에 나선다면 노사 양측에 얼마나 사전교감이 있었는지가 관건이 될 전망입니다. 근로기준법 제62조를 보면 사용자는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에 따라 연차 유급휴가일을 갈음해 특정한 근로일에 근로자를 휴무시킬 수 있는데, 블록 홀리데이가 이에 해당하는 걸로 추정됩니다. 문제는 블록 홀리데이가 하루에서 나흘로 연장됐는데, 추가로 이를 문서에 기록했느냐겠지요. 딜로이트 안진은 이와 관련 명확한 대답을 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딜로이트 안진이 코로나19로 달라진 근무환경 속에서 직원들과 갈등을 겪은 것은 이번만이 아닙니다. 주말이나 휴가기간에도 매일 법인 홈페이지에 건강상태를 작성케 하고 이를 누락하면 인사평가에 반영해 불이익이 준다는 지침을 일부 파트너(임원)가 전달하자, 지나치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코로나19 대응에 전력을 기울이자는 취지는 좋지만, 인사고과를 운운한 것이 반발을 부른 것이죠.

그럼 딜로이트 안진이 유독 구설에 오르는 이유는 뭘까요. 회계 업계에서는 결국 인건비 부담을 이기지 못해 연이어 무리수를 던지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딜로이트 안진은 지난해 경력직 회계사를 대거 채용했습니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시행을 앞두고 회계법인 역량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등록 회계사 숫자를 늘리기 위해서였다죠. 그런데 삼성전자를 수임한 것 외에 생각보다 감사인 지정 효과를 보지 못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회계법인 덩치는 한껏 불렸는데, 수익이 그만큼 늘지 않을 것이 불 보듯 하니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겁니다. 유급 연차휴가를 소진하지 못하면 지급해야 할 수당조차 절감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이라는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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