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 금대봉…얼레지꽃 사이로 요정의 속삭임 들려올 듯

동서남북 어디로 달려도 입이 즐겁다
  • 등록 2006-05-18 오전 10:26:58

    수정 2006-05-18 오전 10:26:58

[조선일보 제공] 태백산 금대봉

“엄마! 조심, 조심. 밟으면 꽃이 아야 해요. 꽃이 피가 나요.” 도시는 이미 반팔 티셔츠 차림이 주류를 이루고 있건만 태백시와 정선군의 경계를 이룬 두문동재(싸리재·1268m) 고갯마루는 아직도 겨울이다. 산릉의 숲은 아직도 누런빛이고, 담요를 뒤집어써야 할 만큼 차갑고 찬 바람이 불어댄다.

‘이런 데 무슨 꽃이 있을까’ 미심쩍은 마음을 갖고 금대봉 정상으로 향했다. 산림도로 변의 산죽 군락이 맥 빠지게 하더니 곧 노란 양지꽃과 흰 별 모양의 개별꽃이 얼굴을 피게 한다. 얼레지는 벌써 지는 꽃도 있고, 햇살이 내리쬐기를 기다리면서 움츠린 꽃들도 많다.

▲ 천상화원이 이런 분위기일까. 구름이 흩어지면서 해가 나자 자줏빛 얼레지, 보랏빛 왜현호색, 노랑매미꽃이 활짝 피었다.

이제 신록빛에 물드는 숲길은 너무도 호젓하고, 강원 내륙의 고봉준령을 모두 길동무 삼아 걷는 듯 편안하기만 하다. 거기에 산릉이 온통 꽃밭을 이루고 있으니 이게 천상화원이 아니겠는가. 북한강과 동강의 물줄기를 가르는 ‘양강발원봉’ 금대봉 정상에서 백두대간과 헤어져 대덕산 쪽으로 내려서자 진영이네 가족이 풀밭에 앉아 야생화를 살펴보고 있다.

“진영아! 이게 한계령풀이야, 저건 홀아비바람꽃이고-.”

아빠 박용연(제천산림조합 근무)씨 가족은 동틀 즈음 두문동재에 도착해 금대봉을 찾았다. 엄마는 야생화 촬영에 몰두하고 있지만 아빠는 아이들에게 야생화를 가르쳐주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꽃들을 어른들만 알고 지낸다는 게 아쉬워서다. 오빠 진욱(홍광초 1년)은 담요를 뒤집어쓴 채로 카메라 파인더에서 눈을 떼지 않고, 진영(4)이는 엄마가 몸을 조금만 옮겨도 야단이다. 꽃이 다칠까 걱정이 되어서다.

▲ 노랑매미꽃 - 홀아비바람꽃

“우와~, 이거야말로 정말 천상화원이네.”

 
야생화만큼이나 밝고 맑은 웃음을 짓는 진영이와 헤어져 능선 너머 산길로 접어들었다. 고목나무샘 길로 들어서자 함께 산을 오른 배병달(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씨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노란꽃, 흰꽃, 보랏빛꽃 등 십여 종의 야생화가 산사면 곳곳을 울긋불긋 수놓고 있었다. 노랑나비 서너 마리도 하늘하늘 날다 꿩의바람꽃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나비도 꽃이 되고 싶은가 보다.

 
왜현호색 처녀, 산괴불주머니 처녀, 양지꽃 선녀, 숲의 요정 얼레지가 보내는 유혹의 눈길에 머뭇거리다 수줍게 핀 할미꽃이 꽃밭을 이룬 분주령을 거쳐 대덕산 정상까지 뽑았다. 풀밭에 앉아 땀을 식히는 사이 바람에 구름이 흩어지면서 옅은 잉크빛 하늘이 드러났다. 골짜기 너머 매봉 능선의 풍차는 열심히 돌고, 태백산에서 매봉과 두타산을 거쳐 오대산까지 치오른 백두대간이 한눈에 들어왔다. 불현듯 하늘하늘 날아 고목나무샘 꽃밭에 내려앉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국내 최대의 야생화 군락지로 알려져 있는 금대봉(1418.1m)~대덕산(1307.1m) 산줄기에는 한계령풀, 대성쓴풀, 모데미풀 등 희귀식물이 자라고, 하늘다람쥐, 꼬리치레도룡뇽 등이 서식하고 있어 126만평의 넓은 지역이 자연생태보전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따라서 지정 탐방로를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금대봉 산행은 해발 1268m 높이의 두문동재를 기점으로 삼기 때문에 수월한 편이다. 대개 금대봉 너머 초원지대나 고목나무샘을 왕복한다. 한강발원지로 꼽히는 고목나무샘은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일지라도 한 시간이면 다가설 수 있으나, 야생화를 꼼꼼히 관찰하고 사진촬영에 몰두하다 보면 한나절은 후딱 지나간다. 금대봉 직전 갈림목에서 계속 산림도로를 따라도 고목나무샘 쪽으로 간다. 금대봉에서는 리본이 많이 매달린 대간길을 버리고 왼쪽 소로를 따라야 고목나무샘 쪽으로 내려선다.

산행 재미를 더하려면 검룡소(儉龍沼)까지 걷는다. 고목나무샘을 지나 완경사 능선을 따르다가 분주령에서 오른쪽 골짜기로 내려선다. 산불감시초소(주차장)를 500m쯤 앞둔 지점에서 오른쪽 개울을 건너 숲길을 따라 10여분 오르면 검룡소다(4시간).

북한강발원지인 하루에 2000t 물이 샘솟는 신비한 곳이다. 분주령에서 여름 꽃이 장관인 대덕산을 올랐다가 검룡소를 내려선다면 5시간 정도 잡아야 한다. 검룡소로 하산할 경우 두문동재로 돌아가려면 태백시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10월말까지 야생화가 만발하는 금대봉과 대덕산 일원은 올 봄 기온이 낮아 여느 해에 비해 꽃이 열흘 정도 늦게 피고 있다고 한다. 두문동재는 도시의 평지에 비해 기온이 5~6℃ 낮다. 따라서 긴 팔 옷이나 바람막이를 지참하는 게 좋다. 휴대용 식물도감 한 권은 꼭 휴대하도록 하고, 아무리 갖고픈 꽃이라도 눈과 마음에 담는 것으로 만족하기를 바란다.


●가는 길중앙고속도로 제천IC → 제천시외곽도로 → 제천·영월 방향 자동차전용도로 → 38번 국도 → 신동 → 고한 → 두문동재영동고속도로 진부IC → 59번국도 → 정선 → 문곡 → 38번국도 → 고한 → 두문동재. 수도권에서 약 4시간. 두문동재로 오르려면 정선 방향에서 두문동재터널로 들어서기 직전의 갈림목에서 오른쪽 도로를 타야 한다. 검룡소는 태백시에서 35번 국도를 따르다 피재(삼수령)를 넘어 약 5㎞ 지점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6.5㎞ 더 들어가야 한다.●교통두문동재행 노선버스는 없으므로 택시를 이용한다. 태백시~두문동재 1만5000원 선, 두문동재~검룡소 주차장 3만원 선. 태백개인택시 (033)552-4747. 서울 동서울터미널(02-446-8000), 대구 북부시외버스정류장(053-357-1851), 대전 동부 시외버스 공용터미널(042-624-4451), 강릉 종합버스터미널(033-643-6092) 등지에서 태백행 노선버스가 다닌다. 1일 9회 운행하는 청량리 발 태백선 열차 이용. 승용차로 두문동재에 오르려면 정선 방향에서 두문동재터널 직전 갈림목에서 오른쪽 찻길을 따라야 한다.●숙박 (지역번호 033) 태백시 철암동 태백고원자연휴양림(582-7440, forest.tae baek.go.kr)과 태백산 도립공원 내 태백산민박촌(553-7460, minbak.taebaek.go.kr)은 인기 있는 숙소다. ●맛집 태백시내의 태성실비식당(033-552-5287·사진)은 저녁이면 20여개의 원탁테이블이 꽉 찰 만큼 손님이 많은 한우고기 전문식당이다. ‘한우의 질은 비슷하지만 부위별로 정확하게 선별해내기 때문에 맛이 더욱 좋게 느껴진다’고 주인 채원중씨는 말한다. 생등심, 주물럭, 육회 각 1인분 250g에 2만1000원. 어른 넷이서 3인분이면 충분하다.
글=월간산 한필석기자 pshan@chosun.com  사진=조선영상미디어 정정현기자 rockar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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