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⑪이동진 HSBC 부지점장(하)

  • 등록 2001-05-18 오후 1:35:32

    수정 2001-05-18 오후 1:35:32

[edaily]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주인공은 HSBC의 이동진 부지점장입니다.
(인터뷰 중편에서 이어짐)
-HSBC로 옮기신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습니까. ▲BTC로 돌아와서 처음에 제가 한 일은 물론 예전에 하던 채권 딜링 업무도 있었지만 강 행장의 일을 도와드리는 것에 가까웠습니다. 일종의 비서실장이라고나 할까요. 그 때 BTC가 러시아에 많이 물려있는 상태였습니다. 복귀하자마자 합병설이 나돌기 시작했고 2개월 만에 도이치뱅크로 합병됐습니다. 십몇년 동안 은행을 다니면서 친지들에게 “(다른 더 좋은 곳을 다닐 수도 있을텐데) 외국계 은행을 다니냐”는 말도 종종 들었지만 적어도 저는 한 가지 자부심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외국계 은행을 이리저리 옮겨다니지는 않는다는 거였죠. BTC가 대우도 좋고 좋은 사람들이 많았음은 물론이었구요. 그러나 복귀했을 당시 제가 현직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합병을 하고 보니까 제 자리가 보이지 않더라구요. 무엇을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강 행장님은 도이치뱅크 서울지점에서 서울은행으로 가셨고. 그런데 마침 HSBC에 제가 맡고 있는 지금 이 자리가 공석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옮겼습니다. -친동생께서도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에서 비슷한 일을 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하하 네. 원래 동생은 국내 기관에서 근무했었습니다. 그러다 제가 씨티은행을 소개했죠. 2년정도 근무하다가 스탠다드차타드로 옮겨가더군요. -적극적으로 이쪽 일을 권유하신 거네요. “이거 재밌겠다. 해봐라” 라고. 형제분들이 만나실 때 소위 “공장(채권딜링)” 얘기도 하십니까. ▲안 합니다. 프로페셔널답게 해야죠. 물론 시장이 어떻게 될 것 같으냐는 질문이야 하지만 동생이 저보다 더 잘 맞추는 것 같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저야 이제 이 바닥에서 오래된 사람인걸요. 하하 < “동경에 지진이 나면 일본 건설회사 주식을 사고 체르노빌에서 핵사고가 터지면 보리(곡물) 상품선물을 사라”> -사실 이동진 부지점장님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93년 8월 금융실명제가 도입됐을 때 얘기를 많이 합니다. 우리나라 금융시장에 일종의 쇼크가 온 것인데요. 당시 금리가 급등했다가 하락했는데 그 무렵 채권시장을 ‘좌지우지’하셨다면서요. 그때 얘기 좀 해주세요. ▲누가 그러던가요? 정말 과장입니다. -금융실명제 때문에 주식, 채권은 물론 금융시장 전체가 엄청난 소용돌이에 휘말렸죠. 금융실명제 쇼크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BTC가 매우 공격적으로 채권거래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시장을 만들 정도까지는 아니었고… 사실 저도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웃음) 실명제 발표 하는날 저녁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친구들과 저녁을 같이 먹기로 돼 있었는데 재경부에 근무하는 친구가 못 나온다는 겁니다. 기다리면서 심심하니까 식당 방에서 TV를 틀었더니 금융실명제 얘기가 나오더군요. ‘아 이 친구 이래서 못나오는군’ 싶었죠. 그 당시 시장상황은 패닉 그 자체였습니다. 제가 그 무렵 예비군 동원훈련을 갈 예정이었어요. 그런데 다음날 아침 출근을 해보니 시장은 완전 공황상태에 빠졌지 사람들은 우왕좌왕하지 난리도 아니더라구요. 예비군이고 뭐고가 없었죠. 그 다음주 시장을 좀 지켜보다가 채권을 사기 시작했어요. 당시 실명제 파장은 엄청났습니다. 그 제도가 시행되리라는 것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실명제 후의 금융시장이 어떻게 움직일 것이라는 것은 더더욱 아무도 몰랐습니다. 지금처럼 한국 채권시장이 다이내믹하게 돌아간다면 또 모를까 시장참가자들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그런 일을 당하니 참 막막하더군요. BTC도 별다른 준비를 못했었고 이미 주식시장 은 엉망이 된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대처한 방법은 “컨트라리 뷰(contrary view: 역발상)”라는 것이었습니다. “동경에 지진이 나면 일본 건설회사 주식을 사고 체르노빌에서 핵사고가 터지면 보리(곡물) 상품선물을 사라” 는 것과 비슷한 거죠.(편집자 주: 이 같은 대형 사건이 터지면 심리적인 불안감으로 주가 등 금융자산의 가격이 곤두박질한다. 그러나 지진 이후 복구 과정에서 건설사들이 누릴 특수나, 농작물이 핵에 오염돼 공급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되면 이와 관련된 금융상품을 적극적으로 사들여야 한다는 원리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일어나 모든 사람이 한 방향으로 던지기 시작하면 그 반대포지션을 잡는 게 유리하다는 겁니다. 물론 약간의 고통은 감수해야 하나 시장은 반드시 정상화된다는 이론이에요. 그 당시 그 이론을 연구하고 분석해서 실행한 것도 아니었고 저 혼자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상황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윗분들과 얘기해서 “(채권을)사도 되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듀레이션을 조금 늘렸고 결과도 무척 좋았습니다. 당시 장기신용은행에서도 저희보다 더 많이 샀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까 장은에서는 BTC보다 훨씬 공격적으로 했더군요. 그러니 제가 시장을 좌지우지했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시장이 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과도하게 움직인다고 생각하고 거래에 뛰어들었고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금융실명제 발표 후 듀레이션을 늘리겠다는 결정을 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렸습니까. 혼자 결정한 것은 아니라고 하셨지만 그런 큰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텐데요. ▲제 기억으로는 실명제 발표 당시 주말이 끼어있었습니다. 실명제발표가 목요일인가 금요일이었다고 기억하니까요.(93년 8월12일 목요일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명령’이 발표됐다.) 채권을 사기로 결정한 것은 그 다음주 월요일, 화요일 정도였습니다. 결정 후 바로 행동에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이번 주말까지는 이 범위에서 어느 정도 해보고 하자. Stop-loss는 얼마다. 그 다음에는 이렇게 한다”는 식의 전략을 세워놓았습니다. -운영규모는 기억하시나요? ▲3000억~4000억원 정도라고 생각됩니다. <결정에 대한 두려움, “물론 두렵죠. 왜 두렵지 않겠습니까. 잠도 못잡니다.”> -두렵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손절매 기준을 정해놓았다 해도 패닉에 빠진 시장이 복구되려면 일정한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요. ‘생각했던 것처럼 시장이 움직여주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에 시달렸을 것 같습니다만. ▲손절매 기준은 원칙적으로 정해놓는 거였고…물론 두렵죠. 왜 두렵지 않겠습니까. 잠도 못잡니다. 아니 잠이 안 와요.(웃음) 선배들과 같이 했기 때문에 딜러가 느끼는 부담은 좀 적은 편이었습니다. -금리가 내려가기 시작하니까 어떤 기분이 들던가요? 밤잠을 못잘 정도로 걱정하며 얻어낸 결과가 아닙니까. ▲짜릿하죠. 짜릿하다는 표현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시장상황이 아니고 극도로 위험천만했음에도 불구하고 매매시점을 잡았으니까요. 딜러들은 표현방식이 “cool”합니다. 저도 딜러 생활을 13년 정도 했지만 저희 집사람은 집에 들어서는 제 얼굴만 보고서도 오늘 어땠는지를 짐작해요. 얼굴에 써있으니까요. 잘하면 잘하는대로 못하면 못하는대로 어쩔줄을 모르죠.(웃음) <짜릿함을 위하여! 그러나 “막상 그 순간이 되면 결정하는 것은 엄청나게 어렵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외환위기와 같은 금융 쇼크가 또 온다면 금융실명제 때와 똑같은 행동을 하실 건가요. ▲아마 그럴 겁니다. 그런데 지나고보면 쉽지만 막상 일이 닥치면 그런 결정이 쉽지많은 않겠죠. 어쨌든 경제 펀더멘털과 관계없이 외생변수에 의해 시장이 흔들린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노려볼만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합니다. 리스크에 비해서 리워드가 상대적으로 많은 경우에는 리스크를 피할 이유가 없어요. 어차피 리스크가 전무한 상태에서 리워드만 가질 수 있는 상황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사실 올해도 1~2월 채권시장에서 누가 금리 바닥이라고 생각했겠습니까. 다들 더 간다고 난리였는데. 제가 말은 멋있게 했지만 막상 그 순간이 되면 결정하는 것은 엄청나게 어렵습니다.(웃음) 우리 같은 사람들은, 한물간 사람들이 꼭 “우리” 라고 표현하죠. 하하. 저 같은 사람은 올 1월 금리가 4.99% 가기 전에 벌써 털어버립니다. 시장이 급격하게 꺾이고 올라가는 것을 많이 봐왔기 때문입니다. ‘이건 과하다’는 인식이 강했죠. 연초 6.6%에서 5.5%로 내려왔을 때부터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들이 많이 벌 때는 그만큼 못 벌겠지만 현재 밤잠 못 이룰 정도는 아닙니다.(웃음) 선배분들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하신 적도 있어요. “채권은 참 쉬운 것 같다. 금리가 빠질 것 같으면 (채권을) 사고 오를 것 같으면 팔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그것처럼 편한 얘기가 어디있습니까. 우선 금리변동을 예측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냔 말이에요.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금리가 확 빠지면 분명 보스가 와서 그렇게 말할 겁니다. “너 왜 채권 안 사냐.”고. 100억 정도 규모면 200억도 괜찮다고 부추기겠죠. 이게 올해 들어 금리 5.5%일때 채권딜링룸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사례일겁니다. 여기서 금리가 더 빠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보스가 와서 또 말하겠죠. “야. 좋은 정보 얻었어. 내 친구가 어디어디에 있는데 금리 3%간대” 라고 말입니다. 거꾸로 금리가 올라가면 반대경향이 나타나요. “너 아직까지 채권 안 팔고 뭐해”(웃음) 그러니 쉬운 일이 없어요. <“뭔지는 모르지만 한국 채권시장의 발전을 위해서 내가 기여하는 것이 있다"> -그럼 지금은 어떤 상황입니까. ▲제 견해를 조심스럽게 밝히자면 더 빠지기는 힘들지않나 생각합니다. 저야 이제 뭐 시장의 큰 손도 아니고, 채권시장 전체 규모도 엄청나게 커졌어요. 제가 예측해봐야 ‘투신이나 연기금, 보험 같은 메이저기관이 어떻게 할까’를 찍어서 맞추려는 것 뿐이죠 뭐. 국내 거대기관이 시장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외국계 은행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채권 시장의 방향을 예측한다는 것은 일정부분 한계가 있습니다. 또 현재 돈이 없어서 금리가 올라간 건 아니거든요. 그러니 한은이 금리를 내린다고 해서 금리가 빠지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다만 돈이 많이 있는 상태니까 큰 폭 상승도 어려울 거라고 봐요. 말해놓고 보니 참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얘기네요. 하하 -아직도 딜링을 하십니까? ▲조금 하긴 하죠. 하지만 딜러로서의 역할은 크지 않습니다. -국내기관이 외국계 은행들에게 콜 자금을 잘 주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데요. 지금은 꼭 그렇지 않지만 외국계 은행의 딜러는 채권시장 안에서도 독특한 취급을 받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외국계 은행에서 외국자본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편견 같은 것도 있고… ▲제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외국계 은행을 옮겨다니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안 옮겨다닌 이유는 BTC가 돈을 많이 줬기도 했지만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뭔지는 모르지만 한국 금융, 한국 채권시장의 발전을 위해서 내가 기여하는 것이 있다”는 생각을 가졌어요. 앞으로 이것이 분명 가야 할 방향이고 제가 그것을 먼저 행한 사람들 중의 하나라는 거죠. <채권의 재미, 머리를 굴릴 여지가 많다> -후배 딜러들에게도 맏형처럼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하신다면서요. ▲맏형이라 불리울 분들은 따로 계십니다. 저는 그 그룹의 막내 위치를 점하고 후배들에게 나름대로 조언을 해준 것 뿐이에요. 젊은 친구들이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사람들이 빨리빨리 떠나가는 경향이 있었으니까요.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어디에서든 충실하게 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꼼수부리는 것은 오래 못 가요. 제가 매니저가 되니까 그것이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되더라구요. 제 개인적인 호불호와 관계없이 말없이 묵묵하게 일하는 친구들이 참 보기 좋습니다. -성실하지만 능력이 좀 떨어지는 직원과 태도는 별로지만 일을 잘하는 직원이 있다면 어느 쪽에 점수를 주시겠어요. ▲성실한데 일을 잘 못한다는 것도 문제가 있겠군요. (웃음) 하지만 상대적으로 전자가 롱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채권의 재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채권시장이 다른 금융시장보다 더 재미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채권시장이 근래 들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80년대에는 누가 채권시장에 관심을 가지기나 했습니까. 과거에 브로커들이 수수료많이 받을 때나 관심을 가졌을까 그게 없어지니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더군요. 주식의 재미는 종목발굴이에요. 외환은 한 종목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거구요. 채권은 그 중간이라고 할까요. 커브를 탈 수 있다는 것이 묘미인 것 같습니다. 다른 분야보다 머리를 굴릴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거죠. 물론 다른 분야에는 머리가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자기 취향에 맞게 리스크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가 없겠구요. (이동진 부지점장 약력) -60년 출생(본적 서울) -서울 중동고 졸 -79년 서울대 경제학과 입학 -85년 미국 미시간대학 MBA -85-97년 뱅커스트러스트(Bankers Trust Company) 서울지점 -97-98년 나라종금 -98-99년 뱅커스트러스트(Bankers Trust Company) 서울지점 -99년~ HSBC 서울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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