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벌이 85만원에 씀씀이를 맞추죠”

은퇴자들이 사는 법 <3> 3년째 ‘실버 퀵서비스’ 김규오씨 부부
술·담배·커피 안해 딱히 용돈 쓸 곳 없어
자식에 의존 안하고 사니 이만하면 행복
  • 등록 2006-11-03 오전 10:55:51

    수정 2006-11-03 오전 10:55:51

▲ 은퇴 후 지하철‘퀵서비스’대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규오씨. 서울 회현역에서 배달할 꽃바구니를 들고 활짝 웃었다.
[조선일보 제공] 서울 회현역. ‘SQS 퀵서비스’ 마크가 붙어 있는 하얀 야구 모자를 쓴 노인이 화사한 생일 축하 꽃바구니를 들고 전철에 올라탔다. 가슴팍에는 ‘실버 퀵’ 명찰이 달려 있다. 2004년부터 지하철 ‘퀵서비스’ 대원으로 활동하는 김규오(72)씨다. 젊었을 때 도료 판매 사업으로 적잖은 돈도 만졌다는 김씨는 10여년 전 은퇴했다. 김씨는 오전 8시30분 충무로에 있는 택배 회사로 출근해 오후까지 4~5차례 배달을 나간다.

오후 6시까지 서류나 꽃바구니를 배달하고 쥐는 돈은 하루 3만원 안팎. 일주일에 5일 일해 50만원 정도를 번다. 여기에 아내 최옥림(68)씨가 동네 노인순찰대 대원으로 나서 25만원을 보태고, 중구 순화동에 있는 22평짜리 단독주택의 방 한 칸을 세 놓아 10만원을 받는다. 한 달 벌이는 평균 85만원이다.

김씨 부부의 생활 수칙은 무척 간단했다. 벌이에 씀씀이를 맞춰 사는 것. “생활이란 게 꼭 고무줄 같아. 없으면 없는 대로 쓰게 되지. 목돈이 있다고 해도 곶감 빼먹듯 쏙쏙 빼 쓰다 보면 그게 얼마나 가겠소. 지금 수준에서 더 줄이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3남1녀를 뒀지만 첫째와 셋째 아들은 호주로 이민 갔고 둘째 아들은 몽골 선교사로 떠난 상태. 딸도 출가해서 지금은 두 내외만 살고 있다.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두 내외가 잘 살아가고 있으니 이만하면 행복한 거 아닌가요?”

지난달 김씨 부부는 부식비로 30만원을 썼다. 두 식구 살림이고, 저렴한 재래 시장에서 찬거리를 장만해 그리 많이 들지는 않는다고 했다. 쌀은 고향인 포항에 사는 동생이 보내줘 걱정이 없다고 했다. 외식은 거의 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달 공과금과 건강보험료로 나간 돈이 10만원. 병원 진료비와 약값으로 11만원, 김씨의 휴대전화 요금이 4만5000원, 경조사비로 11만원을 썼다. 3만원짜리 ‘봉투’가 2곳. 5만원짜리도 한 번 있었다. 아내 용돈 4만원, 교통카드 충전 등 김씨 용돈으로 3만원이 들었다. 이가 성치 못해 큰맘 먹고 15만원짜리 믹서기를 구입한 게 지난달 기억에 남는 지출이다.

“술 담배 커피를 안 하니 딱히 용돈 쓸 곳이 없어요. 점심은 집에 들어가서 먹거나 아내가 챙겨준 도시락으로 해결하니 돈 들 일 없고, 65세를 넘었으니 지하철은 공짜로 타고, 좀 먼 거리라면 버스 타고 다니니 큰돈 쓸 일이 없지.” 김씨의 지갑을 보니 5000원짜리 2장과 1000원짜리 3장이 달랑 들어 있다. 오전에 ‘두 탕’ 뛰고 받은 1만원을 포함한 것이니 김씨 돈은 달랑 3000원인 셈.

“어디 편찮은 데는 없냐”고 묻자 김씨는 “아직까지 특별히 ‘고장난’ 곳이 없어 다행”이라고 했다. 매일 집에서 지하철역에 갈 때는 자전거를 타고 다닐 정도로 김씨의 건강은 양호했다.

앞으로 소망을 물었더니 김씨는 “지금 인생에서 크게 달라질 것이 있겠느냐”며 웃었다. “조만간 집 주변이 재개발되면 돈을 좀 만질 수 있을까? 그렇다고 우리 내외살이가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이곳저곳 여행을 조금 더 다니면 좋겠지만 일을 관두고 싶지는 않네. 나이 들어서도 내 힘으로 벌어서 사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거 늙어서 일거리 떨어지기 전까지는 잘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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