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⑭조민식 한신평 이사(상)

  • 등록 2001-06-08 오후 1:55:57

    수정 2001-06-08 오후 1:55:57

[edaily] 우리나라 채권시장에는 수 만종의 채권이 있다. 이중 어떤 채권을 살 것인지 투자자들로서는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이 채권을 샀을 때 몇 년후 원금과 이자를 제대로 돌려받을 수 있으며 그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이런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 신용평가사의 역할이다. ‘채권시장의 인프라’인 셈이다.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주인공은 한국신용평가의 조민식 이사다. 조 이사는 국내에 신용평가가 도입된 초창기인 87년부터 한신평에 몸담아온 평가업계의 산 증인이다. 회계법인에 있다가 “친구따라 어영부영 이 바닥에 들어오게 됐다”면서도 14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외환위기 직전까지만 해도 신용평가사는 그 존재감이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외환위기 당시 무디스나 S&P 같은 세계적 평가기관이 국가 신용등급을 연거푸 하향시키면서 신용평가기관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특히 97년말에는 국내 신용평가업체들이 한꺼번에 100개가 넘는 기업의 신용등급을 하향시켜 “지금까지 등급에 버블이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외환위기의 징후는 상당히 일찍 감지했습니다. 기아자동차 같은 경우 펀더멘털만 놓고 본다면 등급을 낮추고도 남았죠. 그러나 ‘대마불사’라는 한국적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한계였죠. 우리는 ‘기업이 앞으로 얼마나 수익을 내느냐’가 아니라 ‘어느 정도까지 버틸 수 있느냐’를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조민식 이사는 개인적으로 6개월에 한번씩 내시경 검사를 받는다. 업무에 따르는 스트레스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십편의 리포트를 읽어야하기 때문에 업무중간 중간 돋보기 안경까지 쓴다. 투자자보호라는 대명제가 있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등급하향평정을 받는 기업이나 그 직원들에게는 치명타가 된다는 점이 늘 부담스럽다고 얘기한다. 조 이사는 채권시장과 기업, 신용등급의 역학관계를 잘 이해하고 있다. 기업들이 어떻게하면 좋은 평가등급을 받을 수 있는지도 살짝 공개했다. 정부가 내놓은 정크본드 펀드의 수익성도 높이 평가했다. 채권시장의 생리를 꿰뚫고 있는 조 이사는 “돈을 많이 들고있는 벤처기업이 가장 무섭다”고 말한다.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주식으로 몇배의 대박이 터지건간에, 채권시장에서는 제때 10%의 이자를 받으면 족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포함한 채권쟁이들을 “새가슴”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그는 입사초기, 대우그룹 평정에 있어 자기의 소신을 굽히지 않은 “강심장”의 소유자기도 하다. 10여년간 등급평정의 서늘한 칼날을 품고 살아온 그를 만나 신용평가업계의 과거와 현재 얘기를 들어봤다.(조민식 이사 약력은 인터뷰 하편 기사 하단 참조) <"친구따라" 한신평에 입사하다> -공인회계사 자격증이 있으시네요. ▲서울대 경영학과 4학년때 공인회계사가 됐습니다. 졸업은 84년에 했구요. 그 당시 규정은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따면 회계법인에서 의무적으로 2년을 근무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졸업전에 삼일회계법인에 입사했어요. 그런데 회계업무가 별로 재미가 없더라구요. 허허. 그래서 의무기간 2년만 채우고 그만뒀죠. 회계법인에서 근무하면서 대학원 공부를 병행했습니다. 86년에 대학원을 졸업한 후 석사장교로 짧은 군복무를 마치고 한신평에 입사한 겁니다. -80년대 후반이면 신용평가회사가 그다지 이름있는 곳도 아니었을텐데요...공인회계사에 합격하셨으면서 굳이 신평사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군 복무를 마친 후 회계법인으로 돌아갈지 다른 곳을 택할지 진로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기업구조조정위원회에 있던 이성규씨가 제 절친한 친구인데 이 친구가 당시 한국신용평가에 근무하고 있었어요. "회계법인 가면 뭐하냐. 여기와서 나랑 같이 있자"고 저를 꼬드겼고 어영부영 오게 됐습니다.(웃음) 성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확실히 하는 친구입니다. EMI같은 음반회사에도 잠시 몸담은 적이 있고...학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경제학과 석사를 마친 것도 특이하죠. 보통은 반대의 경우가 많은데 말이에요. 성규하고는 5~6년 정도 같이 일했습니다. 그 친구때문에 한신평에 왔는데 자신은 먼저 도망가버리더군요.(웃음) 저만 아직까지 여기 남아있는거죠. -한신평 초창기에는 이헌재 전 장관이 사장으로 오셔서 재미있는 일을 많이 했다고 들었는데. ▲당시에는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직원들도 한 30~40명 정도밖에 없었고요. 다들 소신대로 일을 하고 살았습니다. 우리는 88년부터 “결합재무재표”를 만들었습니다. 그룹이 발달한 한국 사회에는 여러가지 리스크외에 계열리스크라는게 하나 더 있죠. 그렇지만 계열의 상황을 볼 수 있는 창이 없었고 그 창을 만들자는 시도였습니다. 우리들 내부적으로 필요에 의해서 만들었었죠. 시간도 많이 들어가고 돈이 벌리는 것도 아니었고 게다가 기업들이 싫어했습니다. 옛날에는 그런 자료들이 발표되면 큰 일나는 걸로 생각했기 때문이죠. 외부에서 자기 그룹전체에 대해서 매출이 얼마고 부채 총계가 얼마고 순이익이 마이너스다 플러스다 이야기하는 것을 굉장히 꺼려했습니다. 당시 같이 일했던 사람중에 금감위에서 구조조정에 참여했던 서근우 박사도 있습니다. -한신평 평가업무를 총괄하는 위치도 중요하지 않습니까. ▲우리 회사는 분위기가 특이해서 결재라는 것을 기획팀에 있을 때만 하게됩니다. 그외에 결재서류는 절대 올리지 않습니다. 리포트는 쓰지만 등급은 전부 위원회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결재라는 것을 받을 필요가 없는거죠. 등급이 결정되면 형식적으로 위원장이 최종 승인은 하지만 등급을 주는 데는 개입할 수가 없습니다. 이헌재 전 장관이 사장으로 있을 때 만든 시스템인데 위에 있는 사람들이 등급평정에 개입하면 우리나라처럼 좁은 사회에서 여러가지 잡음이 생길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지난번에 하이닉스 반도체를 하향시킨 것도 사장님께 보고가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실무에서 결정이 되면 형식적으로 승인을 받고 바로 발표하는거죠. 등급평정은 항상 만장일치로 결정하는데 세번 정도의 과정을 거칩니다. <금융에서 자동차까지 평가…사옥 건설현장 감독까지>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발행사들의 입김으로 등급을 조정해준다든지 하는 일이 있지 않았나요? ▲87년도인가 입사초기에 대우그룹을 맡았습니다. 등급을 평정해보니 투자적격 등급이 나오질 않더라구요. 난리가 났어요. 당시 위원회에서 굉장한 격론을 벌였습니다. 위원회에는 계급장 떼고 들어가기 때문에 사실 말이 논쟁이지 감정으로 격화되기도 합니다.(웃음) 나는 이런 식으로 할 바엔 뭐하러 평정하느냐고 주장했죠. 나중에 대우쪽에서 평가의뢰를 취소했습니다. -87년도에 처음 입사해서는 어느 부서에 계셨나요 ▲평가부터 시작했죠. 연구조사실에서 한 2년 있었죠. 내가 이 회사에 14년째인데 평가관련해서 거의 모든 부서에서 근무해봤습니다. 90년초 사옥을 새로 지었는데 건설현장까지 감독했죠.(웃음) 총무부장만 빼고 정말 거의 다 해봤습니다. -첫 승진을 하신 때가 언제입니까. ▲한국신용평가는 자체 직급이 4단계밖에 없습니다. 연구원, 선임연구원, 책임연구원, 수석연구원 순서죠. 87년 3월에 입사해서 89년 1월에 선임으로 승진한 것 같습니다. 책임은 5년정도 지나서 됐고요. -어떤 산업을 담당해오셨나요? ▲금융, 건설, 자동차 등 안해본 산업이 없습니다. 유일하게 화학쪽만 못해봤습니다. 처음 3년정도는 같은 업종을 했지만 어느정도 올라가면 사실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업종이든 빨리 파악할 수 있게 되죠. 신입직원들이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한 업종을 오래 시켜달라고 부탁하는데 이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주식 애널리스트들은 그게 가능하지만 우리는 credit officer이기 때문에 때문에 다양한 업종을 해본 사람들이 가치가 있습니다. 적은 인원으로 전 업종을 커버하려면 되도록이면 여러 업종을 맡아보는게 좋고 그게 회사에게나 본인에게나 도움이 됩니다.
(인터뷰 중편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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