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부터 3년 동안 매년 겨울마다 찾아온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그는 확실하게 떴다. 눈부신 금발에 푸른 눈을 지닌 요정 `레골라스` 역을 맡아 전 세계 여성 팬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기 때문이다. 여자보다 더 예쁘고 보호 본능마저 불러일으키는 외모 뒤에 숨겨진 남성다움이 그 만의 필살기(라고 평가받는)다.
조연으로 폭발적 인기를 얻어온 블룸이지만 단독 주연을 맡은 후에는 성적표가 신통치 않다. 최초로 단독 주연을 맡은 블록버스터이자 스스로 배우 인생을 걸 승부처라고 강조한 `킹덤 오브 헤븐`은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크게 실패했다.
좀더 말랑말랑한 선택을 할 모양이었는지 로맨틱 코미디를 들고 나왔지만 이 역시 여의치 않다.
올랜도 블룸과 또다른 청춘 스타 키어스틴 던스트가 함께 출연한 로맨틱 코미디 `엘리자베스 타운`은 지난 주말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에서 3위를 차지했다.
경쟁할 만한 큰 대작 영화나 유명 배우들의 주연 영화가 없었다는 점에서 실망스런 성적이 아닐 수 없다. 케이트 보스워스와 제이크 질렌할이란 할리웃 표 공식 애인을 두고 있는 두 사람이 영화를 찍다가 사랑에 빠졌다는 기사까지 쏟아졌는데도 박스오피스 데뷔 성적은 뜨뜻미지근 하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그리고 다소 엉성하다. 직장에서는 짤리고, 연인한테는 차인 구두 디자이너 드루(올랜도 블룸)은 설상가상으로 고향 엘리자베스 타운에 있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까지 접한다.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탄 비행기에서 그는 명랑한 스튜어디스 클레어(키어스틴 던스트)와 만난다. 우연한 만남이 거듭되면서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영화의 줄거리.
한 주 전 소개했던 리즈 위더스푼의 주연작 `저스트 라이크 헤븐`도 그랬지만 `엘리자베스 타운`도 "블룸의, 블룸에 의한, 블룸을 위한" 영화다. 그러나 로맨틱 코미디 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리즈 위더스푼이 천편일률적인 소재를 가지고 천편일률적이지 않게 연기하는 데 반해 올랜도 블룸과 키어스틴 던스트는 관객에게 "식상한 영화지만 돈 아깝지는 않다"는 생각을 심어주지 못한다. 내공의 차이다.
물론 이같은 느낌을 갖게 만드는 데는 주연 배우보다 감독의 영향이 더 크다.
`엘리자베스 타운`의 감독은 카메론 크로. 로큰롤에 열광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올모스트 페이머스(Almost Famous)`로 2001년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할 정도로 촉망받는 신예였지만 이후에는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첫 시사회에서 비평가들로부터 혹독한 평가를 받은 뒤 20분 정도를 잘라내는 재편집을 했다고 하는데 별 소득은 없는 듯 하다. 그나마 블룸의 어머니 역에 수전 서랜든을 고른 정도를 칭찬해 줄 만 하다. 재능있는 신인이 할리웃이라는 거대 시스템 안에서 너무 일찍 소모된 것일까.
아무튼 연달아 두 작품에서 관객 동원력을 검증받지 못한 올랜도 블룸은 다음 작품에서는 반드시 무엇인가를 보여줘야 할 처지에 몰렸다. 브래드 피트, 톰 크루즈, 조지 클루니처럼 "외모+스타성+연기력+플러스 알파" 등을 고루 갖춘 톱스타 반열에 오를 지, 아니면 `영원한 레골라스`로 남을 지는 그 자신에게 달렸다.
와신상담은 키어스틴 던스트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과제다. `스파이더 맨` 시리즈의 빅 히트로 엄청나게 떴지만 키어스틴 던스트 역시 니콜 키드만, 줄리아 로버츠의 반열에 오를 지 미지수다. `엘리자베스 타운` 이전에 출연한 또다른 로맨틱 코미디 `윔블던`은 `엘리자베스 타운` 보다는 훨씬 좋았지만 흥행 면에서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키어스틴 던스트는 또래 배우들과의 차별성을 보여줘야 하는 것도 큰 과제로 남아있다. 스칼렛 요한슨과 비교하면 연기력이 딸리고, 제시카 알바나 제시카 비엘에 비해서는 외모가 많이 딸린다. 이웃집 여동생같은 친근한 외모가 이제까지는 강점이 됐지만 배우로서의 압도적인 아우라는 부족한 편. 두 사람이 어떤 차기작을 들고 나올 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