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⑫김성민 한국은행 팀장(중)

  • 등록 2001-05-25 오후 1:39:31

    수정 2001-05-25 오후 1:39:31

[edaily]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주인공은 한국은행의 김성민 채권시장팀장 입니다.
(인터뷰 상편에서 이어짐)
<”오퍼레이션은 타이밍이 가장 중요”> -외환위기 당시 심경은 어떠했습니까. 담당과장은 아니었다해도 ‘아 저렇게 되면 안되는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요. ▲원래 남이 하는 일에 대해서 평가하기는 쉽지만 결정을 내리는 당사자들은 심사숙고한 결과죠. 경험으로 보면 오퍼레이션이라는 것은 타이밍이 가장 중요합니다. 97년 7월15일 기아가 화의에 들어갔습니다. 기아 얘기를 들어보니까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왔어요. 그래서 그 당시 지준을 뽑아보니까 1조원 정도가 있더군요. 하루짜리라도 좋으니까 이 1조원을 풀어서 시장금리를 안정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장이 정말 혼동스러울 때 공개시장 오퍼레이팅을 담당하셨군요. ▲네. 97년 종금사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하면서 종금사 업무 정지명령을 내려야한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재경원은 예금인출 러쉬를 우려했죠. 한 가지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요. 97년 12월에 IMF 관계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이 친구는 제가 IMF에 근무하던 시절의 동료였어요. 둘이 얘기를 나누던 와중에 그 친구가 제게 “한국의 종금사는 몇 개나 생존할 것 같으냐”고 물었습니다. 우선은 잘 모른다고 대답했어요. 그게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나서 곰곰 생각해본 다음 큰 마음을 먹고 “10개 정도”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씩 웃고 아무 말도 안하는 거에요. 그래서 역으로 제가 너는 몇 개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친구 대답은 “less than five(많아야 5개)” 였어요. 당시에는 깜짝 놀랐지만 결과적으로 그 친구의 예측이 맞지 않았습니까. <외환위기와 채권시장의 격동을 온몸으로 체험하다> -그 무렵 채권시장은 외환위기에 대해 어떤 식으로 반응했습니까. ▲당시 채권시장은 지금과는 달랐습니다. 90% 이상이 은행보증채권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사실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어요. 무보증채권이 있었으면 사정이 달랐죠. 어떤 면에서는 다행이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만. 97년 11월 중순에 금융시장안정대책이 발표됐습니다. 투신사 보유채권 1조원을 한국은행이 사고 은행신탁도 사들인 걸로 기억해요. 그것으로도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자 나중에는 유통 채권까지 사게 됐습니다. 하여간 저희는 14일짜리 통안증권을 발행하면서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습니다. 한 가지 기억나는 게 있군요. 97년 12월말 은행들이 BIS 비율을 맞춘다고 야단법석인 때가 있었습니다. 은행들이 적절하게 오퍼레이션을 조절해달라고 부탁했고 하루에 대여섯 번씩 오퍼레이션을 한 적도 있습니다. 전자입찰 시스템을 사용하다보니 그 맹점도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캘린더가 1998년1월1일로 넘어가니까 날짜가 안 맞아 전자입찰을 할 수 없는 거에요. 난리가 났죠. “전산부에 얘기해서 시스템을 고치자, 또 뭐하자”고 소동이 벌어졌는데 제가 판단을 해보니까 그렇게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서면입찰로 한다. 서류 가지고 와라”라고 말했죠. 하여간 별 이상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 통안채의 성격상 발행량 변화가 외환보유고와 똑같이 움직일 수 밖에 없다.”> -그 때 통안채를 대량발행한 것이 지금도 부담으로 남아있는데요. ▲통안증권이 늘어나는 것은 외환보유고와 연결해 보셔야 합니다. 외환위기가 나기 직전 통안증권은 잔액은 28조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환란을 겪으면서 잔액이 21조로 급격히 줄었다가 70조까지 늘어났거든요. 외환보유고도 마찬가지에요. 외환위기 직후 엄청나게 감소했다가 지금은 큰 폭으로 늘어나지 않았습니까. 통안증권의 성격상 통안증권의 움직임은 외환보유고와 똑같이 움직일 수 밖에 없습니다. (편집자주: 통화안정증권은 시중의 통화량 조절을 위해 발행하는 것이다. 외환보유고가 늘어난다는 것은 달러 유입이 늘어나는 것이고 이는 통화량이 증가하는 것을 뜻한다. 한국은행이 달러 통화가 늘어난 만큼 원화 통화를 흡수하기 위해 통안채를 발행했다는 설명이다.) -한은은 내심 통안채를 국채로 바꿔주기를 바라지 않나요. 통안채의 기능이 변질된 측면도 있지 않습니까.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운용한다는 의미는 국방비 지출의 개념과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통안증권 발행도 재정에서 부담할 수 있어요. 주머니 돈이 쌈지돈이라는 말도 있지만 한국은행에서 이익이 나면 다 재정흑자로 통합됩니다. ‘통안증권에 대한 이자를 누가 부담하느냐’ 하는 문제는 회계장부상으로는 민감하게 다뤄질 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하나로 귀결됩니다. 정부의 개념을 광의로 정의하면 저희가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이 되잖습니까. 예를 들어 한국은행이 8조의 이익을 냈는데 통안증권 이자로 3조를 지출했다고 가정해보죠. 그러면 8조 늘어났어야 정상인 정부세수가 5조로 줄었다는 사실 말고는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저희가 정부에 줄 돈이 5조라는 계산상의 문제만 남는겁니다. -공개시장팀에서 오퍼레이팅을 하신 기간이 전체적으로 얼마나 되나요. ▲2년 2개월간이었습니다. 몸이 안좋을 때라 공개시장팀에서 고생좀 했죠. 99년 5월 한은의 직제가 팀으로 바뀌면서 채권시장팀으로 옮겨왔습니다. 채권시장팀에 와서도 한 두어달 편히 지낸다했더니 더 바빠졌습니다. 5월 중순에 채권시장팀으로 발령받았는데 99년 7월 대우사태가 터지자 모든 문제가 저희 팀으로 넘어왔거든요. -일복이 많으시군요.(웃음)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었습니까. ▲그런말 마십시오.(웃음) 대우가 그렇게 뻥하고 터질 줄 몰랐어요. 시장 모니터링부터 시작해서 대책회의를 하게되면 자료 만들고..하여간 업무량이 상당했습니다. <대우사태와 채권시장의 관계> -말 나온 김에 대우사태 얘기를 구체적으로 해 보죠. 지금도 그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고 여기저기 남아있는 것이 사실인데요. 대우를 어떻게 할 것이냐에 관해 논란들도 많았구요. 당시 한은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요. ▲저희는 이미 98년 하반기에 회사채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외환위기가 터지고 경제가 흔들리면서 98년 하반기부터 은행들이 보증을 안 해주기 시작했어요. 회사채에 대한 은행보증이 중단되면서 시장상황이 급변했죠. 제 기억으로는 97년 말 당시 MMF를 포함, 투신사 채권형 펀드 규모가 총 70조원 정도였는데 98년 말에는 170조원으로 100조원 이상 늘어났어요. 돈이 막 몰려들기 시작하면서부터 “투신사에 돈이 저렇게 많이 몰리면 언젠가는 문제될 것”이라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사전에 어떻게 했어야한다”는 식의 말은 지금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 문제가 미래로 연장돼 현재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거론하지 않을 수는 없겠죠.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정부가 시장메커니즘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대우사태를 처리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우쇼크로 금리가 급등하자 정부는 시장자율보다는 채권시장안정기금을 설립, 인위적인 시장 안정을 시도했는데요. 채안기금의 활동범위에 관해 정부와 한은 간에 손발이 맞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공과에 대해서는 말씀드리기가 참 뭣하군요. 도덕적해이 문제가 불거지긴 했지만 그것말고 다른 대안이 있었느냐고 물어보면 쉽사리 대답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니까요. 채안기금에 관한 제 생각은 너무 부정적으로도 긍정적으로도 볼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다행인 것은 금리가 이후 하락해서 (채안기금이) 손실을 안 봤다는 거죠.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투신사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겠습니까. 이런 문제는 정말 정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가격변동위험에 대해서는 과소평가, 신용위험에 대해서는 과대평가> -올해 초 전철환 한은 총재의 “국고채 과열 발언”이 상당히 이슈가 됐습니다. ▲채권시장에는 가격리스크도 있고 신용위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우, 새한그룹 사태가 불거지면서 시장은 가격변동위험에 대해서는 너무 과소평가하고 신용위험에 대해서는 너무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과도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말이죠. 전 총재의 발언은 결국 그런 점을 주의하라고 하신 뜻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발언강도나 타이밍에 관해서는 사람마다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시장에 주의를 당부한 말씀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시장이 한은 총재의 말씀에 너무나도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것이죠. 울고 싶을 때 누가 뺨을 때려주면 효과가 가중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 경기회복론에 대해 지나친 낙관도 비관도 필요없다”> -최근들어 한국은행이 통안채 발행 등 오퍼레이팅을 매우 유연하게 하시는 편인데… 시장관계자들은 과연 이 기조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에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건 개인적인 의견임을 알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더이상 금리가 올라갈 구석이 있느냐를 냉정하게 따져보면 답은 분명합니다. 최근 인플레이션이 이슈가 됐지만 인플레이션 문제는 사실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어요. base effect(전년동기대비 효과)로 인해 전년동기보다 상승하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닙니까. 또 과거경험으로 보면 물가상승이 가장 뚜렷한 시기는 항상 1분기였습니다. 한해 인플레이션률이 얼마라고 가정하면 그 70%가 1분기에 이뤄지고 그러니 물가가 높게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죠. 그런데 2000년에는 상반기 물가가 낮고 하반기물가가 높게 나왔어요. 이것이 비정상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합니다. 하반기가 되면 물가는 안정추세로 접어들 겁니다. 환율도 걱정을 많이들 하시더군요. 그렇지만 환율급등이 금리에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미치느냐의 문제는 논란이 많습니다. 달러/원 환율만 환율은 아니거든요. 원화가치가 낮아지면 그 수준이 다를 뿐이지 타국의 통화가치도 같이 낮아지게 돼 있어요. 저는 경기회복론에 대해 지나친 낙관도 비관도 모두 필요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경제가 회복하는 것은 미국 경기회복에 달렸다고 모두 말하지만 미 경기회복이 가능하느냐의 여부도 반반이거든요. 수출회복이 안되면 한국 경제의 본격적 회복이 어려운데 반도체를 비롯해 미국으로 수출되는 하드웨어 부품들의 수출전망도 아직은 불투명하지 않습니까. GDP상으로 저점을 통과했다해도 이것이 기업투자로 연결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 투자가 늘어나도 지금 문제가 되고있는 IT산업보다 굴뚝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수도 있어요. 저는 정말로 하반기에 펀더멘털이 좋아질지에 관해서는 아직 신중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퍼레이션이 시장의 추세를 바꾸지는 않아> -그렇다면 오퍼레이팅 과정에서 유동성을 넉넉하게 가져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경제의 불확실성이 아직 높은 상황에서 일정 수준의 당위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가가 하반기에 안정될 것이라는 건 분명하지만 경기에 대해서는 뭐라고 얘기하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하반기 물가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오퍼레이팅에 여유가 있다. 뭐 그런 말씀인가요. ▲콜금리를 5%수준으로 유지하는 동안에는 단기적인 조절이 가능합니다. 지급준비율 마감일에는 다 줄이면 되니까요. 그러나 기조를 바꾸는 것은 콜금리인하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저희가 어떤 정책을 편다고 해도 금융시장의 추세 자체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외환시장같은 경우에도 한은이 이러저러하게 움직였다는 것은 속도가 늦춰진다는 의미이지 기조전환을 나타내는 것은 절대 아니거든요. 추세는 그렇게 꺾이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강력한 정책을 시행하려면 펀더멘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뒷받침돼야만합니다. 그런데 지금 그것이 불가능하잖습니까. 계속 말씀드렸지만 경기회복 논란이 여전한 상태에서 어떻게 펀더멘털을 논할 수가 있겠어요.
(인터뷰 하편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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