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정상, 바람이 너무 좋습니다… 올라오십시오!"

산악인 엄홍길씨와 경남 고성 거류산을 가다
가파른 길 끝, 호수 같은 남해 한 조각이 보이네
  • 등록 2009-07-02 오후 12:30:00

    수정 2009-07-02 오후 12:30:00

[조선일보 제공] 엄홍길 대장의 휴대폰 뒷자리는 '8848'이다. 티베트인들이 '세계의 어머니 산'이란 뜻으로 '초모룽마'라고 칭하는, 에베레스트산의 '공식 높이'다. '엄홍길 휴먼재단 상임이사' '상명대 석좌교수' 같은 여러 직함을 가지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그를 계속 '엄홍길 대장'이라 부르며 '산 사나이'로 추앙한다. 독자들과 경남 고성 거류산(해발 575.5m)을 걷기 위해 지난달 25일 '엄홍길 전시관'에서 만난 그는 "스승이자 길잡이인 산이 나는 사랑스럽다"고 말했다.

엄 대장의 산과 도전과 희망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독자 20명은 엄 대장이 태어나 세 살까지 자란 고향 경남 고성에 모였다. '엄홍길 전시관'에서 거류산 정상에 올랐다가 거류면사무소 쪽으로 내려오는 약 4시간의 산행을 앞두고 한 참가자가 "날씨 참 좋습니다"라며 기뻐했다. "네?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산에 가는데 당연히 날씨가 좋아야죠, 하하."

전시관에서 엄 대장의 '히말라야 8000m급 16좌 완등'의 기록들을 살펴본 후 천천히 산길에 들어섰다. 그는 '한국인 최초 8000m급 14좌 완등'에 그치지 않고 2004년 얄룽캉, 2007년 로체 샤르 등 그동안 '위성봉(衛星峯)'으로 여겨져 왔던 산 두 개를 더 올라 '16좌 완등'이라는 새 기록을 만들었다. 한 참가자가 "이 산은 엄 대장한테 산 축에도 안 들죠"라며 웃었다. "아니에요. 산은 낮은 산이나 높은 산이나 똑같아요. 아마 오늘 저도 땀 흘리고 헉헉대고 힘겨워할 겁니다. 산을 오를 때는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하거든요."

▲ “스승이자 길잡이인 산이 사랑스럽습니다.”산악인 엄홍길씨의 이끎을 따라 오른 경남 고성 거류산 정상에선 들판과 산, 바다와 섬이 한눈에 들어왔다. 인간이 만든 사각형 건물들이 들어섰지만, 공룡이 느릿느릿 산책하며 즐겼을 상쾌한 바닷바람은 옛 기세 그대로 산등성이를 타고 올라 땀을 식혔다. /조선영상미디어


고성 동쪽 들판에 솟아오른 거류산은 소가야 마지막 왕의 피신처로 사용됐다고 전해진다. 저녁 때 밥을 짓던 처녀가 커다란 산이 걸어가는 것을 보고 부지깽이를 두드리며 "저기 산이 걸어간다"라고 세 번 소리쳤더니 그 산이 멈췄다고 '걸어산'이라 부르다가 '거류산'으로 바뀌었단다. 여느 산이나 있기 마련인 '전설'이지만 공룡이 노닐던 고장이라니, 어쩐지 심상치 않게 들린다.

산길을 오른 지 10여분 만에 오른편에 호수 같은 남해의 한 조각이 펼쳐졌다. 산 아래 펼쳐진 아늑한 들판이 바다를 두 팔로 꼭 안고 있는 듯한 당동만(灣)이다. 잘 정돈된 산길 좌우로 보랏빛 싸리나무 꽃들이 바닷바람이 간지러운지 바르르 흔들렸다. 등산로 초입 187개 계단을 오르느라 땀방울이 맺혔다. 바람이 훅 불자 마주선 엄 대장과 참가자들 입에선 "아, 시원하다"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숨이 차오르니 자연스럽게 히말라야 등정에 관한 질문이 이어졌다. 높은 산 등반에 가장 큰 '벽'이라는 고산병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엄 대장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몸이 무겁고, 발이 맘대로 안 되고…말도 못하게 심한 두통이 옵니다. 힘이 다 빠져서 무기력해지는 거에요. 사람들은 제가 '산꾼 체질'이라 고산증을 이겨낸다고 하는데 모르고 하는 소리에요. 너무 괴롭지만, 그냥 극복하는 거에요. 어차피 극복해야 하니까."

엄 대장을 가장 공포에 떨게 한 것은 그러나 고산병이 아니라 '자신(自身)'이었다. "극한 상황에 닿으면 저 자신이 수없이 많아져요. 그 '자신'들을 이기는 게 가장 힘들고, 또 두려웠습니다. 올라가자, 내려가자, 주저앉자, 살자, 버티자…. 묘하게도 실패를 하면 할수록 신념은 더 또렷해지더라고요."

▲ 조선영상미디어

 
히말라야 8000m급 산을 더 오르지 못할 만큼 오른 지금, 그는 "마음의 8000m를 새로 세웠다"고 했다. 지난달 창립 1주년을 맞은 '엄홍길 휴먼재단'(www.uhf.or.kr )을 가리킨다. "한창 산을 다닐 때 히말라야의 신에게 약속했거든요. 제 꿈을 이루고 살아서 돌아가게 해주신다면 남은 삶을 산에 바치겠다고. 제가 산을 오를 수 있게 도와주고 목숨을 잃기도 했던 네팔 오지 마을 사람들, 그 아이들을 위해 학교와 의료시설을 세우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두 시간 만에 정상에 닿았다. 고성 전체는 물론 바다 건너 사량도와 통영까지 내려다보이는 거류산 정상은 내려가기 싫을 정도로 장쾌하고 근사했다.

발걸음이 늦어 뒤처진 탓에 정상에 닿지 못한 이들을 향해 엄 대장이 소리쳤다. "조금만 더 힘내십시오! 파이팅! 여기는 정상, 바람이 너무 좋습니다! 올라오십시오! 힘내십시오!" 히말라야에 비교하기도 쑥스러운 아담한 산인데도 '정상의 희열'이 몸과 마음을 뒤흔들었다. "히말라야 정상에 섰을 때는 정신 없고 외로웠거든요. 여러분과 함께 하니까 너무 즐거운데요. 구호 한 번 외칠까요. 제가 '도전!' 하면 '파이팅!' 하고 끝나는 겁니다. 우리 인생의 무한한 도전을 위해서, 도전! 파이팅!"

거류산 정상에서 뻗어 나오는 엄 대장의 기운이 사람들의 마음을 뚫고 공룡이 산책하던 고성의 들판을 지나 바다 건너 먼먼 그 어느 산까지 넘실넘실 날아가는 듯했다.

◆엄홍길 전시관~휴게소(1.6㎞/1시간)| 엄홍길 전시관의 야외화장실 옆, 거류산 등산안내도와 함께 계단이 보인다. 계단을 오른 후 왼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얼마 가지 않아 '등산로 입구'·'거류산 정상 4.3㎞'·'감서리 7.1㎞' 이정표가 나온다. 이 지점에서 '등산로 입구' 방향인 오른쪽 오르막으로 간다. 5분 정도 걸으면 오른편에 잔잔한 바다가 모습을 드러낸다. 가던 방향으로, 나무로 만든 187개 계단을 올라간다. 10분 정도 오르막을 걸으면 소원을 빌기 위해 쌓아 놓은 돌탑과 벤치가 나온다. 벤치를 지나 조금 더 걸으면 '종주코스'·'거류산 정상 3.7㎞', '엄홍길 전시관', '순환코스'·'거류산 정상 5㎞'라고 쓰인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이 나온다. 11시 방향인 '종주코스'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30분 정도 걸은 후 암벽지대를 안전하고 편하게 오를 수 있도록 설치된 첫 번째 철 계단(철 계단은 모두 여섯 번 나온다)을 오른다. 연달아 나오는 두 번째, 세 번째 철 계단을 오르면 아늑한 오솔길이 기다린다. 5분 정도 걸어가면 간식을 먹을만한 널찍한 공터가 나온다. 계속 직진해 철 계단을 두 번 더 지나면 아담한 초록색 철제 구름다리를 지나게 된다. 다리를 건너 마지막 철 계단을 올라 5분 정도 걸으면 거류산 등산 안내도와 벤치 여럿이 있는 휴게소가 나온다.

◆휴게소~거류산 정상(2.3㎞/1시간10분)|'거류산 정상' 쪽으로 계속 걸으면 벤치 여럿이 놓인 쉼터를 지나 '휴게소 1.9㎞'·'당동리 2.2㎞'·'거류산 정상 1㎞'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 당동고개다. 정상 쪽으로 돌 많은 길을 조금 더 걸으면 '거류산성'이 보인다. 산성을 만나면 산성을 왼쪽에 두고, 오른편으로 방향을 잡아 걷는다. 1~2분 정도 걸으면 나무에 '등산로←'라고 적힌 작은 표시가 보인다. 화살표를 따라 왼쪽으로 간다. 왼쪽으로 꺾은 후엔 산성 위를 걷지 말고, 등산동호회 리본이 많이 걸린 오른쪽 좁다란 오르막으로 간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는 400m 정도지만 길이 가팔라 20분 정도는 오를 각오를 해야 한다.

◆거류산 정상~당동고개~거류면 사무소(3.5㎞·1시간 50분)| 정상의 기쁨을 즐긴 후엔 당동고개까지 되돌아간다. 당동고개에서 '당동리 2.2㎞' 쪽인 왼쪽으로 길을 잡는다. 조금 더 걸으면 '거류산 정상 1.3㎞'·'엄홍길 전시관 3.6㎞'·'당동리 1.8㎞'·'거북바위 1.1㎞'라고 쓰인 이정표가 나온다. 계속 '당동리' 쪽으로 내리막을 따라가면 '거류산성 종점'이라고 쓰인 고동색 표지와 널따란 길이 앞을 가로지른다. 큰길 따라 왼쪽으로 열 발자국 정도 걸으면 오른편에, 약간 어둑하고 좁은 내리막 숲길이 보인다. 그 내리막으로 길을 잡는다. 계속 내려가다 보면 흙길로 된 큰 도로가 다시 앞을 가로지르는데 가던 방향으로 직진한다. 15분 정도 걸으면 만나는 계곡을 가로질러 가던 길로 쭉, 계곡을 오른편에 두고 내려간다. 고추밭 같은 '인간의 흔적'이 조금씩 나오다가 포장도로에 이어 마을('당동마을')로 접어든다. 잠시만 걸으면 마을을 지키는 듯한 커다란 팽나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나무에서 기와지붕 주택이 보이는 쪽으로 직진하듯 내려간다. 이후엔 정면에 '늘 푸른 숲' 아파트를 보며 가던 방향으로 걷는다. '당동 마을회관'이 왼쪽에 지난 후 5분 정도 더 걸으면 '거류면사무소'다.
 

●거리: 7.4㎞

●시간: 약 4시간

●출발점: 경남 고성군 거류면 엄홍길 전시관. 고성터미널에서 '동해면' 방면 군내버스를 타고 '월치고개'에서 내린다. 오전 6시50분~오후 9시30분, 한 시간에 약 한 대꼴로 버스가 출발한다.

●도착점: 경남 고성군 거류면사무소. 오전 6시50분~오후 7시55분, 거류면사무소가 있는 '당동'에서 고성 가는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꼴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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