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다리, 어린 쑥과 만나 통영의 봄이 되다

  • 등록 2007-03-15 오전 11:40:00

    수정 2007-03-15 오전 11:40:00

▲ 한산섬식당 도다리 뼈회

[조선일보 제공] 경남 통영시 ‘한산섬식당’. 문을 밀고 들어서자 허름한 식당 안은 봄 냄새로 가득했다. 대단히 귀하고 값비싼 별미라도 대접 받는 양 식당을 가득 채운 손님들은 커다란 스테인리스 국그릇에 코를 박고서 허겁지겁 국물을 퍼먹는 중이었다. 연한 초록빛이 감도는 투명한 국물 속에서 생선살이 하얗게 빛나고, 쑥 향이 향긋하게 피어 오른다. 따뜻한 봄 바다가 국그릇에 그대로 담긴 듯하다. 도다리쑥국이다.

도다리쑥국에는 별다른 재료가 들어가지 않는다. 냄비에 물과 납작하게 썬 무를 몇 조각 넣는다. 물이 팔팔 끓으면 남자 어른 손바닥만한 도다리 한 마리와 파, 마늘, 풋고추를 조금 넣는다. 극상에 오른 도다리 자체의 맛을 살릴 정도로만 간을 할 뿐이다. 도다리가 슬쩍 익을 즈음 쑥을 손으로 뚝뚝 뜯어서 넣고 숨이 죽으면 그릇에 담아 손님상에 낸다.

광어와 거의 똑같이 생긴 도다리는 남해안이 아니면 통 보기 힘든 생선이다. 양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통영 서호시장 상인들은 “아직까지 통영에서 양식 도다리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통영도촌동수협공판장에 만난 한 거래인은 “도다리가 다 자라려면 3~4년이 걸리기 때문에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했다. 게다가 도다리는 맛이 워낙 좋은 생선. 생선에 대해선 누구보다 까다로운 입맛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통영 사람들이 잡히는 족족 먼저 먹어 치운다.

이곳 주민들은 “(도다리 맛 모르는) 서울 사람들은 광어를 최고로 치더라”며 안타깝단 듯 말한다. 특히 봄 도다리를 최고로 친다. 지금 도다리는 산란을 앞두고 살이 오를 대로 오른 상태이다. 운이 좋으면 배에 알이 가득 찬 암컷이 나오는 행운이 따르기도 한다. 물론 “알이 찬 도다리는 영양을 몽땅 알에 빼앗겨 버려 살이 푸석푸석, 맛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통영 토박이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아무리 도다리가 좋아도 쑥이 없으면 도다리쑥국은 미완성. 반드시 요즘 막 나오기 시작한 어린 쑥이 들어가야만 한다. 얼었던 땅을 뚫고 나오는 햇쑥은 여리지만 특유의 향기가 강렬하다 못해 코가 아릴 지경이다. 쑥은 보통 음력 정월 이후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올해는 예년보다 날씨가 따뜻해 지난 1월 말부터 쑥이 나왔다. 그러나 도다리 살이 덜 올라 맛이 덜하다. 그래서 쑥도 먹을 만하고, 도다리도 통통한 요즘부터 앞으로 한 달 가량이 ‘도다리쑥국’이 가장 맛있는 철. 이때가 지나면 쑥이 ‘뻐세서’(질겨서) 맛이 떨어진다.

강렬한 쑥향이 먼저 코를 잡아채고 기름기 없이 맑고 담백한 국물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도다리 살은 눈처럼 뽀얗고 하얗다. 목구멍을 타고 스르르 사라진다고 느껴질 만큼 생선 살이 연하면서도 기름이 올라 푸석하지 않다.

통영에서는 정량동 기업은행 뒤 ‘한산섬식당’(055-642-8330)이 도다리쑥국을 잘 끓이기로 소문 났다. 한 그릇 8000원. 생선회는 4만·5만·6만원짜리가 있다. 여러 생선회가 섞여 나오는데, 도다리회만 달라고 해도 된다.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도다리를 뼈째 자른 뼈회(세꼬시) 스타일로 주로 나온다. 반찬으로 나오는 ‘볼락젓’이 별미다. 무와 고춧가루를 더해 보름에서 한 달 정도 가볍게 삭힌다. 시큼하면서 가벼운 감칠맛이 깍두기처럼 매콤달콤하게 익은 무와 기막히게 어우러진다. 작은 볼락이 통째로 나오니 비위 약한 분이라면 굳이 권하지는 않겠다. 이외에 여객선 터미널 주차장 앞 ‘터미널회식당’(055-641-0711), ‘통영회식당’(055-641-3500), ‘분소식당’(055-644-0495)도 도다리쑥국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통영 바로 옆 거제에서도 도다리쑥국을 즐겨 먹는다.

거제에서는 맹물 대신 쌀뜨물에 된장을 조금 풀어 맛을 내는 집이 많다. 하지만 역시 슴슴하게 도다리와 쑥의 맛과 향을 살리는 정도로만 자제한다. ‘평화횟집’(055-632-5124), ‘웅아횟집’(055-632-7659) 등이 유명하다. 도다리쑥국 한 그릇에 8000원~1만원 받는다.
 
▲ 멸치밥, 멸치회, 멸치튀김, 멸치쌈, 멸치젓, 멸치전, 멸치볶음, 멸치시락국(시래기국), 멸치액젓으로 무친 파김치…. 통영 멸치마을의 멸치요리는 주인의 멸치 사랑만큼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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