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까지만 해도 정부나 한나라당은 막대한 재정이 투입된다며 대규모 친서민 대책에 소극적이었다. 정책 기조 변화는 한나라당 내부의 줄기찬 복지 확대 주장과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 과제로 공생발전을 내놓으면서 변화됐다.
특히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및 내년 총·대선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점, 안철수 신드롬을 통해 확인된 정치권 변화 목소리 역시 정부와 한나라당이 적극적인 친서민 대책으로 방향을 튼 이유다.
정부도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던 반값 등록금, 저소득층 비(非)정규직 4대 보험료 지원 등 복지 확대 정책에 대해 호응하는 자세로 입장을 바꿨다. ◇ 연일 쏟아지는 조(兆)단위 친서민대책
추석을 목전에 두고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복지정책 발표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양상이다. 한나라당과 정부는 9일 당정협의를 갖고 비정규직 임금 수준을 정규직의 80%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골자로 한 비정규직 대책을 내놨다. 비정규직의 열악한 처우 개선을 위해 기업의 대폭적인 양보를 명문화하고, 재정을 동원해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등 4대 보험료를 일정부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비정규직 대책에 투입되는 재정지원만 최대 1조원에 달한다. 600만명에 달하는 비정규직 표를 의식한 대책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당·정은 또 지난 5일 5000억원 규모의 청년 창업 지원 예산을 편성했고, 조만간 영세 자영업자 대책 마련에도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한나라당은 기초노령연금 확대(월9만5000원→11만원)를 요구하고 있다. 필요한 예산만 최대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 막대한 재원마련 어디서 구하나...증세론 솔솔
한나라당과 정부가 3일 동안 내놓은 대책만 3조원에 달한다. 또 기초노령연금, 영세 자영업자 대책에도 1조원 안팎의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 추가 감세 철회로 내년에 당초 전망보다 늘어나는 세수는 1조원이다. 이것만으로는 지금까지 거론된 복지 지출 증가액을 대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는 SOC(사회기반시설) 투자 등을 줄이면 재원은 가까스로 마련할 수 있다는 분위기다.
하지만 문제는 내년 이후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수혜자가 늘면서 지출도 덩달아 불어나는 게 복지 예산이다. 비정규직 보험료 지원과 같은 새로운 복지 제도가 도입될 경우엔 복지 예산 증가는 가늠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결국 늘어나는 복지 예산을 충당한다는 차원에서 증세에 대한 본격 논의가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부유세 신설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부가세(소비세) 세율 인상이 대표적이다.
이미 한나라당 내부에선 복지 확대를 위해 부유세 신설안이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재완 재정부 장관은 최근 한 강연에서 “전 세계적으로 소비세를 올리고 소득세를 낮추는 쪽으로 정책 기조가 크게 가 있는 점을 감안, 우물 안만 들여다보고 논의해선 안 되고 글로벌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소비세 인상 가능성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