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먹어본 거대한 고기튀김… 그것은 ''풍요''였다

''먼 나라 이웃나라''의 이원복 교수와 독일식 돈가스
가난했던 獨 유학시절, 밥·김치가 제일이던
내 혀 신기한 맛에 놀라… "성공하면 실컷 먹자" 다짐
  • 등록 2010-05-26 오전 11:35:00

    수정 2010-05-26 오전 11:35:00

[조선일보 제공] 저를 아시는 분들은 '먼 나라 이웃나라'를 먼저 떠올리시죠. 그 책에는 9년 반 독일 유학 시절에 여행하고 보고 배운 모든 게 담겨 있어요.

독일로 유학을 떠난 게 1975년이었어요. 독일을 선택한 건 등록금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이유가 컸어요. 한 학기에 사회보장료 2만원만 내면 됐으니까요. 그 당시 유학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어요.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이 내밀건 해외 유학밖에 없었으니까요.

유학 중에는 여러 전단에 만화를 그려주고 그 원고료로 생활비를 댔어요. 어릴 때 저는 아이들과 어울려 놀기보다 혼자서 책 읽고 낙서하길 좋아했어요. 낙서장에 가득 그림을 그리고 놀다가 저절로 만화 그리기가 늘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린이 신문에 만화를 그리기 시작해서 독일 갔을 무렵엔 벌써 10년차 만화가였거든요. 원고료를 꼬박꼬박 모아서 여행 다니는 데 썼어요. 먹는 것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었고요. 식사는 학생식당에서 주로 해결했어요. 한 끼에 1마르크20페니히쯤 됐어요. 우리나라 돈으로 1000원이 안 됐죠. 그 가격이니 제대로 나왔겠어요? 감자 튀김과 구운 소시지 몇 조각이 보통이었죠. 맛은 당연히 별로였고. 그래도 시장이 반찬이라 끼니는 넘겼어요. 식당마저도 못 갈 형편일 때는 직접 해먹었어요. 스파게티도 해먹고, 햄도 썰어서 구워먹고. 맥주도 엄청나게 많이 마셨어요. 9년 반 동안 마신 거 합하면 한 트럭 넘을 거예요.
 
▲ 이원복 덕성여대 교수가 학교 앞 레스토랑에서 주문한 돈가스를 입에 물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그 시절 '성공하면 실컷 먹어보리라'고 저를 다짐하게 만든 음식이 있었어요. 바로 돈가스였죠. 그때 우리나라에는 고기가 드물었어요. 잘 먹어봤자 콩나물무침하고 꽁치 반찬 정도였어요. 그런데 독일에 가니 온 천지에 고기더라고요. 처음 돈가스를 먹어본 건 제가 살던 기숙사 바로 옆에 있던 '니만'이라는 레스토랑이었어요. 맥주도 팔던 전형적인 독일 식당이었죠. 독일식 돈가스는 '슈니첼(Schnitzel)'인데 우리나라 돈가스하고 모양은 같지만 맛과 재료가 조금 달라요. 빵가루를 입히긴 했는데 우리나라처럼 바삭바삭하지는 않거든요.

슈니첼에는 세 종류가 있어요. 튀긴 고기에 소스 없이 레몬즙을 뿌려서 먹는 비너 슈니첼, 버섯 크림소스와 먹는 예거 슈니첼, 카레 소스를 곁들인 지고이너 슈니첼이죠. 예거 슈니첼이 17마르크였어요. 1만원이 넘었죠. 학생은 엄두를 못 낼 가격이었어요.

누구였더라, 아는 분을 따라 우연히 니만에 가게 됐어요. 커다란 흰 접시에 손바닥 두 개를 겹쳐놓은 크기의 고기가 나오더라고요. 따뜻한 밥에 김치 먹으면 제일인 줄 알던 혀가 난생처음 색다른 소스 요리를 먹어보니 얼마나 놀랐겠어요. 어떤 맛이라고 느끼기도 전에 허겁지겁 씹어 넘겼어요. 이런 맛이 있구나, 신기하기만 했죠. 배가 불러올 즈음에야 생각이 들었어요. '아, 이게 풍요의 맛이구나'라고요.

독일도 사실 18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못 살던 나라죠. 게르만권이 음식문화가 비교적 뒤처진 편이에요. '잘 먹었다'하면 '많이 먹었다'하고 통하고, 좋은 레스토랑이라고 하면 아직도 '양이 많은 레스토랑'을 말하는 경우가 많아요. 맛이야 소스 중심으로 발달한 프랑스가 훨씬 앞섰죠.

그때 먹어본 슈니첼 크기가 우리나라 돈가스 크기의 3배는 됐을 거예요. 키 180㎝에 몸무게 90㎏ 정도인 독일 사람이 배불리 먹을 양이니 얼마나 컸겠어요. 저처럼 작은 체구는 반만 먹어도 더 못 들어가요. 배가 불러서 들어가지도 않는 슈니첼을 앞에 두고 다짐했어요. '언젠가 돈을 많이 벌면 이걸 실컷 먹어보겠다'라고요.

졸업을 하고 귀국해서 직장을 얻고, 책을 내면서 생활도 안정적이 됐죠. 독일에 다시 가서 벼르던 돈가스를 실컷 먹어봤어요. 그런데 그때 그 맛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또 배웠죠. 추억의 맛이란 건 존재의 확인이구나 하고요. 노래하고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가수 이선희의 'J에게'를 들으면 저는 어김없이 1984년 9월이 생각나요. 지금 재직하는 학교에 부임하던 때 막 유행하던 노래였거든요. 마찬가지로 슈니첼을 떠올리면 유학생활이 생각나면서 무작정 그리워져요.

요즘 제 입에는 우리나라 돈가스가 훨씬 맛있어요. 바삭바삭한 게 그만이죠. 하지만 누군가 제게 '내 인생의 맛'을 묻는다면 그래도 제게는 슈니첼이죠.

☞ 이원복 교수는
1946년 충남 대전 출생. 서울대 건축학과를 거쳐 독일 뮌스터대학의 디자인학부를 졸업했다. 졸업 때 총장상을 받았다. “아시아에서 유학 왔으니 어서 돌아가서 취직하라고 교수들이 점수를 잘 줬다”고 겸손해한다. 현 덕성여대 산업미술학과 교수. 10년간의 유럽 체류 경험을 담아 1987년 펴낸 ‘먼 나라 이웃나라’로 교양 만화의 시대를 열었다. 세계 최대 규모인 ‘2009 볼로냐 국제 일러스트전’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심사위원에 선정됐다. 교수보다 만화가로 불릴 때 행복하다. 스페인과 러시아의 역사를 만화로 다룰 계획을 갖고 있다.

● 돈가스
슈니첼·비프 커틀릿…나라마다 이름 다양

일본엔 돈가스, 미국엔 비프 커틀릿, 그리고 독일권엔 슈니첼(Schnitzel)이 있다. 슈니첼은 원래 오스트리아의 전통 음식이었다. 오스트리아 수도인 빈(비엔나)에서 즐겨 먹는 요리, 혹은 빈식이라는 뜻의 ‘비너 슈니첼(Wiener Schnitzel)’은 빵가루를 입혀 튀긴 고기(주로 소고기)에 감자 샐러드를 곁들여 먹는다. 오스트리아에 슈니첼이 처음 등장한 시기는 15~16세기쯤. 이보다 앞서 이탈리아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19세기 아르헨티나에 ‘밀라네사’라고 불리는 돈가스를 전해준 것도 이탈리아 이민자들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먹는 돈가스는 일본에서 유래했다. 돈가스가 일본에 등장한 것은 19세기 후반 메이지유신 이후다. 메이지유신 전 1200년간 일본에서는 육식이 금지됐다. 7세기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시행된 육식금지법(675년) 때문이었다. 금지법이 풀리면서 등장한 대표적인 고기 요리가 돈가스다. 고기에 빵가루를 입힌 이유에 대해서는 ▲오랜 기간 육식을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설 ▲고기 공급이 부족해 여러 사람이 적은 양으로도 즐길 수 있도록 고안됐다는 설이 있다. 용산구의 독일 레스토랑 ‘도이치 하우스’는 “일본 돈가스는 슈니첼에 비해 고기가 두툼해 오래 튀겨내다 보니 바삭바삭한 맛이 강조된다”고 설명했다.

‘돈가스’라는 단어는 ‘포크 커틀릿(pork cutlet)’을 일본식으로 줄여 부르는 과정에서 생겼다. 포크, 즉 돼지고기는 돈(豚·とん)으로, 커틀릿은 カツレツ(가쓰레쓰)에서 ‘가스’로 줄었다. 우리나라에 건너온 것은 1970년대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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