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바람·햇살…당신을 위로해줄 거예요

[백은하의 여행에서 만난 디자인] 남해와 통영
  • 등록 2006-08-31 오후 1:14:29

    수정 2006-08-31 오후 1:14:29

[조선일보 제공]



‘방학도 없이 이렇게 정년퇴직까지 매일 일만 해야 돼?’
날이 선 흰 와이셔츠에 훌륭한 경력을 가졌지만 심하게 찌든 선배에게,
원더우먼 뺨치게 잘 살지만 가끔 깊은 한 숨 쉬며 가슴을 두드리는 또 다른 선배에게,
오늘은 친구처럼 권하고 싶은 곳이 있으니, 저기 남쪽 여행이에요.
남해나 통영(소매물도), 두 곳 중 한 곳이라도 다녀오면,
누룩누룩해진 몸과 영혼이 그 쪽 지방 바람과 햇살로 완전 샤워될 거예요.
가족 여행도 훌륭하고, 또 서로에게 방학을 내주며 나홀로 여행을 독려해줘도 좋겠네요. 하여간 남해의 그 햇살과 바다가 당신을 위로하기를 바랍니다.

①통영항을 따라 쭉 산책했다. 바닷물 냄새와 갈매기들 움직임, 그리고 분주한 항구 사람들을 구경하며 한나절을 느릿느릿 보냈다. 아담한 이 도시의 항구는 아주 깨끗하고 시내와 바로 이어져 있다. 갈매기들은 물 속에서 헤엄치다가 뭍에 나오면 가만히 눈을 감고 햇살을 즐긴다. 참, 조용히 시적으로 움직인다. 무슨 조형물처럼 꿈쩍도 안하고 명상하듯 서 있는 갈매기.

②남망산 공원을 따라 산책하다 보면 곳곳에 아주 자연스럽게 조각과 공간이 어우러져 있는 걸 보게 된다. 어느덧 마음은 부르고, 이내 배가 고파온다. 그리고 저기 반가운 매점 하나, 장승박이. 평범한 매점처럼 보이지만 라면과 차를 먹고 실내를 두리번거리다 보면 차창 밖 멋진 전망과 근사한 분재들, 그리고 뒷뜰이 천천히 눈에 들어온다.

정원을 따라 내려가면 방갈로가 몇 개 있다. 혼자라면 너무 외진 숲 속이라 좀 그렇고(나는 무턱대고 잘 잤지만), 일행이 있다면 신선한 숙박 경험이 될 것.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면 나무들 사이로 바다가 열린다.

③두둥실 바다 위에 떠있고 싶다면, 통영으로 가서 소매물도를 다녀오는 게 좋겠다. 가기 전 무엇무엇 여러 개 할 생각 말고 청정함이라고 밖에 할 말 없는 남해 특유의 바다와 햇살을 마음껏 누리다 오기를. 남해는 사실 바다와 바람, 햇살, 그게 다다. 그거 손에 쥐고 오면 된다.

1시간짜리 항해, 마치 푹신한 소파에 누워 항해하는 것처럼(실제론 딱딱한 의자지만) 기분 좋은 여정. 통영바다 사진 찍은 후 그 사진 위에 소파를 붙였다. 꼭 이런 기분이었다.

통영 여객선 터미널에서 배를 탈 수 있다. 문의는 여객선터미널(055-642-0116). 아침 일찍 가서 그날 오후 늦게 나오는 배를 타고 돌아올 수도 있고, 곳곳의 해녀 할머니네에서 민박을 할 수도 있다. 소매물도 여행은 가뿐하긴 하지만 그냥 ‘산책’이 아니라 ‘산행’이다. 운동화를 신고 물과 도시락과 모자를 꼭 챙기시라.

④동해 남해 서해 가는 곳곳, 어촌마다 다 느낌이 다르다. 어떤 어촌은 억세고 어떤 어촌은 쓸쓸하고 어떤 어촌은 활기차며 어떤 어촌은 지쳐 보인다. 똑같은 바닷물과 똑같은 배들이 있어도 그렇게 달라 보이는 이유는 뭘까.

특히 남해 물건리는 삭막하지도 우쭐하지도 방어적이지도 쓸쓸하지도 않다. ‘정말 다정하다’는 말이 딱 맞는 마을.

⑤소매물도는 작은 섬이다. 망태봉(120m)을 오른 후 산 능선을 타고 등대섬까지 다녀오는 코스인데,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숲 (망태봉 정상 즈음에 있는 초등학교 폐교엔 400~500년 된 동백숲이 있다. 거기 앉아, 입이 떡 벌어지는 바다 풍광을 조망해야만 한다)과 사람들(해녀 할머니들 집이, 산 시작하는 기슭에 박혀 있다)과 물(소매물도와 등대섬 사이 물길이 열린다)을 즐기다가 등대섬까지 오른다. 등대섬은 꽃섬이라 할 정도로 봄, 가을로 꽃이 많다.

강태공들을 주변 섬에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배를 얻어 타고 마을 앞 바다 한 바퀴를 빙 돌았다. 물보라가 산 능선처럼 커지고 작아지고를 반복한다. 한 폭의 근사한 디자인을 보며, 어쩌면 이 세계는 산 같은 세계와 사람, 물 같은 세계와 사람이 어우러져서 조화하며 사는 걸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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