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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우리들의 머릿속은 제각기 이상형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환상으로 우리의 기분은 최고조에 달해있었다. 이 기분이라면 다시 수능시험을 보라고 해도 기분 좋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부푼 기대로 잔뜩 멋을 부리고 들어선 카페에서 우리를 맞아준 남자들이란 새하얀 피부의 세련된 대학생 오빠들이 아니라 한결같이 아직 여드름 조차 가라앉지 않고, 앉아서 공부만 했는지 뒤룩뒤룩 살찌고,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오빠들이었다. 아니면 정체불명의 헤어 스타일과 옷차림에 고등학생의 티를 채 벗지 못한, 촌스럽기 그지없는 아저씨 같은 남학생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갓 입학한 남학생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인데, 그때는 그 모습을 어찌나 용서 할 수 없었던지. 거울에 비친 우리 친구들의 모습도 남학생들과 별반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7명 여자들의 춘 3월 미팅은 봄바람을 타고 계속됐다. ‘미팅이라 그런가? 그럼 일대 일로 하는 소개팅은 다르겠지’ 는 위안과 희망을 갖고 실망과 기대를 몇 번씩 반복하면서 카페와 극장을 학교보다 더 많이 나갔다.
십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친구들과 만나면 첫 미팅의 악몽, 미팅에서 함께 만났던 폭탄들과 그 험난했던 연애 과정, 혹은 마음에 든 첫 남자친구와의 연애스토리 등등 나 혼자만의 추억이 아닌 우리 공동의 추억담을 얘기하면서 몇 시간동안 지치지도 않고, 깔깔거리고 웃으며 수다를 떨곤 한다. 동네 여고친구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영화 ‘써니’의 여 주인공들처럼.
벌써 춘 3월 열흘이 지났다.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은 가고 어김없이 따뜻한 봄은 찾아왔다. 추위로 한없이 웅크러져 있던 몸과 마음을 저 마다 갖고 있는 추억속 춘삼월의 첫 미팅, 첫 소개팅, 첫 사랑 등을 떠올리며 이 따뜻한 봄을 맞아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