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시장 공략기-삼성전자)③핸드폰을 넘어 시스템으로

  • 등록 2003-12-10 오후 12:07:10

    수정 2003-12-10 오후 12:07:10

[달라스(텍사스)=edaily 정명수특파원]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달라스는 사방이 평평한 땅덩이였다. 10월 하순이었지만 한낮 달라스는 초여름 날씨였다. 회색 건물들만 아니라면 사막에 왔다는 착각이 들정도로 밋밋하고 황량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눈처럼 사라져버렸다. 노키아, 모토롤라, 에릭슨,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등 유수의 통신업체들이 즐비했다. 달라스는 세계 통신 기업들이 포탄을 주고받는 최전선이었다. 삼성전자가 핸드폰을 팔아 보겠다며 `호랑이 굴`에 뛰어든지 7년. 삼성전자는 어느새 호랑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고 있었다. ◇먹느냐 먹히느냐 삼성전자의 미주 통신사업본부는 공식적으로 삼성텔레커뮤니케이션즈아메리카(Samsung Telecommunications America)라는 현지 법인으로 100% 삼성전자 자회사다. STA가 달라스에 설립된 것은 1996년.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브랜드없이 전화기 등을 수출하다가 "미국 시장에도 삼성 브랜드를 심어보자"며 뛰어든지 7년이 지났다. 달라스는 미국 통신업계의 메카다. 내로라하는 통신기업들이 달라스를 거점으로 미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달라스는 겉보기와 다르게 첨단 통신 기업이 성장하기에 좋은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 우선 교통의 요지다. 뉴욕 등 동부로 날아가는데 3시간, 서부의 샌디에이고도 3~4시간이면 충분하다. 중남미를 공략하기에도 좋다. 우수한 전문 인력도 쉽게 확보할 수 있다. 땅값 등이 저렴해 초기 투자 비용도 적다. 96년 법인 설립 당시의 초창기 멤버인 조기형 기획부장은 "이런저런 여건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통신시장의 메카에서 정면승부를 해야한다는 생각때문에 달라스에 현지 법인이 세워지게 됐다"고 회고했다. 먹느냐 먹히느냐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삼성이 핸드폰도 만듭니까" 이것이 초기 시장의 조건이었다. 베스트바이나 서키시티 등을 찾아가 명함을 내밀면 이들은 삼성이 뭔지도 몰랐다. 어렵게 이동통신사업자인 스프린트와 공동 브랜드를 쓰기로 했지만, 제품 앞면에는 스프린트, 뒷면에는 삼성 식으로 곁다리 신세를 면치 못했다. 베터리에도 `삼성` 이름을 넣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 조 부장은 "매일같이 스토어를 돌면서 제품 설명을 해주고, 작동이 안된다고 하면 바로 뛰어나가 문제를 해결해줬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뉴욕에서 핸드폰이 안 터진다고 하면 바로 비행기를 잡아타고 날라갔다. 일단 이름을 알리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판매상들과 일대일로 붙어서 파트너십을 쌓아나갔다. 6개월이 지나자 스토어 진열대에서 삼성 핸드폰이 앞자리로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2년이 지난후 전자제품 전문 체인점인 라디오 샥의 남부지역 총괄 사장이 이런 말을 했어요. 이 사람이 처음에는 삼성 핸드폰 판매를 반대했대요. 계약이 됐으니 그냥 맡아보는 거지만, 큰 기대를 안했다는 거죠. 삼성직원들이 거의 매일 와서 제품 설명해주고, 통화품질을 향상시켜주니까, 지금은 삼성 핸드폰이 제일 많이 팔린다는 거에요." 조 부장은 초기 브랜드 론칭은 `발로 뛰는 마케팅`이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핸드폰은 올해 7월 누적 수출 규모 3000만대를 달성했다. 플립형, 폴더형 , 보이스 다이얼링, 카메라 폰 등 잇따라 히트 작을 선보이며 핸드폰의 명품 대열에 합류했다. ◇새로운 시장, 새로운 파트너 삼성 핸드폰의 성공은 `파트너십 전략`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1997년 스프린트는 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되면서 100% 디지털 서비스를 공약한다. 버라이존이나 AT&T, 에어터치 등 당시의 주요 이통 사업자들은 아날로그, 유선통신 등 다른 사업을 병행했지만, 스프린트는 최초로 디지털 전용을 선언한 것. 삼성은 스프린트가 기존 사업자와 경쟁하기 위해 새로운 파트너십을 찾고 있다는 점을 간파하고 공동 브랜드, 공동 마케팅을 제의했다.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려는 삼성과 역시 새로운 서비스 제공을 약속한 스프린트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 랜디 스미스 마케팅 담당 부사장(사진)은 "우리에게는 3가지 타입의 고객이 있는데, 하나는 통신사업자, 둘은 판매체인점, 셋은 실제 핸드폰을 쓰는 고객"이라며 "이중 가장 중요한 고객은 통신사업자"라고 말했다. 핸드폰 판매의 제일 순위가 통신사업자와의 파트너십이라는 뜻이다. 스미스 부사장은 "통신사업자와 공동으로 마케팅 플랜을 짜고 있다"며 "통신사업자와 핸드셋 업체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행복한 부부관계를 맺어야한다"고 말했다. 스미스 부사장은 "스프린트는 가장 오랜동안 전략적 관계를 맺은 파트너이고, 초기 시장을 함께 개척한 훌륭한 남편"이라고 말했다. 현재 삼성전자는 미국내 5대 이동통신사업자들에게 모두 핸드셋을 납품하고 있다. 스프린트라는 알맞는 배우자를 선택해 시장에 진입했고, 훌륭한 제품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은 후 다른 통신사업자들과도 제휴 관계를 넓히는 전략을 쓴 것이다. ◇핸드폰의 BMW 스미스 부사장은 삼성 핸드폰의 브랜드 전략을 한마디로 `BMW 전략`이라고 말했다. 초기 브랜드를 알릴 때부터 삼성은 판매 체인점들을 돌며 "적게 팔아도 좋으니 제값을 받아달라"고 주문했다. 싸구려 이미지를 벗어나야겠다는 일념때문이었다. 스미스 부사장은 "미국 소비자들은 입맛이 까다롭지만 밸류, 디자인, 품질에서 만족한다면 그에 맞는 돈을 지불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 핸드폰은 고가품일수록 인기가 높았다. 달라스 시내에서 스프린트 대리점을 직접 운영하는 팀 스탠윅 사장도 비슷한 얘기를 들려줬다. 스탠윅 사장은 1998년 삼성 핸드폰이 미국 시장에 처음 나왔을 당시부터 삼성 핸드폰을 팔아왔다. 그는 "삼성 핸드폰을 매장에서 다루기 전까지는 삼성 브랜드에 대해 2류 제품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며 "지금은 한 대에 600달러를 호가하는 삼성 핸드폰이 없어서 못팔 지경"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올해 미국시장에 스마트폰 개념의 I-500을 선보였는데, 이 제품이 비즈니스맨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I-500은 대당 600달러를 호가하고 있지만, 매장에는 재고가 한대도 없었다. 스탠윅 사장은 "자신의 딸과 아내도 삼성 카메라 폰을 가지고 있다"며 "하이 레벨에서는 단연 삼성 핸드폰"이라고 말했다. (달라스 스프린트 대리점 내에 진열된 삼성 핸드폰 광고. 삼성은 스프린트와 공동 마케팅을 성사시켜, 시장 진출의 발판으로 삼았다.) ◇고가전략의 함정 삼성 핸드폰은 미국 소비자들 사이에 고급 이미지를 심었고, 삼성의 다른 제품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STA의 현지 직원들도 이같은 삼성 브랜드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스프린트 매장을 함께 방문했던 바바라 스코긴스 매니저는 "삼성에서 일하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의 `고가전략`은 스스로 입지를 좁히는 작용도 하고 있다. 삼성이 추격하는 상위 업체부터 삼성을 뒤쫓는 하위 업체들까지 `가격`으로 삼성을 압박하고 있는 것. STA의 한 관계자는 "너나할 것없이 싼 물건으로 시장을 잠식해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면 짜증이 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삼성이 이들에 맞서 당장 값싼 핸드폰을 내놓을 수는 없다. 그동안 쌓아 놓은 고급 브랜드 이미지에 상처가 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1년에 200여개의 핸드셋 모델을 내놓는다. 이틀에 하나 꼴로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는 셈이다. 핸드폰의 주요 소비층이 유행에 민감한 젊은 세대라고 하지만 200개의 모델을 모두 최고급 제품으로 채울 수는 없다. BMW는 비싸고 좋은 차를 만든다. 누구나 한번쯤 BMW를 꼭 타보고 싶어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BMW를 탈 수는 없다. 삼성이 경쟁사의 가격 압력에 연연해하지 않고, 고가 전략을 끝까지 밀고 나갈만큼 핸드셋 시장에 자신이 있다면 굳이 저가 제품을 내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역으로 삼성이 고가전략에 변화를 꾀하는 순간, 1등에 대한 자신감도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 된다. ◇시스템 시장을 향하여 STA의 핸드폰 담당 부서는 전쟁터다. 미국 현지 시장을 놓고 노키아 등 호랑이들과 매일 매일 피튀기는 전투를 치루고 있다. 그때 그때 즉흥적으로 처리해야할 일도 많다. 시장의 변화가 너무나 빠르기 때문에 조금만 대처가 늦어도 시즌 전체를 망치고, 시장을 빼앗기게 된다. 핸드폰의 포트폴리오가 한없이 길어지고, 기술 발전에 대처해야하는 것 자체가 리스크가 되고 있다. 삼성이 이같은 불안정성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 통신시장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이 통신 시스템 분야다. 전승오 시스템 담당 부장(사진)은 "미국 시장에서 통신 시스템 사업은 이제 막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스템 쪽에서 `한 건`은 핸드셋과는 비교도 안되는 수익성을 지니고 있다. 일례로 특정 지역의 이동통신 시스템을 수주했다고 하면 무상 기간이 끝나는 2년 이후부터는 소프트웨어 라이센스 수수료를 연간 200만달러 정도씩 받게 된다. 이는 핸드셋 4만~5만대 판매량과 같은 것이다. 만약 시스템에 새로운 서비스 기능을 부과하게 되면 이에대한 설치비용은 따로 받게 된다. 기본적인 유지보수 수수료도 연간 150만달러 정도다. 통신 시스템은 한번 설치되면 기본적으로 10년은 지속되기 때문에 시장을 완전히 점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에는 시스템 업그레드 등을 필요로하는 통신 권역이 60여개가 있다. 60개의 시장을 놓고 본격적인 혈투가 막 시작되려고 하고 있다. 전 부장은 "지금까지 미국 경기가 좋지 않아서 이동통신사업자들이 자본 투자를 자제해왔지만 최근 통신 환경이 급변하면서 투자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당장 미국 이통사업자들은 `번호 이동 서비스`에 대비한 통화 품질 향상에 주력해야한다. 고객들이 자신의 번호를 그대로 보유한 채 다른 사업자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통화 품질을 획기적으로 개선시켜야만 기존 고객을 붙잡아 둘 수 있다. DO니 EVDV니 하는 새로운 통신 서비스 실시가 눈 앞에 다가온 것도 대규모 시설 투자를 게을리 할 수 없게 만든다. 일례로 MCI의 경우 미국 법원이 파산 회생 계획을 받아들임에 따라 그동안 미뤄뒀던 시설투자를 본격화할 전망이다. MCI와 같은 대규모 통신회사가 시스템 투자를 한다면 기존의 유무선 통신사업자들도 경쟁적으로 투자를 늘리게 될 것이 뻔하다. 전 부장은 "국내에서 이미 시행해본 시스템을 가지고 미국에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에 제품 자체는 완전하다"며 "일단 시스템 시장에 진입하면 안정적으로 높은 수익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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