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웃어도 지워지지 않는 광주 `푸르른 날에`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소재로한 고선웅 연출의 `푸르른 날에`
남산드라마센터 예술극장에서 28일까지 공연
  • 등록 2011-05-18 오전 11:06:04

    수정 2011-05-18 오전 11:06:04

▲ 연극 `푸르른 날에` 한 장면(사진=신시컴퍼니)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1980년 5월 광주를 역사책은 `5.18 광주 민주항쟁`으로 정의한다. 신군부가 정권을 잡기 위해 군대를 동원, 광주시민을 학살한 5.18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충격적인 비극이며 또 아직도 완전히 치유되지 못한 상처이기도 하다.

연극 `푸르른 날에`(제작 신시컴퍼니, 연출 고선웅)는 5.18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5월 광주 당시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군부에 끌려가 고문을 받은 뒤 불가에 귀의한 오민호가 주인공이다. 오민호는 5.18이 일어나기 전 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때 자신을 따르던 기준의 누나 정혜와 사랑에 빠진다. 민호와 정혜는 결혼을 약속하지만 5.18의 격랑 속에서 둘의 운명은 어긋난다.

이처럼 `푸르른 날에`의 줄거리는 지금까지 5.18을 소재로 한 많은 작품과 대동소이하다. 민호와 정혜의 딸이 새 출발 하는 결말로 마무리되는 것도 일종의 전형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지만 `푸르른 날에`는 기존의 5.18과 연관된 작품과 차별성을 지녔다. 극의 외피에 `신파성`을 입혔기 때문이다.

`칼로멕배스`와 `락희맨쇼`를 연출한 고선웅은 제3회 차범석 희곡상을 수상한 정경진 작가의 `푸르른 날에`를 `명랑하게 과장된 통속극`에 방향을 맞춰 각색했다. 덕분에 `푸르른 날에`는 5.18이란 역사적 사건이 지닌 비극적 속성과는 별개로 마치 무성영화의 변사처럼 자문자답과 문어체 형식을 가져와 관객들에게 실소를 머금게 한다.

죄 없는 시민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도 `푸르른 날에`의 무대는 희극적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과장되어 있고 대사는 신파조로 넘쳐난다. 이미 5.18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는 관객들로서는 무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벼움에 심적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종일관 가볍고 위악적으로 전개되던 극은 오민호가 신군부에 끌려가 고문을 받는 장면에서 분위기가 돌변한다. 관객들은 그 장면에서 신군부가 어떤 식으로 개인의 삶을 파괴하고 그 푸르른 청춘들을 도륙했는지를 정면에서 응시하게 된다.

이 때 젊은 날의 오민호 역을 맡은 이명행의 몸과 눈빛은 당시의 처참함을 온몸으로 뿜어낸다. 그 짧은 순간의 사실적 에너지만으로도 `푸르른 날에`가 주는 정서적 충격은 크다. 이는 5.18이 죽은 이들뿐만 아니라 결국 살아남은 이들의 삶조차 파괴했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켜 주어서다.

고문 장면이 지나가면 다시 연극은 명랑성과 과장성의 옷을 꺼내 입는다. 민호와 정혜의 딸 운하의 결혼을 통해 죽어도 죽지 않는 삶의 희망과 해원상생을 이야기한다. 이어 송창식의 노래 `푸르른 날`에가 울려 퍼지며 막은 내리고 배우들은 고개를 숙여 묵념한다. 박수는 터지지만 환호는 차분하다.

연극을 본 관객들은 환히 웃으며 흐믓한 표정으로 극장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그 까닭을 배우도 연출도 그리고 관객도 알고 있다. 5.18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온전히 치유되지 못한 현재 진행형의 상처라는 것을 말이다.

오는 29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공연된다. 문의(02)577-1987.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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