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과 싸워온 신격호의 뜨거운 열정 ‘회고록’에 담아 출간

탄생 100주년 기념 ‘열정은 담들지 않는다’ 회고록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간 청년이 재계 5위 롯데 창업주로
  • 등록 2021-11-01 오전 10:30:00

    수정 2021-11-02 오전 7:30:50

[이데일리 김보경 기자] 롯데그룹은 오는 3일 창업주 고(故) 상전(象殿) 신격호 명예회장 탄생 100주년을 맞아 회고록 ‘열정은 잠들지 않는다’를 출간했다.

이병철 삼성 회장, 정주영 현대 회장 등과 함께 대기업 창업 1세대를 대표하는 신격호 회장은 1967년 롯데제과로 시작해, 100조원 자산을 보유한 재계 5위의 롯데그룹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업적에 비해 개인적 면모나 삶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회고록은 신격호 회장이 남긴 회고를 기본 뼈대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원로 기업인들의 글과 인터뷰로 세부를 더했다. 인간 신격호의 삶과 철학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일화가 담겼다. 고도성장기의 마지막 거인 신격호 회장의 도전과 열정이 전해진다.

(사진=롯데그룹)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간 시골 청년

1921년 경남 울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울산농업실수학교를 졸업하고 목양(牧羊) 지도기술원으로 일하던 청년 신격호는 보다 큰 세상에서 꿈을 펼쳐 보고자 1941년 혈혈단신으로 부관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책 전반에 그려진 청년 시절 신격호 회장의 일본에서의 성장 과정은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로, 가진 것 없는 젊은이가 외국 땅에서 편견을 이겨내고 성공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이 담겼다.

우유배달, 트럭기사 조수 등 온갖 궂은일을 하며 와세다고등공학교를 졸업한 신격호 회장은 화공제품을 제작하는 작은 사업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는 신격호 회장의 인물됨을 알아본 이들의 도움도 있었으며 2차 세계대전 기간에 어렵게 일군 공장과 제품이 폭격으로 두 번이나 완전히 소실되는 시련도 있었다. 이후 신격호 회장은 화장품 사업 등을 거쳐 1948년 롯데를 설립한다. 껌이라는 단일 품목으로 사업을 시작한 롯데는 초콜릿, 캔디 등으로 하나하나 분야를 확대하며 불과 20여 년 만에 일본 굴지의 종합제과업체로 우뚝 선다.

1962년 국교수립 전 한국에 도착한 고(故)신격호(왼쪽) 롯데 창업주(사진=롯데그룹)
젊은 사업가 신격호, 모국으로 향하다

1965년 한일 수교가 이루어지자 일본에서 떠오르던 젊은 사업가 신격호의 눈은 고국 대한민국을 향했다. 1인당 GDP가 약 300달러에 불과했던 대한민국의 현실에 눈을 돌려, 고국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 한국 정부로부터 고국 진출 제안도 받은 터라, 신격호 회장은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부로부터 근대화의 상징이라 할 제철업 진출을 제안받고 구체적인 사업 준비에 들어갔지만 공공성이 강한 제철업은 정부 주도로 추진하기로 계획이 변경되며 아쉽게 물러서고 만다. 이때 거액을 들여 준비한 제철 관련 자료는 그 대신 제철업을 준비하던 포항제철 박태준 회장에게 조건 없이 제공한다.

이후 계획을 변경해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하며 국내에 첫 진출한 신격호 회장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유서 깊은 반도호텔 자리에 새로운 호텔을 지을 것을 제안하였다.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큰 모험이었지만 신격호 회장은 고민 끝에 한술 더 떠 세계적 호텔 건립 이상의 목표를 세운다. 300~400실 규모면 일류 호텔 소리를 듣던 1970년대 초에 40층, 1000실 규모의 호텔에 더해 백화점과 오피스타운까지 동시에 건설하는 전무후무한 복합개발을 구상한 것이다.

1979년 롯데호텔 개관식에 참석한 신격호 창업주(사진=롯데그룹)
신격호 회장 꿈의 정점, 롯데월드타워

공동 롯데타운, 잠실 롯데월드, 그리고 롯데월드타워는 ‘가족 모두가 함께 즐겁게 지낼 행복한 공간’을 꿈꾼 신격호 회장 특유의 복합개발 방식과 규모를 잘 보여 준다. 서울 시내에서도 3~4층 이상의 빌딩을 찾아보기 힘들었던 1970년대, 소공동 롯데호텔과 롯데백화점의 규모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복합개발 방식은 잠실 롯데월드에서 그 정점을 이뤄, 테마파크와 호텔, 백화점, 쇼핑몰의 복합개발이라는 유례없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더 나아가 신격호 회장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늘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된 123층 롯데월드타워를 만들어 내었다.

회고록 후반부에는 잠실 롯데월드와 롯데월드타워의 기획·디자인에서 공사까지의 생생한 과정들이 담겨있다. 특히 롯데월드타워의 경우 1980년대부터 20여 년에 걸쳐 변화해 온 디자인 안들도 소개했다. 신격호 회장이 롯데월드타워에 어떠한 꿈을 품었으며, 이를 성취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력이 들어갔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편견과 싸워온 대한민국 국적 신격호

회고록의 주를 이루는 것은 ‘롯데그룹 창업주 신격호’ 이야기이지만, 총 8개로 이루어진 각 장 끝에는 ‘인간 신격호’를 좀더 이해할 수 있는 개인적 일화들이 들어 있다. 댐 건설로 수몰된 고향 마을 이야기, 바둑기사 조치훈이나 프로복서 홍수환을 후원한 사연, 롯데자이언츠 야구단 창단을 둘러싼 비화 등 흥미로운 일화들이 이어지는데, 그 근본을 이루는 정서는 신격호 회장이 가졌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다. 가족을 떠나 일본에서 사업을 꾸려 나간 신격호 회장은 고국 출신의 스포츠인, 문화인 등을 지원하고 교류함으로써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다소나마 해소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신격호 회장은 일본에서 성공한 한국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귀화하지 않고 끝까지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했다. 그로 인해 일본에서 사업을 하며 겪은 고난이나 불리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신격호 회장은 ‘본명: 신격호, 국적: 대한민국’이라고 뚜렷이 새겨진 주민등록을 끝까지 유지했고, 대한민국의 기업인으로서 기억되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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