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쌀 백날 굴리는 것보다 호박 한 번이..."

  • 등록 2006-03-07 오후 9:36:43

    수정 2006-03-07 오후 9:36:43

[오마이뉴스 제공] "요즘은 뭐가 좋데?"
"작년엔 적립식 펀드로 재미 좀 봤는데...."
"그것도 요즘은 별로라던데 환매니 뭐니 말도 많고."
"주식은, 재미 좀 봤어?"
"나야 뭐, 지난해는 괜찮았지. 올해도 3000포인트까지 간다는 말도 있고."
"난 아무래도 부동산이 안정적이지 싶어. 판교나 공략해 보려고."

아이들 대학입시 끝내고 졸업식까지 끝난 2월 어느 날, 모처럼 엄마들끼리 자리를 가졌습니다. 요즘 주부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아이들 진학 문제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주제는 단연 재테크입니다. 재테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계좌 정도는 갖고 있다는 적립식 펀드는 물론 종자돈을 이용한 주식투자, 목돈을 장기간 묶어두는 채권투자, 상가투자나 부동산투자까지 거의 모든 재테크에 주부들이 손을 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줌마 부대가 객장에 나타나면 어김없이 천정이다'라는 증시 격언이나, 투자처를 찾아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전문부동산 투기꾼들을 '아줌마부대'로 부르는 것이나, '복부인'이란 말은 있어도 '복남편'이라는 말이 없는 것 역시 재테크에 나선 주부들이 적지 않은 세태를 반영하는 말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모임에서 아줌마들의 가장 큰 관심은 아무래도 분양이 얼마 남지 않지 않은 판교였습니다. 분당에 살며 자기 소유의 집이 있든 없든 한 가구에 몇 개씩의 청약통장을 소유하고 있는 이들의 올해 목표가 소위 부동산 로또라고 불리는 판교 아파트 당첨이기 때문입니다.

이들 아줌마 사이에도 불문율은 있습니다. '남편은 공유해도 알짜배기 재테크 정보는 공유하지 않는다.' 이 말은 정말 중요한 재테크 정보는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며칠 전에 ○○이 엄마랑 코엑스에서 하는 재테크특강에 다녀왔잖아. 판교 공략 전략 세미나 말이야."
"정말 돈이 아깝지 않더라. 사람들도 얼마나 많이 왔는지 몰라. 다들 어쩌면 그렇게 열심히 듣는지. 우리도 열심이다 했는데 거기 가니까 우린 아무것도 아니더라."
"그거 언제 또 한데? 나도 가야겠다."
"그러지 말고 당신이 여기서 재방송 좀 해봐."
"여보슈, 비싼 돈 들여 서울까지 가서 들은 강의를 공짜로 해달라고? 거저먹으려고 하네. 떼끼 이 사람. 호호호."

정작 중요한 정보가 무엇인지는 끝까지 함구하는 통에 알아내지 못했지만, 4만 원의 수강료를 지급하고 들어야 하는 재테크 특강에 수백 명이나 되는 투자자들이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고 하니 참가하지 못한 저로서는 좀 더 부지런을 떨어서라도 함께 가봐야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감 떨어질 때를 기다리는 것보다야 시간과 비용을 들여 손품 발품을 판 투자자들에게 뭔가 유리한 조건이 주어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니 말입니다. 투자 역시 부지런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박힙니다.

"백날 적금 넣어봐라, 돈이 되나"

요즘과 같은 저금리 시대가 아니라도 부부의 수입을 다달이 모아 큰돈을 만들었다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은행에 꼬박꼬박 저축만 해서는 집 장만도 재테크도 아이들의 사교육비 마련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지요.

저 역시 결혼 초에는 하루하루 가계부를 쓰며 남편이 가져온 월급을 가지고 정기적금을 들거나 몇 가지 보험에 넣는 것이 투자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낮은 금리 탓에 10년을 열심히 부었지만 그리 큰돈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때쯤 주변 몇몇 아줌마들을 통해 부동산과 주식에 손을 대서 큰돈을 만지게 되었다는 정보를 듣게 되었습니다. 가계부에 콩나물 값과 두붓값 몇백 원을 깨알같이 적어 나가며 '오직 절약만이 살 길이다'를 외치던 아줌마들이 하루아침에 몇백만 원, 몇천만 원 단위의 돈을 굴리는 소위 큰손이 된 것입니다.

"좁쌀이 백날 굴러봐라. 호박이 한번 구르는 것이 낫지."

이렇게 투자를 시작한 아줌마들도 IMF를 거치며 배운 것이 많습니다. 특히 30대를 주축으로 하는 신세대 맞벌이 주부들은 막대한 정보와 인맥을 동원해 전문가 뺨치는 실력을 보여주고 있어 정보화시대 재테크의 떠오르는 주역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결혼 8년, 3번의 이사 끝에 잠실 4000만 원짜리 13평형 전세에서 분당의 7억짜리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는 박아무개 주부는 재테크 역시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일단 재테크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거지요. 그날그날 인터넷을 뒤져 관련정보를 스크랩하는 건 기본이고요. 재테크 관련 책도 읽고 강의도 듣고 정보에 빠른 사람들과 만나서 투자성향도 들어보고 의견도 나누다 보면 어떤 땐 하루가 빠듯해요. 사람들은 쉽게 오늘까지 왔다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몰라요. 거기에 들어간 돈과 시간도 만만치 않고요."

그런데 저는 솔직히 고민됩니다. 자신의 자산을 효율적으로 늘려가며 경제적으로 좀 더 윤택한 생활을 영위하자는 걸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주식과 부동산을 통한 재테크로 인해 자산의 양극화가 심화한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우스갯소리로 세상에는 두 가지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재테크에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IMF 이후 직장인들이나 주부들이 가장 선호하는 재테크의 수단은 부동산과 주식투자(펀드)라고 합니다.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를 했던 사람들은 지금 더 많은 자산을 굴리고 있을 테고, 먹고살기 빠듯해 재테크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거나 정기적금에만 몰두했던 사람들은 뒷걸음질을 치거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돈이 돈을 번다는 이야기가 바로 여기에 적용될 수 있을 테지요. IMF 이후 최근 양극화가 가장 심하다는 언론의 이야기가 과장이 아닌가 봅니다.

도시근로자 가구 소득수준 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의 소득으로 나눈 '소득 5분위 배율'은 지난해 5.43배를 기록해, 2003년 5.22배, 2004년 5.41배에 이어 연속 확대됐습니다. 이는 지난 99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라고 합니다.

집값 폭등을 보면서, "아이들한테 뭔가 물려줄 게 있어야 하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건 아마 부모들이 똑같은 심정일 겁니다. 다급해진 마음에 재테크를 제대로 배워서 적극적으로 해볼까 하다가도 과연 재테크 열풍 사회가 되는 것이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나 후속 세대를 위해서 바람직할지 생각해보면 주춤거리게 됩니다.

재테크 전선에 뛰어들어서 열심히 학습능력을 키워야 할까요, 아니면 그냥 절약하며 알뜰하게 살아야 할까요. 이런 고민을 하게 한 정부의 정책 부재가 더없이 원망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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