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고수익 알바인 줄"…모르고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 했으면 범죄일까

동묘앞역 보이스피싱 신고…경찰, CCTV 추적해 잡아
소환조사서 “나는 모르고 한 일”…자수한 전력 드러나
피의자 60대 A씨 “코로나19로 생계 어려워 구한 알바”
수사기관·법조계 “미필적 고의 인정 돼 처벌 불가피”
  • 등록 2021-05-18 오전 11:00:00

    수정 2021-05-19 오후 9:42:29

[이데일리 이소현 김대연 기자] 이 기사는 이데일리 홈페이지에서 하루 먼저 볼 수 있는 이뉴스플러스 기사입니다.

경찰이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조직 일당을 폐쇄회로(CC)TV로 동선을 추적한 끝에 잡았다. 그러나 현금 수거책 역할을 했던 60대 남성이 고수익 아르바이트로 알고 했던 일이라며, 오히려 범행에 이용당한 피해자라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이 경우는 범죄에 해당할까? ‘고액 알바’에 현혹돼 본인도 모르게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하게 됐더라도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그래픽= 문승용 기자)


CCTV 동선 추적해 보이스피싱 일당 잡았더니…“자수했어요”

서울 혜화경찰서는 지난 14일 한 보이스피싱 조직의 현금 수거책인 A(60)씨를 소환 조사했다. A씨는 지난달 19일 종로구 동묘앞역 부근에서 60대 후반 남성에게 1000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같은 날 피해자 신고를 받은 경찰은 사기 혐의로 입건, 인근 CCTV를 확보해 A씨가 돈을 건네받는 장면을 확인했다. 경찰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동선을 추적한 끝에 A씨의 신병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조사 도중 A씨가 지난 3일 서대문경찰서에 자수한 사실을 알게 됐다. 고액 아르바이트인 줄 알고 했던 업무가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임을 뒤늦게 알아채고 경찰서에 자진 출두했던 것.

A씨는 공연업종에서 30년간 일했지만, 코로나19 이후로 설 수 있는 무대가 사라져 생계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구인광고를 통해 일자리를 찾아 나섰는데 지난 3월께 ‘하루 10만원 이상’, ‘왕초보자 가능’, ‘주5일 근무 10시~6시까지’ 같은 문구가 써진 고수익 아르바이트를 발견했다. 대부업체 고객으로부터 현금을 받아 업체에 전달하는 일이었다.

A씨는 주로 텔레그램을 통해 고용주에게 업무지시를 받고 현금을 받아 전달하는 일을 했다. 실제 A씨가 고용주가 정해준 지역에 가서 “OO은행 채권팀에서 과장님이 보냈습니다”고 말하면 상대방(피해자)이 돈을 건네고, A씨는 다시 고용주가 지정한 장소로 가서 “김OO 팀장이 보냈습니다”고 말하면서 받은 돈을 전달하는 식이었다.

A씨가 고수익 아르바이트로 알고 한 이 일은 저금리 대환 대출을 해주겠다고 속인 피해자한테서 현금을 편취하는 전형적인 보이스피싱 수법이다. 실제 보이스피싱 조직이 금융기관을 사칭하거나 정부 지원으로 저금리 대출을 바꿔주겠다고 접근하고, 피해자들에게 기존 대출금을 현금으로 갚으라고 유도하는 피해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A씨는 조사에서 지난 3월부터 20번 이상 이 일을 하면서 총 250만~300만원가량의 수당을 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에게 받아 조직에 전달한 돈은 최소 500만원에서 최대 3900만원으로 총 피해액은 1억~1억5000만원 이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A씨가 보이스피싱 범죄라고 의심을 하게 된 것은 지난달 30일이다. A씨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옆 테이블 손님들이 보이스피싱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꼭 내 이야기 같았다”며 “주말 내내 고민하다가 지난 3일 서대문경찰서를 찾았는데 ‘보이스피싱 범죄가 맞다’고 해서 조사를 받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몰랐다고 하더라도…“미필적 고의 인정돼 처벌 불가피”

하지만 A씨처럼 자신도 모르게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해도 형사 처벌을 피하기는 어렵다는 게 수사기관의 판단이다. 경찰 관계자는 “통상 본인이 (보이스피싱) 중간책인지 몰랐다고 주장할 때 1~2건은 그럴 수 있어도 (A씨처럼) 20건 이상 한 경우는 수사기관에서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도 범행을 자수한 부분은 형량을 줄이는 데 정상참작이 가능하나 미필적 고의가 인정돼 형사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실제 보이스피싱 범죄는 사기죄 혐의로 징역형의 집행유예 이상을 선고받을 수 있으며, 피해액수가 2억원 이상이면 실형이 불가피하다.

조주태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대개 보이스피싱 현금 전달책이 범행이 되는 줄 몰랐다고 변명하지만, 거금의 현금 전달 등 충분히 불법적인 상황이라고 인지할 수 있어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것”이라며 “만약 피해자와 합의, 초범, 자수 여부 등으로 양형 참작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가 연간 7000억원에 달하고, 피해자가 목숨을 끊는 등 사회적으로 문제가 큰 범죄로 여겨져 단순히 몰랐다는 이유로 면죄부가 부여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몰랐다고 주장한 것을 재판부에서 인정해주면 앞으로 제2의, 제3의 똑같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무죄를 내려야 할 것”이라며 “개인의 억울함이 있을 수는 있지만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워낙 많아 해당 피해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유죄 선고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통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계좌번호와 현금 등을 요구하는 것, 대출을 빌미로 신용 높여주겠다며 수수료 명목으로 각종 돈을 요구하는 것 등은 보이스피싱 범죄 수법으로 주의가 요구된다.

경찰은 A씨에 대한 조사뿐 아니라 확보한 증거자료를 토대로 보이스피싱 주범을 추적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서대문경찰서 관계자는 “A씨가 제출한 휴대전화 등 증거자료를 토대로 중국 IP를 추적해 (보이스피싱 조직을) 수사하고 있다”며 “현재 A씨는 불구속으로 수사하고 있으며, 추가 조사를 통해 송치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혜화경찰서 관계자는 “A씨가 자진 출석한 것을 감안하면 구속하기는 어려울 것 같긴 한데 서대문서와 논의해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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