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개혁이다⑩)시장은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그대로 두라"는 `이중적 시장`을 개혁편으로 끌어들여야
  • 등록 2003-01-03 오후 2:22:27

    수정 2003-01-03 오후 2:22:27

[edaily 정명수기자] "시장을 개혁하라" 새 정부는 `시장 질서의 확립`이라는 차원에서 시장 자체를 개혁의 대상으로 삼을 것인가. 주식·채권·외환 등 금융시장은 개혁의 방향과 영향을 분석, 이를 가격으로 소화해내지만, 자신이 개혁의 대상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하지 않는 모습이다. 예를 들어 기업 지배구조의 선진화, 회계 투명성 강화, 집단소송제 도입 등 주식시장이 거래하는 상품(주식) 가격에 영향을 주는 `개혁`에는 내심 찬성하면서, "시장은 건드리지 않고 가만히 두면 잘 돌아간다"는 인식도 강하다. 시장은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개혁의 성과물을 보여주는 일종의 `창(窓)`이라는 의식이다. ◇개혁에 대한 이중적 잣대 시중은행의 한 외환딜러는 "새 정부가 `환율 관리`에 너무 신경쓰지 말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환율 변동성이 확대되어야 옵션 등 파생상품 시장도 발전할 수 있고, 참가자도 더욱 늘어날 수 있다는 것. 이 딜러는 "국책은행의 외환거래 성격을 명확히 해서 투기성인지, 정책적 관리를 위한 것인지 구분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정책 당국자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을 곤두세워야하는 외환딜러 입장에서는 "장사하기 편한 시장"이 제일 좋은 것이다. 움직이는 환율을 정책적으로, 인위적으로 틀어막으려는 시도 자체가 불만이라는 뜻이다. 국내은행의 채권 매니저에게 물었다. 새 정부가 채권시장의 잘못된 관행을 고친다면 어떤 것이 있겠느냐고. "채권시장을? 그러나 시장이 누구의 의지대로 쉽게 바뀔까요"라고 되묻는다. 그는 "시장은 돈이 될만한 곳으로, 시장 참여자들의 이익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생각들은 "시장을 그대로 두라"는 인식의 한 단면이다. ◇개혁논리는 철저히 시장적이어야 노무현 당선자가 조만간 조흥은행 매각이나 선물거래소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힐 모양이다. 선거중 노무현 캠프는 조흥은행 매각에 대해 단일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대통령 선거에서 일개 시중은행의 매각은 큰 이슈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당선자 신분으로 조흥은행 민영화에 대해 굳이 언급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정치적 판단 이전에 경제적 판단이 주가 되어야할 것이다. `개혁에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시장참가자들이 당선자의 말 하나 하나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선자의 입장이 독자생존 쪽으로 기운다면, 조흥은행 주가나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신한지주의 주가는 당장 춤을 출 것이다. 반대로 현재 진행 중인 매각 일정을 우선시하는 코멘트가 나온다면 조흥은행 노조나 금융노조의 반발이 뻔하다. 정치 논리를 따라 경제적 검토없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개혁안을 들고 나오면 시장은 언제든지 개혁을 비판하고, 경우에 따라 반개혁의 편에 설 수도 있다. 시장은 `개혁이 좋은가 나쁜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편리한가 아닌가, 유리한가 아닌가`를 따지기 때문이다. 선물거래소 문제도 마찬가지다. 김대중 정권은 부산 선물거래소로 모든 선물 거래를 일원화한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법리적으로, 경제적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던 이 문제는 `대선공약`이라는 것 때문에 DJ 임기말이 되어서 분쟁의 수위가 최고조에 달했다. `지수선물 부산 이관`에 대한 정치적 결정만 있었지, 경제적 논증이 빈약했기에 분란은 필연적이었다. ◇원칙을 세우라..시장은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시장이 평가하는 개혁, 시장에 대한 개혁은 대부분의 경우 `테크니컬한 문제`다. 시장이 개혁의 성과를 검증하고, 가격으로 표출하는 과정은 `시장 원리`를 따르는 극히 기계적인 행동이다. 예를 들어 집단소송이 도입되면, 과거 소액주주 운동의 공격 빈도가 높았던 기업들의 주가는 신속하게 재평가될 것이다. 불합리한 시장 관행과 시장 자체에 대한 개혁은 시장참가자들과 이해 당사자들간의 지극히 지엽적인 논쟁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선물거래 일원화는 증권거래소와 선물거래소를 하나의 지주회사로 통합하는 비교적 모범적인 해결책이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측 기득권 세력간의 다툼으로 분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수선물이 부산으로 가느냐 안가느냐의 문제는 지극히 단편적인 문제라는 뜻이다. 새 정부는 개혁 성과가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주식·채권·외환시장의 시스템을 시장 친화적으로 정비하는 동시에, 시장 자체의 불합리성, 기득권에 의한 비효율성을 제거하는 `단일한 원칙`을 세워야한다. 경제와 시장 문제는 경제논리로 풀어낸다는 원리를 철저히 따른다면 불확실성을 싫어하는 `이중적인 시장`을 개혁세력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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