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9일 장미 대선을 앞둔 지금, 소통의 힘을 절감한다. 당마다 당원, 나아가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정책과 비전 대결이어야 할 당내 경선은 결국 네거티브 공방으로 변질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럴싸하게 가짜뉴스라고 포장된 유언비어로 공격만 퍼붓는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컨택트’에서 그 답을 찾아본다. 줄거리는 이렇다. 어느 날 갑자기 지구 곳곳에 조개껍데기 모양의 우주선 12척이 나타난다. 외계인이라면 인간을 납치해 실험이라도 할만하지만 공격은커녕 인사도 없다.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아담스)는 이론 물리학자(제레미 레너)와 함께 정부의 요청에 따라 우주선 안에 들어간다. 왜 왔느냐는 질문에 속시원하게 말해주면 좋으련만, 외계인은 처음도 끝도 헷갈리는 원 모양의 글자만 보여준다. 어느 순간 루이스는 처음과 끝이 이어져 있는 외계인의 표의문자가 뜻하는 시공간의 의미를 알게 된다.
세상살이도 이와 같다. ‘컨택트’에 비견될 정도는 아니더라도 대선 주자와 국민, 하다못해 부장과 부원의 생각 방식도 그와 같지 않을까. 세상을 이해하는 출발 자체가 다르니 서로의 말의 내용이나 방식이 다르다. 서로 이해 못하니 ‘컨택트’의 한 장면처럼 불안감에 서로 먼저 공격을 하려 한다.
역지사지 (易地思之)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보자. 권위에 따라, 성별에 따라, 직위에 따라, 책임의 정도에 따라 생각의 내용과 방식이 다른 법이다. ‘컨택트’의 루이스는 과거·현재·미래를 인식하는 사고의 변화를 맞는 순간, 짧은 행복 후에 다가올 긴 슬픔을 받아들인다. 영화 초반 “처음과 끝은 나에게 더이상 무의미하다”고 말하던 루이스는 종반 ‘끝과 시작은 하나’라는 생각에 도달한다. 예정된 끝을 알면서도 시작한다는 말이다. 또 소통의 본질은 서로에 대한 주장보다는 이해를, 성공적 결과보다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진리를 관객에게 건넨다. 자신이 쓰는 언어로만 생각하는 부자도, 남녀도, 상사와 직원도, 정치인과 국민조차 한 번쯤 고민해봐야 할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