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소현의 일상탈출)⑩설사..델리 벨리(Delhi Belly)

  • 등록 2006-09-22 오후 5:16:31

    수정 2006-09-22 오후 5:16:31

[이데일리 권소현기자] 어딜 가도 물갈이를 해본 적이 없는데다 음식도 잘 안 가린다. 어디든 머리만 대면 곯아떨어져 후진 잠자리 같은건 문제되지도 않는다. 여행하기에 딱 좋은 체질이다.

그래도 인도에서는 양치질도 끓인 물이나 생수로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잔뜩 긴장했다. 수도물로 입을 헹궜다가는 당장 설사병에 고생한다는 것이다. 돈 주고 사먹는 미네랄 워터도 짝퉁이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는 소리도 들었다.

오죽하면 델리 벨리(Delhi Belly)라는 말도 있겠는가. 델리 벨리를 영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게 나온다. 《속어》(인도에서의 외국 여행자의) 설사(tourista)

인도에 와서 보니 정말 그랬다. 다 사람 사는 곳인데 큰 병 걸리겠냐며 다들 맞고 온다는 이질 예방접종을 건너뛴 것이 후회될 정도였다.


▲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면 잡상인들이 몰려든다. 창문 너머로 리치를 사라며 하나 뚝 떼어줬던 아저씨.
물가가 싼 나라를 여행할때의 즐거움은 몇 백원에 싱싱하고 맛난 과일을 맘껏 사먹을 수 있고 길거리에 늘어선 노점상에서 처음 본 음식들을 부담없이 시도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꾹 참았다.

그래도 결국 인도에 온지 일주일만에 누구든 피해갈 수 없는 그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인도에서 국경을 넘어 네팔 포카라에 도착하자마자 일행 4명이 일제히 설사를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정도의 차이는 있었다. 모두 비슷한 음식을 먹었지만 얼마나 더 먹었냐에 따라 설사의 강도가 정해진 듯 하다. 가만히 생각해봤다. 어떤 음식에서 비롯된 것일까.

갑자기 떠오른 것은 네팔 국경도시 소나울리에서 포카라로 향하는 버스에서 산 사과였다. 정류장에 잠시 버스가 정차한 사이 잡상인들이 몰려들었다. 아이스크림, 과일, 빵, 과자 등 먹을 것부터 볼펜, 모자, 전통 기념품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사과 4개를 샀다. 옷으로 빡빡 닦아서 한명이 한개씩 먹기로 했다. 사과가 제법 커서 두명은 하나를 반으로 갈라 먹었고 한명은 한입 베어먹더니 입맛이 없다고 안 먹었다. 나머지 한명이 자기 몫의 사과 하나를 맛있게 해치우고 나서 한입 베어먹고 남은 사과까지 깨끗하게 먹어치웠다.

사과를 제일 많이 먹은 사람은 포카라에 도착하자 마자 드러누웠다. 조용하고 한가로운 폐와호수가 보이는 창가 침대에 누워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는 모습이 영락없이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 여주인공 잔시다. 그러다 10분도 안돼 화장실로 뛰어간다.

▲ 결국 밤중에 병원을 찾은 그녀, 링겔 3병을 맞았다.


심한 탈수증세로 결국 자정이 넘은 시각에 병원을 찾았다. 이런저런 검사를 해본 결과, 보통사람들은 1~2개 있는 박테리아가 그녀의 몸에서는 17~18개 발견됐단다. 병원에서 준 약을 밤새 모두 게워낸 그녀는 그 다음날 아예 병원에 입원해 링겔을 3병이나 맞고서야 살아났다.

나머지 3명도 그다지 괜찮은 상태는 아니다. 설사병이 완전히 낫기 전에 트래킹을 떠난 탓에 누구는 안나푸르나 산줄기 어딘가에 노상방변(?)을 하기도 했다. 목이 타도 짝퉁 생수에 잘못 걸릴까봐 그나마 믿을만한 콜라만 마셔댔다.

이 가운데 한명 역시 트래킹 이후 병원신세를 지다가 결국 여행 시작 2주만에 편도 비행기티켓을 끊어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설사병을 앓고 난 이후에는 뭘 먹어도 크게 아프지 않았다. 네팔과 티벳을 여행하고 인도로 돌아와서는 음식이 두렵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사탕수수즙에 라임을 넣어서 파는 라임쥬스를 한번 맛보고는 중독된 것처럼 계속 마셔댔고 기차가 역에 정차할때마다 몰려드는 장사꾼들한테 거리낌없이 싸구려 음식을 사먹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읽은 책에서 델리 벨리에 관한 흥미로운 대목이 있었다. 퀴즈로 인도 문화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었는데 문제는 이러했다.

"당신의 하녀는 아직도 세살배가 아기에게 필요할때마다 모유를 먹인다. 당신은 도움을 주려고 마음을 먹고 당신의 아이들이 우유를 마실때마다 그 아기에게도 우유 한잔을 주었다. 그러나 아이는 체중을 얻기는 커녕 갈수록 야위어 가고 계속 설사를 한다. 이유가 뭘까"

답은 "다양한 세균에 대한 면역을 키워온 인도 아이들에게는 서양인이 아무 문제없이 마시는 포장 우유가 소화하기 너무 힘든 것일 수도 있다"였다.

나에겐 오히려 다양한 세균에 대한 면역력이 생긴 모양이다.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되자 인도 여행이 한결 편해지고 행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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