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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 9시 23분 청와대 경호처 전직대통령 경호팀의 경호를 받으며 이 전 대통령을 태운 검은색 제네시스 리무진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도착했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두 번째 정무수석을 지낸 맹형규(71)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먼저 차에서 내렸다. 이어 강진구 서울중앙지검 사무국장이 두 번째로 차량에서 내리는 이 전 대통령을 맞았다.
이 전 대통령은 짙은 남색 정장 차림에 하늘색 넥타이를 매고 검정 뿔테 안경을 쓴 모습으로 포토라인에 섰다.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왼쪽으로 얼굴을 돌려 ‘전직 대통령으로서 포토라인에 섰는데 국민에게 한 마디 해달라’고 말하는 기자에게 “할 거예요”라고 답한 뒤 오른쪽 품 안에서 미리 준비한 원고를 꺼냈다. 이 전 대통령은 1분간 A4 한 장에 적어온 여섯 문장을 읽어 내려갔지만 혐의와 관련된 말은 전혀 없었다.
“저는 오늘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사이 뒤따르던 차량에서 내린 변호인단인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낸 강훈(64·사법연수원 14기) 변호사와 피영현(48·33기)·김병철(43·39기) 변호사가 먼저 청사 안쪽으로 들어갔다.
기자 한 명이 순간 이 전 대통령을 뒤따르며 ‘110억원대 뇌물 수수 혐의를 부인하나’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데 다스는 누구 것이라고 생각하나’라고 묻자 엷은 미소로 “위험해요”라고 말하며 여유를 되찾았다.
취재진은 미리 준비한 5개 질문 중 ‘측근들이 대부분 혐의를 인정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다스 소송 비용을 삼성이 뇌물로 줬다는 혐의를 인정하나’ 등 2개 질문은 이 전 대통령에게 던지지 못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과 삼성의 다스 미국 소송비용 대납, 이팔성(74)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로비자금, 대보그룹 등 기업 불법자금 등 110억원대의 뇌물수수 혐의를 받는다. 또 300억원대의 다스 비자금을 조성해 세금을 탈루하고 수십억원대 다스 관계사 횡령·배임에 관여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귀가 시간은 심야조사 기준인 오후 10시쯤 이 전 대통령의 동의와 역대 대통령에 대한 소환조사 관례에 따라 새벽이 될 전망이다. 박근혜(66) 전 대통령의 경우 21시간 30분 동안의 조사를 받은 후 출석 다음날 오전 5시쯤 귀가했다. 조사 전 과정은 변호인단 입회 아래 영상으로 녹화되고 향후 법정에서 증거물로 쓰일 수 있다.
다음은 이 전 대통령 대국민 메시지 전문.
저는 오늘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무엇보다도 민생경제가 어렵고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환경이 매우 엄중할 때 저와 관련된 일로 국민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또 저를 믿고 지지해 주신 많은 분들과 이와 관련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도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물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습니다만 말을 아껴야 한다고 스스로도 다짐하고 있습니다. 다만 바라건대 역사에서 이번 일이 마지막이 됐으면 합니다.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들께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