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풀린 전세대출]②보증서가 왜곡한 대출시장..투기 키웠다

2011~2012년부터 보증기관 지원 확대
은행은 땅짚고 헤엄치기 영업에 중독
서민지원 명분 강해 규제수위 헐거워
  • 등록 2018-09-02 오후 7:30:00

    수정 2018-09-02 오후 7:30:00

[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금융당국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전세대출을 제어하려 칼을 빼들었지만 약발이 잘 듣지 않고 되레 실수요자들의 반발만 거세지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걸까.

전세대란 오자 보증확대로 대응‥은행-세입자 이해관계 맞물리며 커져

10년전만 해도 은행에서 전세대출은 찬밥 신세였다. 이 당시 은행들은 자체자금으로 전세대출을 했는데 연대보증인을 세우거나 전세보증금을 담보로 설정하는 안전장치를 둬도 대출사고가 많이 터졌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2011년과 2012년 즈음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본식 주택시장 불황 우려가 커진 시기다. 내집마련 대신 전세로 돌아섰고 결과적으로 가격이 급등하면서 ‘전세대란’이 벌어졌다. 이러자 정책 당국은 공공기관의 보증을 확대해 세입자에게 싼 전세대출자금을 공급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주택금융공사(주금공)가 2011년부터 은행 자금으로 전세대출을 할 때 보증을 하기 시작했고 2014년 주택도시보증공사(HUG)까지 가세하며 SGI서울보증을 포함해 3곳 보증기관이 적극적으로 영업했다. 은행 입장에서도 전세대출은 효자상품으로 탈바꿈했다. 보증기관이 전세대출의 80%를 보증해 주니 손실위험은 크지 않은 반면 대출이자는 따박따박 받을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세입자들은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양질의 주거환경을 누릴 수 있고 집주인들도 전세대출이 활성화하자 전세가격 상승 저항이 확 줄었고 높은 전세가가 집값을 떠받쳐 매각차익까지 누렸다. 불안한 부동산시장과 전세 가격 상승이라는 환경 아래 보증기관과 은행, 집주인, 세입자의 이해관계가 어우러지면서 은행권 전세대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부작용 커진 전세보증…틈 파고든 투기수요

하지만 보증서 담보 전세대출이 지나치게 활성화하면서 부작용도 커졌다. 우선 은행의 전세대출 구조가 왜곡돼 보증서 없이 은행 전세대출을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은행으로서는 보증서만 있으면 돈때일 위험이 적다 보니 자체상품을 내놓을 유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도 보증을 통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금리와 대출액을 증액받는 혜택을 누려와 보증부 대출을 손대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몇 년간 전세 가격이 급등하면서 대출 없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 전세를 구하기는 쉽지 않은데, 보증기관의 보증이 없으면 지금처럼 수억원까지 전세대출을 받을 수 없다. 얼마 전 금융당국이 전세대출 규제를 강화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맞벌이 가구를 중심으로 강력하게 반발한 이유이기도 하다.

급격히 불어난 전세대출은 가계부채 관리를 어렵게 하는 블랙홀이 됐다. 전세대출은 올 들어 늘어난 은행권 전체 가계대출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커졌다. 전세대출은 집값이 계속 오르는 동안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부동산 시장이 방향을 틀거나 전세가가 떨어지는 상황이 닥치면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올 2분기 서울을 포함한 일부 지역에서 일시적으로 역전세난이 벌어지자 전세보증 사고가 급증한 게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일부 다주택자들이 전세자금을 활용해 투기에 나서며 부동산 시장의 교란요인으로 떠오른 상태다. 은행권 전세대출은 대부분 보증기관의 보증서를 담보로 하는데 소득이나 자산, 보유주택수 같은 제한요건이 없다. 이 제도를 도입할 당시 무주택 서민을 지원하겠다는 취지가 반영돼 규제가 헐거웠는데 다주택자들이 이 틈을 파고든 것이다.

규제 수위 놓고 혼선…부작용 우려하는 목소리 커져

금융감독 당국은 일단 전세보증 단계에서 우선 소득이나 자산 요건을 강화해 고소득자나 다주택자를 걸러내겠다는 입장이다. 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전세 보증으로 이들을 지원하는 게 정책취지와 맞지 않고 투기수요를 억제해 전체 부동산시장의 안정에도 도움일 될 것이란 계산도 깔려있다. 또 허위 계약을 통한 용도 외 유용 사례 등 부적정한 전세대출에 대해선 엄중히 조치할 계획이다.

하지만 규제강도와 범위를 두고 고민이 깊어진 상황이다. 앞서 연소득이 7000만원이 넘는 가구는 주택금융공사의 전세자금보증을 제한한다며 나섰다가 무주택자는 소득제한을 두지 않겠다며 물러서며 체면을 구겼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다주택자 과도한 전세대출을 쉽게 받는 것은 차단하는 게 맞다”면서 “기계적으로 소득기준으로 적용할 게 아니라 주택 수나 자산 규모를 고려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규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전세자금이 필요한 실수요자들이 소득이나 자산요건에 걸려 금리가 싼 은행권 전세대출 대신 2금융권을 비롯한 고금리 대출로 내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대출로 전세 값을 버티던 실수요자들이 주거 품질이 열악한 지역으로 밀려날 가능성도 커진다.

조영무 LG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대출 규모를 줄이려 규제를 강화하는 단편적 대응보다 근본적 처방전을 고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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